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산을 찾는 이유 [운동/건강]

내가 산을 찾는 4가지 이유
글 입력 2023.03.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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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내려올 건데 왜 힘들게 올라가는 거야?

 

   

등산이 재미있다고 말하면 튀어나오는 가장 흔한 반응이다. 내가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을 때 품었던 의문이기도 하고.

 

학창 시절, 단체로 등산을 간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난 어떻게든 빠져나갈 핑계를 찾던 학생이었다. 등산이고 달리기이고 운동 자체에 특별한 재능이 없었기에, 유별난 체육 선생님들께 몇 번 꾸지람을 들은 이후 좀처럼 흥미를 붙일 수가 없었던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랬던 내가 작년 가을 즈음부터 등산에 재미를 붙여서 매주 다른 산을 찾았더랬다. 최근엔 동행 없이 혼자라도 다녀온 걸 보니, 난 이제 등산을 제법 좋아하는 사람이 된 듯하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산을 찾는 이유’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

 

   

 

산을 찾는 이유 [1]


 

들인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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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과 노력 그리고 시간을 쏟아부어도, 성과의 쾌감을 맛볼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누군가는 현대인의 우울이 ‘실체 없는 노동’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했을 정도이니 아마 나만 느끼고 있는 ‘허무한 노력 혹은 노동’은 아닌 듯하다.

 

백수인 나의 일상은 더더욱 노력과 시간에 대한 보상이 더디다. 매일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시적 결실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안다. 사람은 과정으로부터 성장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결과 혹은 성과가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으면, 명확히 눈에 보이지 않으면, 금세 포기하고 싶어지는 것이 성급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마음인 건 어찌할 수 없다.

 

나름대로 하루를 열심히 보내도 성취감은 그다지 뚜렷하지 않은 취업 준비 기간, 등산은 정상을 통해 노력에 상응하는 성취감을 내게 내어주었다. 그래서 좋았다.

 

묵묵히 땀을 흘리며 걷고 또 걷다 보면 마주하는 탁 트인 정상의 경관은 노력과 시간에 비례하는, 아니 그보다 큰 가치로운 대가임이 분명했다.

 

 

 

산을 찾는 이유 [2] 


 

언젠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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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짜가 미리 적혀있지 않은 만년 다이어리를 쓴다. 1일, 2일, 3일... 이번 달 역시 페이지를 펼쳐 또박또박 숫자를 써 내려갔다. 31일까지 적고 나니 ‘언젠가 3월도 지나가겠구나’ 하는 마음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처럼 ‘끝’은 때론 아쉽기도 하지만, 때론 시기를 버틸 원동력이 된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달리게 하는 생의 본능은, 이 또한 언젠가 끝이 난다는 죽음의 본능으로부터 비롯되는 걸지도 모른다.

 

등산은 완등, 즉 확실한 끝이 있는 운동이다. 산을 오르고, 정상을 맛보고, 내려오면, 그게 '끝'이다. 그리고 매번 완등을 통해 느끼는 끝의 감각은 내게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지구력의 뿌리가 되어주곤 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굴레 속에서 ‘확실한 끝’을 보장하는 등산이 그래서 좋았다.

 

   

 

산을 찾는 이유 [3]


 

지금, 여기만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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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사람들은 줄곧 말한다. 현재를 즐겨라. 한데, 나 같이 잡생각이 많은 부류는 그게 참 어렵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현재보다 과거나 미래에 썼던 것 같다. 과거를 책망하거나, 미래를 불안해하거나.

 

이런 나도 등산을 할 때는 ‘지금, 여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 딛고 있는 곳이 안전한지, 혹여나 미끄러지지는 않을는지, 체력은 어느 정도 남았는지 따위에 집중하지 않으면 다치는 건 순간이다.

 

사실 과거와 미래를 떠올릴 여유가 딱히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등산 초보인 나는 다치지 않고 발을 디디는 행위에 온 신경을 쏟기도 바쁜 거다.

 

그래서 등산을 할 때 몸은 긴장하고 있어 힘들어도, 정신은 이완되어 되려 편안했다. 그게 좋았다.

 

   

 

산을 찾는 이유 [4]


 

나는 내 속도대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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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잃을 것 같아 앞선 무리를 따라간 적이 있었다. 평일 낮이라 사람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별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앞선 사람들은 등산 고수였다. 그들은 빠르게 성큼성큼 산을 탔다. 내 페이스대로라면 쉬었어야 할 타이밍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그들의 속도를 따라잡겠다며 나 역시 서둘러 움직였다.

 

다행히 그들을 따라다닌 덕에 길을 잃지는 않았지만, 결국 하산할 때 난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제대로 된 장비도 갖추지 않고 그들을 따라 급하게 내려온 탓에 며칠 동안은 무릎까지 아팠다.

 

등산의 목적은 안전하게 완등하는 것이다. 그리고 안전한 완등을 하기 위해선 무리하지 않고, 내 속도와 체력에 집중해 나만의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 최선이다. 황새를 따라가려다 뱁새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내 속도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속도대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 지칠 때는 완등을 위해 휴식하는 것. 이건 산의 완등뿐 아니라 생의 완주를 위해서도 필요한 가르침일 것이다.

 

잘 해내고 싶어 항상 종종거리던 조급했던 마음을 이때의 가르침으로 잠시 접을 수 있었다. 물론, 아주 잠시였지만 말이다.

 

 *

 

지금까지 알게 된 '내가 산을 찾는 이유'다. 산을 오르다 보면 산의 코스보다 나를 사용하는 법을 더 잘 알게 된다. 그래서 산을 오르면 조금씩 어른이 되는 기분이다.

 

몸을 이끌고 끝까지 무언가 해내는 경험은 그것이 무엇이든 내게 생명으로의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그게 또 뭐라고 좋다.

 

슬슬 날이 풀리고 봄기운이 돈다. 낮은 산부터 다니기 시작하며 서서히 몸을 풀고 있다. 앞으로는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산도 여럿 도전해 볼 계획이다.

 

백수의 특권은 주말에 사람이 바글거리는 곳도 평일 오후에 한산하게 다녀올 수 있다는 것.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이는 백수 기간, 온전하게 그리고 고요하게, 나와 산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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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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