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비극과 용서, 발레 '지젤' [공연]

글 입력 2023.03.06 21:1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발레 지젤.jpg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의 쇼트프로그램에 삽입된 곡의 작품으로도 알려진 발레 <지젤>은 신비, 몽환, 환상의 느낌을 주는 낭만 발레의 대표작이다. <지젤>을 초연한 발레단이 파리오페라발레단이고, 이 발레단이 30년 만에 내한 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많은 발레단이 공연하는 <지젤> 중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지젤>을 관람하게 되었다. 같은 <지젤>이더라도 발레단마다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에 이 점을 참고하길 바란다.


 

 

사랑의 비극적 결말을 맞다



[크기변환]발레 지젤 부제1 사진.jpg

출처: OPERA NATIONAL DE PARIS

 

 

발레 ‘지젤’의 1막에는 시골 소녀인 ‘지젤’과 신분을 속인 채 지젤을 유혹하는 인물인 ‘알브레히트’, 지젤을 짝사랑하는 사냥꾼 ‘힐라리온’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순박한 시골 소녀인 지젤은 자신의 귀족 신분을 숨긴 채 생활하고 있는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진다. 지젤을 짝사랑하는 힐라리온은 이를 질투하고 알브레히트의 약점을 잡기 위해 그가 없는 틈을 타 알브레히트가 귀족이라는 증거가 되는 칼을 찾아 지젤에게 알린다. 심지어 알브레히트는 약혼자도 있었고, 이를 알게 된 지젤은 큰 충격을 받아 자살 소통을 벌이다 심장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1막의 지젤은 파란색과 하얀색의 의상을 입고 있어 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의 주인공 벨을 떠올리게 된다. 유사한 의상뿐만 아니라 지젤과 벨 모두 유럽을 배경으로 한 발랄한 시골 소녀이고 지젤은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소녀, 벨은 독서를 좋아하는 소녀로, 자신이 마을에서 생활하며 즐거워하는 취미 생활이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두 남녀 주인공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안무로 표현하는 ‘파드되’에서 지젤과 알브레히트는 서로 눈을 맞추며 때로는 사랑하는 이들끼리 하는 장난을 치기도 하고, 손 키스를 하며 사랑에 빠진 즐거움과 설렘을 보여준다. 이때 지젤은 꽃잎을 하나씩 떼며 이 사랑의 결말이 행복인지, 불행인지 알아보는 꽃 점을 보는데 꽃잎을 떼다 불행을 암시하는 꽃잎이 남으려 하자 지젤은 실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젤이 알브레히트가 귀족 신분이라는 것,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녀가 미쳐가는 모습에서도 꽃 점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결국 앞서 확인한 꽃 점은 사실이었다는 복선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막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지젤이 사랑에 배신당한 후 미쳐가는 장면이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과 알브레히트 앞에서 자살 소동을 벌인 후 서서히 제정신이 아닌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알브레히트와 지젤의 파드되에서 등장한 음악이 나오는데 이는 지젤이 알브레히트와 사랑을 나눈 경험을 떠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젤은 분노하고, 사실을 부정하고, 처절한 감정을 느끼면서 1막 초반의 발랄한 지젤의 모습은 없고 점점 혼란에 빠지는 지젤의 모습만 남고 있었다.

 

 

 

죽음을 초월한 사랑



[크기변환]발레 지젤 부제2 고화질.jpg

출처: OPERA NATIONAL DE PARIS

 

 

1막에서 죽은 지젤은 2막에서 연인에게 배신당해 죽은 처녀 귀신인 ‘윌리’로 변한다. 윌리들은 밤이 되면 젊은 남자들을 유인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춤을 추게 한다. 지젤의 무덤에 간 힐라리온은 윌리들에 의해 계속해서 춤을 춰 죽음에 이르고, 알브레히트 또한 지젤의 무덤이 있는 곳에서 윌리들에게 유인을 당한다. 하지만 지젤은 그를 구하기 위해 사랑의 힘으로 윌리와 윌리들의 여왕 ‘미르타’로부터 그를 지켜낸다. 아침이 되고 알브레히트를 남겨둔 채 지젤은 윌리들과 함께 떠나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2막에서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파드되에서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 이는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이지만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는 동시에 사랑할 수 없는 관계에 처해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안무를 맞추며 서로의 신체를 맞대거나 접촉하지만, 그들의 눈은 허공을 바라보는 듯 공허해 보인다. 이는 1막에서 보인 파드되의 모습과 상반된 모습으로, 1막에서는 서로 눈을 맞추며 즐겁고 행복한 표정을 짓지만, 2막에서는 그들의 눈동자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은 채 슬픔과 후회, 공허함의 감정이 나타난다.


