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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Woyzeck)」는 독일의 천재 작가 게오르그 뷔히너가 1837년에 병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끝내 완성하지 못한 희곡이다. 1년 전 대학에서 희곡 수업을 들었던 나의 기억 속에 「보이체크」는 극에 민중을 등장시킨 개방희곡의 선두 주자로 남아 있었다. 그동안은 작품을 따로 찾아서 읽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보이체크」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뮤지컬 <보이체크 인 더 다크>를 관람하게 되면서 원작도 함께 읽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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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보이체크 인 더 다크>는 원작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지녔다. 극의 초반부터 이미 가난과 전쟁, 의사의 실험 등으로 피폐해진 보이체크의 모습을 드러내는 원작과 달리, <보이체크 인 더 다크>는 마리와 사랑에 빠진 보이체크의 행복한 시절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보이체크는 마리가 부르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유일한 사람이다. 카바레의 손님들이 모두 마리를 유혹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추파를 던질 때, 보이체크는 무대 위에서 자유를 노래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해방감을 느낀다. 마리에게 꽃을 선물할 돈이 없는 가난한 보이체크는 땅에 꽃씨를 심어 자신의 사랑으로 직접 꽃을 피우려 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순수한 마음은 마리에게 전해진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고 함께 미래의 행복을 꿈꾼다.

 

마냥 달콤하기만 한 초반부의 장면들은 원작에 있는 내용은 아니다. 뷔히너는 아무리 도망쳐도 사회와 권력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하층민의 삶을 그리기 위해 작품 속에서 의도적으로 아름다움을 지워냈는데, 이런 뷔히너의 선택이 뮤지컬에서 잘 드러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극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보이체크와 마리의 로맨스는 보이체크가 점점 미쳐가는 후반부의 내용과 대조를 이루면서, 그의 삶을 더욱 비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작가가 대중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뷔히너의 희곡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더 쉽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이 잘 묻어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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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구별되는 <보이체크 인 더 다크>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결말에 있다. 공연에서 가장 기대하고 기다렸던 장면은 바로 보이체크가 마리를 죽이는 장면이었다. 한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여인을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보이체크의 변화는 이 작품을 보는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마리는 칼로 자기 자신을 찌른다. 예상치 못한 장면에 잠시 당황했으나 그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토록 자유를 꿈꾸던 마리는 아픈 한젤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다시 철장 같은 무대 위에 올랐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한젤은 마리의 곁을 떠난다. 삶의 전부였던 아이를 잃은 그의 슬픔을 나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마리는 죽음을 택함으로써 반복되는 가난의 굴레와 삶의 번뇌로부터 도망치고, 사무치게 그리운 한젤의 품을 향해 날아간 것이다.

 

<보이체크 인 더 다크>는 보이체크가 사랑하는 마리를 칼로 찌르며 자멸에 이르는 것 대신, 보이체크에게 스스로 죽음을 택한 마리의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고통을 안겨준다. 한젤과 마리가 죽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보이체크를 보면서 우리는 작품 속에 삽화처럼 등장했던 불쌍한 아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실은 보이체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옛날 옛적에 불쌍한 아이가 살았단다. 아빠도 엄마도 없었지. 모두 다 돌아가셨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어. 모두가 죽었어. 그 아이는 집을 나왔지. 그러고는 절망한 나머지 밤낮으로 울었단다. (중략) 주위엔 여전히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아이는 주저앉아 엉엉 울었단다. 아직도 그 아이는 그렇게 앉아있대. 외롭게 혼자서 말이야.

 

희곡에서는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뮤지컬에서는 바보 카를의 말로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보이체크 자신의 이야기이다. 지구, 아니 온 우주에 홀로 남겨진 그 아이의 이야기는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꽃이 한 송이도 피지 않은 강가의 모래를 바라보며 외롭게 앉아있는 보이체크의 모습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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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내야 했던 보이체크. 사람들의 갖은 멸시와 박대에도 그는 꽃씨를 심었다. 그에게도 희망이 있었다. 마리가 자주 오는 강가에 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그는 자신의 삶에도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왜 꽃은 하나도 피지 않았을까.

 

썩은 강물을 먹고 자란 꽃씨가 꽃을 피울 수 없듯 사랑도, 사람도 부정의로 얼룩진 황폐한 세상에서는 아름답게 피어날 수 없다. 뷔히너의 희곡 「보이체크」가 나온 지 200여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오늘날의 세상은 여전히 돈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고 권력의 횡포는 사람들을 어두운 구석으로 몰아가고 있다.

   

<보이체크 인 더 다크>는 완전히 망가져 버린 보이체크의 삶이란 비극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결국 꽃이 피지 않은 건, 보이체크가 꽃을 피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곳이 꽃이 필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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