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기적인 내가 아끼는 얼굴 모르는 그대들에게

글 입력 2023.03.1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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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의 감정과 기분에 쉽게 동요되고는 한다.

 

함께 있는 누군가의 기분이 좋아 보이면 같이 들뜨고, 반대일 때는 덩달이 풀 죽고는 한다. 그 사람이 얼른 기운 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안절부절못하기도 한다. 내가 이타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 때문에 나까지 축 처지는 게 싫은 이기심 탓이다.

 

그런 내가 가장 취약한 것이 누군가의 비보다. 뉴스만 봐도, 나는 세상 곳곳의 절망을 보고 들을 때마다 좌절한다. 그들과 다르지 않은 내게 멀지 않은 불행이라는 두려움과 함께 피해자들의 막막함이 스크린을 뚫고 나와 전이되는 까닭이다.

 

세상은 언제나 편파적으로 시려서 한 쪽에만 찬 바람을 분다. 우연히 잘못 자리 잡은 사람들만 애꿎게 피해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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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까웠던 지인의 비보를 들었다. 객관적으로 그의 앞날은 창창했고, 나와 제법 친했을 시절에도 밝고 번듯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 연락은 끊겼지만 그는 좋은 사람이다. 분명하게. 정확한 이유도, 상황도 알 수 없다. 그저 이젠 연락할 도리가 없다는 것 말고는.


멀게만 느껴졌던 아픔이 예상치 못한 가까운 곳에서 터졌다. 한동안 혼란스러웠고, 내 가까운 사람들이 불안했다. 기억나는 사람들마다 안부를 물었고,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였다. 그렇다고 당장 내 옆에서 터진 일도 아닌데, 건너 들은 흐릿한 소식만으로도 나는 인사불성에 비상등이 꺼질 틈이 없었다.


꽤 시간이 지났고, 조금은 안정되고 나니 문득 몇 년 전의 내가 떠올랐다. 아무리 둘러보고 뛰어봐도 시커먼 방 한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던, 나를 가장 사랑하는 엄마 옆에서 죽음을 떠올리던 시절의 나를. 그때 흘렸던 눈물 한 줄기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비로소 나를 포기했던 순간, 그 생각이 덮치는 절망과 두려움이 응축된 눈물은 정말로, 새까맸다.


그 시기에 나는 내가 죽으면 누가 슬퍼할까, 생각했었다. 제법 많을 것 같다가도, 하루 뒤면 다 털고 자신의 인생을 살겠지 하고 혼자 허탈해 했다. 나를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얼마 없을 거라고 마음대로 단언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나를 만나면 호되게 혼내줄 생각이다. 그것만큼 멍청하고 찌질한 생각이 없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한동안은 이름 떠올릴 생각조차 않던 과거 인연 소식에도 며칠, 몇 달씩 우울에 젖고 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소식을 들은 모두가 그렇다. 다들 그렇게 자기 인생을 살면서 이따금씩 꾸준히 아파하고 있다. 그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가 떠난 이유를 구태여 파헤치고 싶지도 않다.


단지 남는 것은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 산 사람들의 아쉬움이다. 이기적이게라도 마음을 전할걸. 어쩌다 그의 이야기가 나오거나, 그가 떠오를 때 연락 한 번 해볼걸. 나는 그걸 왜 안 했을까. 조금 달라지는 게 있었을까. 이제라도 하면,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까.


처음 겪는 급작스러운 이별에 허덕이던 마음을 이제서야 갈무리하고, 나는 이제 더 많은 이들에게 안부를 건네려 한다.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안다. 말뿐인 위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식상한 덕담이 누군가의 결심에 콧방귀나 되려나 싶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기적으로 무작정 말을 걸어볼 거다.


 

 

내가 아끼는, 얼굴 모르는 그대들에게


 

얼굴도 모르는 그대의 좌절이 나를 힘껏 아프게 합니다. 나는 당신의 힘든 마음에 쉽게 주눅 들고, 당신의 눈물에 휴지 대신 더한 눈물을 더할 겁니다. 부끄럽게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찔끔 찔끔 찌질한 눈물을 닦아내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모르고, 당신의 아픔이 어디서 왔는지 몰라요. 영원히 모를 거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의 좌절을 듣는 순간 적어도 한 계절 동안 슬플 거예요. 그리고 사무치는 까만 밤이면 그대를 떠올리겠죠.


살아내는 것만큼 더럽고 치사하게 힘든 게 없어요. 잠깐 기쁘다가도 그조차 부끄러움이 몰려오는 게 인생인가 싶습니다. 내내 슬프다 잠깐 기쁘면 다행인 거 뭐 좋다고 계속 살아야 할까요. 매번 그 생각에 힘찬 발걸음에 버퍼링이 걸리곤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내게 하는 것은 맞은편에서 오는 나랑 똑같은 어정쩡한 발걸음의 누군가의, 그 우스꽝스러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같이 어정쩡하게 걸어요. 팔자로 걷다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버둥대며 뛰다 넘어지고 무릎이 깨져 잠시 멈추더라도, 꾸준히 걷기로 해요. 제 마음대로 종종, 말을 걸러 올게요. 답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묵묵히 걷기만 한다면야, 나는 말 걸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맞은편에서 당신을 반길 그다지 예쁘지 않은 발걸음의 나를 기다려 주세요.


얼굴도 모르지만 부디, 우리 함께 살아가기로 해요.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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