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크리스티 테이트의 지나친 고백

그녀의 시간을 빌려 쓴 나의 첨예한 고백
글 입력 2023.03.05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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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다. 여러 가지 뜻이 있다. 포털 사이트에 ‘지나치다’를 검색하면 대표적으로 3개의 뜻이 나온다. 첫째로, 어떤 곳을 머무르거나 들르지 않고 지나간다는 뜻. 둘째로, 어떤 일이나 현상을 문제 삼거나 관심을 두지 않고 넘긴다는 뜻, 마지막으로 일정한 한도를 넘어 정도가 심하다가 있다.

 

이중 내가 지나친 고백의 타이틀을 보고 떠올린 뜻은 마지막 세 번째였다. ‘일정한 한도를 넘어 정도가 심하다’의 형용사로, 절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사회와 걸맞지 않게 알고 싶지 않은 타인의 치부를 드러내는 책. 그렇게 이해했다. 실제로 책을 읽으며 이게 정녕 에세이가 맞나? 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슬아슬한 수위 탓에 아찔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나야 한국인이니 그녀를 검색하지 않으면 평생 모를 테지만, 실제 작가 주변은 그녀를 어떻게 바라볼지 무서웠다.

 

내담자의 입에서 유독한 비밀이 발설될 때마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느꼈고, 굳이 느끼고 싶지 않은 수치심과 두려움이 내 마음에서 오묘히 공존했다. 내가 가진 사회적 상식이 파괴당하고, 책을 읽다 왠지 모르게 책의 무게에 짓눌려 책갈피를 수십번 꽂았다 빼길 반복했다. 책은 수 십번 꽂히는 책갈피. 그와 비례하여 붙여진 인덱스로 난도질당했다. 속독이 어려워 답답한 마음에 멍하니 덮인 채 얌전 떠는 책을 바라봤다. 어라? 인덱스는 10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20개는 족히 꽂혔던 것.

 

 

하지만 내 몸의 세포 구석구석에는 꽉 막힌 내 상태(다른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낭만적인 관계로부터 영겁만큼이나 떨어져있는)에 대한 자기혐오가 박혀 있었다. 내가 그토록 고립되고 혼자라고 느끼는 데는, 내 심장 표면이 그토록 매끄러운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을 청할 때면 그게 고동치는 걸 느꼈다.

 

<지나친 고백> 중 21쪽

 

 

그제야 나는 내가 느낀 감정이 수치심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비록 내가 그녀와 똑같은 경험을 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나는 크리스티의 상황을 공감하고 있었다. 그렇다. <지나친 고백>은 크리스티 테이트의 시간을 빌려 쓴 나의 첨예한 고백이었다.

 

 

 

할일


 

그녀는 대단하다. 성적 상위권의 법학도. 대형 로펌 변호사. 나 같은 일개 직장인이 넘볼 수 없는 스펙. 어릴 적부터 학생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온몸을 불 싸지른 그녀는 가난한 대학생(졸업하면 12만 달러가 빚이 넘을 예정)으로서 견딜 수 없는 정신적 결함을 뚝딱 해결하고자 로젠 박사의 그룹 상담을 할 일 목록에 추가했다. 그녀식으로 말하자면 <지나친 고백>은 건강한 정신이 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분 단위로 탐구하는 에피소드로 이뤄졌다.

 

덕분에 독자는 크리스트를 관찰하는 실험자처럼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마음속 해저를 강제 탐험한다. 잠수함은 예의를 모르고 더 깊고 심오한 지점까지 운항했다. 크리스티가 고치고 싶었던 건, 식이장애와 섹스, 그리고 대인관계였다. 다르게 표현하면 그녀는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그녀 나름대로 몰두한 것이 바로 할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크리스티는 뭐든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 보였고, 자신의 정신적 결함도 해결해야할 일이었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알 수 없어요. 지금까지 크리스티가 걸어온 한 걸음 한 걸음에 좀 기뻐할 수 없을까요?” 아니,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알게 될 때까지는 기뻐하고 싶지 않았다. 목표로 삼은 건강한 정신으로 가는 지름길이 없다는 걸 깨닫자 내 영혼은 부셔져버렸다.

 

<지나친 고백> 중 102쪽

 

 

로젠 박사의 그룹 상담은 마티, 카를로스, 로리, 커널, 패트리스 등이 모여 2주에 한 번씩 모여 8년 동안 가감 없는 솔직한 얘기를 나눈다. 그래서 에세인데 소설 같다. 실제 경험이다보니 아주 생생하다. 책에는 크리스티뿐만 아니라 각각의 사연이 나오는데, 인물이 많다 보니 모두 담지는 못했지만. 크리스티를 필두로,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매우 녹진했다. 불쾌하리만큼 자세해서 피하고 싶을 정도. 이유는 로젠 박사만의 특별한 처방법에 있다.