그동안 발레 안무가 유령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처녀 귀신인 윌리 역할의 무용수들이 군무하는 모습을 본 후 처음으로 발레 안무가 유령의 모습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유령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형태의 가장자리는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발레 안무가 물 흘러가듯이 이어진다는 점과 유연한 동작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아지랑이가 끊어지지 않고 흐물흐물 피어오르는 것과 흡사하다. 특히 윌리로 변한 지젤은 공중을 떠다니는 것처럼 무대를 발끝으로 미끄러지며 움직이고, 팔로 파도를 그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자주 나오기 때문에 지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유령이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상기하도록 한다.


발레 <지젤>의 주요 장면이라 꼽을 수 있는 장면은 2막에서 알브레히트의 독무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윌리들의 유인으로 인해 춤을 추다 죽을 위기에 처한 알브레히트는 후반부에는 계속 쓰러지고, 기진맥진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안무해야만 하는 그는 마지막엔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듯이 앙트르샤 시스(뛰어오르며 발을 마주치는 스텝)를 계속 반복한다. 이 장면이 나올 때 관객석에서는 박수와 ‘브라보’를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아직 발레 공연을 한 번밖에 보지 않았던 나는 발레는 발레리노보다 발레리나가 주축이 된다고 생각했다. 발레리나의 의상이 발레리노보다 화려해 보인다는 점과 파드되에서 발레리노가 발레리나를 들어 올리는 동작이 많기 때문에 발레리노는 발레리나에게 가려진다는 점 등으로 인해 발레리노는 발레리나를 더 눈에 띄게 하는 이에 불과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레 <지젤>의 알브레히트 독무는 이러한 편견을 깨주고 발레리노 또한 발레 공연의 중요한 축이 된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지젤> 감상 시 유의할 점


 

모든 발레 공연이 마찬가지겠지만 <지젤>만큼은 줄거리, 감상 포인트를 숙지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발레는 뮤지컬, 연극 공연과 달리 안무와 클래식 연주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안무와 표정 연기를 통해 주인공들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특히 <지젤>은 주인공들의 풍부한 감정 표현이 돋보이는 공연인데 이 감정 표현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인물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인물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관람객이 같이 따라가야 한다. 관람 시 인물의 감정에 의문이 든다면 이는 공연 관람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또한, <지젤>에는 복선이 자주 등장한다. 1막의 꽃 점 장면이 결국 사실로 밝혀진다거나, 지젤이 평소 가지고 있던 지병인 심장병은 결국 지젤이 죽게 되는 원인이라는 점 등의 복선을 숙지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관람 시 몰입을 도울 것이다.


발레 공연의 좌석을 예매할 때 무대와 가까운 자리에서 무용수들의 표정 연기와 독무에 집중하여 감상할지, 무대와 거리가 있는 자리에서 단체 군무에 집중하여 감상할지에 대한 딜레마에 빠진다. 나는 발레 <지젤>은 무대와 가까운 좌석에서 표정 연기에 집중하는 것을 추천하고, 만약 무대와 거리가 있는 좌석이라면 오페라글라스를 대여하는 것을 추천한다.

 

앞서 말했듯이 <지젤>은 풍부한 감정 표현이 주가 되는 공연이다. 특히 주인공 지젤은 1막의 초반부에서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진 소녀의 모습으로 설렘과 사랑을 표현하고, 이와 달리 1막 후반부에서는 알브레히트에게서 느낀 배신감, 원망, 혼란, 슬픔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나타낸다. 2막에서는 1막과 다르게 용서, 사랑, 화해의 감정을 나타낸다. 관람 시 1막의 초반과 후반, 2막에서 나타나는 지젤의 감정 변화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송유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