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는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도서/문학]

프레드 울만의 소설 <동급생>
글 입력 2023.03.1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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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을 때에 보통 작가 소개부터 읽는 편이다. 작가 소개를 읽고, 서문은 넘긴 뒤, 본문을 읽고 옮긴이의 말을 읽는다. 옮긴이의 말까지 읽고 나면 그 다음이 서문의 차례다. 서문을 먼저 읽지 않는 것은 혹시 모를 스포일러를 예방하기 위함이며, 더 들어가서는 서문이 주는 감상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름의 감상을 정립하고 난 후 서문을 읽어야 글을 쓴 사람이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017년 열린책들에서 출판한 <동급생>의 서문은 총 두 편이다. 1977년의 서문은 영국의 작가 아서 쾨슬러가, 1997년의 서문은 프랑스의 언론인 장 도르메송이 썼다.

 

<동급생>은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나치가 점차 독일을 집어삼킬 때, 아직 그 얼룩에 옷을 적시지 않은 시절의 두 소년이 나눈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몽상가 기질이 있는 유대계 소년 한스와 모두의 경외 속에서 살아온 귀족 소년 콘라딘은 한스의 바람대로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은 익어가는 과일과 넘실대는 풀밭에서 시를 읊거나 옛 철학자들의 의견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른들의 것인 정치와는 거리가 있는 즐거움을 누린다. 그렇지만 나치가 두 사람의 마을에도 손을 뻗치며 유대계인 한스의 학교 생활이 어렵게 되자 한스는 미국으로 떠나고, 히틀러에게서 독일인의 희망을 보았다는 콘라딘은 독일에 남는다.

 

도르메송의 말대로 이 책은 분명 “우리를 슬픔과 공포 속으로 던져넣는”다. 한스가 존경해 마지않던 그의 아버지는 콘라딘을 백작님이라고 부르며 우스꽝스러운 연극배우처럼 허리를 숙이고, 콘라딘은 가족들이 없을 때만 한스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세상에 두 사람뿐인 관계가 점점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을 소년들은 피부로 알아챈다. 화가 출신답게 청소년의 감정 깊숙한 곳에 찌꺼기처럼 말라붙은 마음들을 포착해낸 이 작가는 낭만적인 문체로 미운 마음과 그 마음을 품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묘사해낸다.

 

이렇게 다정한 시선은 그들에게 닥친 시대의 그림자를 더욱 마음 아프게 만든다. 쾨슬러가 “이 중편소설의 뒷맛은 네카어 강과 라인 강변의 짙은 색 나무로 지어진 가게들에게서 나오는 그 지역 와인의 향기”라고 평하며 “인종 청소를 위해 시체들을 녹여 비누로 만들었던 시기를 다룬 두꺼운 책들이 이제까지 수백 권 쓰였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이 얇은 책이 서가에서 영원히 차지할 자리를 찾아낼 것이라고 진심을 믿는다”라는 글을 남긴 것도 이 책이 주는 겪어본 적 없는 노스탤지어 때문일 것이다.

 

사실 <동급생>은 반전을 담은 마지막 문장으로 유명하다. 스포일러를 조심하며 마지막 행을 읽었을 때에 나는 그렇구나. 그렇게 되었구나. 그냥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그 문장을 잊을 수는 없었다.

 

<동급생>의 원제목은 Reunion으로, 직역하자면 ‘재회’나 ‘동창회’의 뜻으로 쓰인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만났다는 의미다. 그리고 재회는 으레 뜻밖의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직접 만나지 않았더라도 전해진 소식 한 마디, 문장 한 구절에 우리는 마음 속으로 그를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내 마음 속에서 당신이 떠난 적 없다면 우리는 재회할 수 있을까. 재회를 하려면 이별을 먼저 해야 하는데 당신은 내 마음 속을 떠난 적이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앞으로도 다시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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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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