 

보통의 그룹 상담과 다르게 이곳은 비밀이 없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비밀은 유독”하기에 발설해야 하며, 드러내길 권장한다. 그러기에 내담자는 어디서 언제든지 비밀을 말할 수 있다는 규칙이 있다. 남의 치부를 실명까지 언급하며 줄줄이 읊을 수 있단 얘기였다. 당혹스러운 규칙 때문에 크리스티도 나도 이해할 수 없었고, 이 과정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설득하는 크리스티를 보며 괴로운 동질감을 느껴야 했다.

 

그중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던 에피소드 하나가 있는데, 직업인 의사인 내담자의 이야기였다. 의사로서 맞이했던 첫 죽음은 제레마이어란 갓난아기로, 그는 아기의 유골을 간직하고 있다 했다. 박사는 그걸 처방 혹은 치료 과정으로 크리스티에게 맡아달라 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내 머리는 물음표로 가득 찼다. 이 외의 황당한 치료법은 책에서 더 확인해보길 바란다.

 

하여튼 그들은 비밀을 발설하기 위해 신상 정보을 터는 건 기본이었다. 그들의 주요 화두는 ‘죽음’과 ‘섹스’였다. 은밀한 남녀 관계부터 트라우마, 중독, 들키고 싶지 않은 유독한 비밀까지. 밥상 위에서 듣기 싫은 그런 얘기들. 그걸 왜 남한테 말해야하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그녀는 로젠 박사의 처방을 해야 할 일로 구분하여 목표 달성을 위해 식이 장애 식단을 그룹원에게 낱낱이 보고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자친구가 있는 호감남에게 ‘나는 감질맛 나는 여자야’ 라고 말하라는 것까지 따랐다. 이외 나는 가슴이 싫다는 헤나를 배에 새기기도 하고. 이외에도 말도 안 되는 처방이 많았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이 분야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그의 처방이 진정 치료에 도움이 되는 건지. 하지만 주인공은 그룹과 동화되며 진정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할 일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니 더욱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거다. 황당무계한 로젠 박사의 처방전, 그를 해치우는 그녀의 추진력과 감정을 낱낱이 해부한 문체.

  

 

우리는 규정을 어기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계속 휘파람을 불었다. 머리 위에는 오직 해변에 도착하면 만나게 될 신선한 공기와 기분이 상쾌해질 수영 시간 말고는 아무것도 예고하지 않은 푸른 하늘이 걸려 있었다. 이렇게 꽃들이 많은 곳에서 나쁜 일이 일어날 리는 없었다. 

 

<지나친 고백> 중 130쪽

 

 

크리스티는 솔직한 화법으로 재치를 발휘한 음전한 표현과 직설적인 어휘를 섞어 쫀득한 문장으로 정제했다. 이런 매력 덕분에 나는 책을 놓지 못했다. 책을 읽고 나니 나도 일이 생겼다. 나의 할 일은 문장 하나하나를 분해하고 사유하며 곱씹는 거였다. 그것은 나의 고백으로 가는 방법이었다.

 

 

 

투영


 

 

내 마음의 표면을 상상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형태가 그랬다. 반들반들하고, 매끄럽고, 어디에도 붙어 있지 않은 것. 붙일 곳도 없고 칼집도 없었다. 삶에서 피할 수가 없는 열기가 닥쳐올 때면 아무도 내게 붙지 못했다. 나는 그 은유가 훨씬 더 깊은 곳까지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칼집, 그러니까 타인의 욕망, 요구, 옹졸함, 선호 같은 것들과 불가피한 충돌, 그리고 관계를 이루는 그 모든 흔하디흔한 의견 절충 과정 때문에 마음이 손상되는 걸 내가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었다. 결합되기 위해서는 칼집이 필요했는데, 내 마음에는 흠이 나있지 않았다.

 

<지나친 고백> 중 16쪽

 

 

‘칼집을 내다’라는 말이 내겐 싸운다고 이해됐다. ‘싸운다’를 연상하기 위해 나는 ‘화’를 떠올렸다. 화가 나야 싸울 거 아닌가? 그럼 ‘화를 내다.’ 그게 뭘까? 어떤 게 ‘화’일까? 정제된 언어로 언성을 높이는 것? 아니면 조곤조곤 말하지만, 단어 선택이 힐난과 욕설에 가까운 것? 나는 일상에서 화를 잘 못 낸다. 화가 나야 내든 말든 하지, 애초에 화가 잘 안 생긴다. 그럴 수 있지, 라는 초지일관의 태도로 바라보는 것도 있고, 화날 만큼 타인에게 관심 두지 않는다. 그냥 넘겨버릴 뿐. 허나, 화를 내는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고, ‘화’의 기준이 상대마다 다르다.

 

내게 화의 기준은 상대에게 언성을 높이는 것. 그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행위와 함께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감정적인 상태로 언어를 쏟아내는 행위를 아주 혐오한다. 그러다 보니 화가 쌓일수록 더욱 무감각해졌다. 그것은 타인의 무관심으로 이어졌고, ‘내 마음에는 흠이 나 있지 않았다.’ 이 문장을 이해한 내 경험은 이렇다. 나는 화가 날수록 타인과 결부되는 행위를 거부했다. 그러면 화날 일이 없으니까. 얼마나 편하나.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매일 화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내가 나의 추하고, 비이성적이고, 옹졸하고, 무모하고, 심술궃고, 뭔가를 마구 토해내는 부분들에 처음으로 받아 본 칭찬이었다. 그런 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나를 담당하는 심리치료사였다면 개떡 같은 소리 좀 그만하라고 했을 텐데, 로젠 박사는 마치 그날이 춤추는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한 휴전협정 기념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던 일 손에서 놓고 기뻐해야 할 것처럼 축하해줬다. “걱정 말아요.” 그가 말했다. “크리스티는 지금 막 시작한거니까요.”

 

<지나친 고백> 중 168쪽

 

 

크리스티는 로젠 박사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그것도 날 선 언어와 욕설로 언성을 높이며. 그리고 다음 상담일에 그룹원과 이를 같이 들었다. 로젠 박사가 자신보다 다른 이의 문제를 더 챙긴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분노였다.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전개였다. 인간이다 보니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티 내봤자 관심을 구걸하는 철부지의 행동이라 여겼다. 그녀도 마찬가지인 듯, 인내했지만 참다 참다 폭발한 거였다. 그리고 박사로부터 칭찬받았고, 그룹원들도 그녀를 축복해줬다. 어안이 벙벙했다. 이러다 버릇이 나빠져 그룹 상담을 벗어나 일상생활이 안 되면 어쩌려나 싶을 정도.

 

 

“왜요?”

“왜냐하면 크리스티가 원하는 건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니까요.”

“그게 싸워야 된다는 뜻이에요?”

“기꺼이 싸우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친밀해질 수 있겠어요?”

 

<지나친 고백> 중 162쪽

 

 

“내가 자기한테 화를 낼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랑한다고요. 알잖아요.”

아니, 사실 그건 몰랐다. 전혀 몰랐다.

 

<지나친 고백> 중 195쪽

 

 

나는 로젠 박사의 궤변을 인정하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친밀한 관계를 위해선 기꺼이 싸워야 한다고. 싸우는 것보다 그냥 대화하면 안 될까요? 종이책한테 물어보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크리스티는 점점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갔지만, 나는 멀어져갔다. 그들이 내는 화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 ‘화’가 크리스티를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책에서 일부분 나오는 에피소드는 나이 먹고 알 거 다 아는 어른들이 내는 건전한 표현 방법이 아니었다. 화를 내는데 어떻게 사랑하나? 내겐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사랑한다면 화날 일이 없다고. 할 말 안 할 말 다 질러놓고, 사랑으로 포장하면 그것이 다 사랑인가. 나는 오히려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사랑 방식 때문에 화가 생길 것 같았다.

 

 

“제 얘기 제대로 들으신 거예요? 저, 한밤중에 28층 발코니에서 싸게 산 유리잔이랑 그릇들을 망치로 작살내고 있었다니까요!”

“아까는 9시라고 해놓고.” 커널 샌더스가 원 맞은편에서 싱글싱글 웃었다. 그에게 꺼지라고 말하는데 내 입에서 침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나는 의자의 양쪽 팔걸이를 두들겼다. “저 좀 도와주실래요!”

“크리스티의 분노를 온전히 지지해요.” 로젠박사가 칠판처럼 반들반들한 말투로 말했다.

 

<지나친 고백> 중 230쪽

 

 

크리스티의 마음은 곧 내 마음이었다. 나는 이 치료가 정녕 치료가 맞는지 내내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변해가는 그녀의 행동과 감정을 보니 나는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무던히 애써야 했다. 여전히 내 마음은 반들반들했고, 매끄러운 상태로. 흠집 하나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혼자 살아갈 수 없는 법.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는 지독히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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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나는 일단 약혼이라는 걸 하면 결혼할 상대방에 대한, 그리고 두 사람이 만들어가고 있는 인생에 대한 확신과 더없는 기쁨으로 가득 찰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할 남자를 찾아내면 내 깊은 외로움도 치유될 줄 알았다. 하지만 순수하고 더없는 기쁨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속삭이는 걸 느꼈다. 나는 여전히 나였다.

 

<지나친 고백> 중 456쪽

 

 

모두가 잠든 새벽에 살며시 일어나 고요한 시간을 즐기며, 지금처럼 글을 쓰는 것도 좋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눈에 거슬리는 집안일을 모두 무찌르고, 커피 한잔을 즐기며 멍때리는 시간을 사랑한다. 입 아프게 말을 주절거리는 것보다 눈빛만 봐도 무던히 흘러가는 관계를 선호한다. 메신저의 친구가 몇백 명이든, 그들의 프로필 사진이 바뀌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는 무던함이 좋다. 하다못해 메신저 알람 속에 파묻히는 것도 좋다. 적당한 말을 나누고 사적인 선을 넘기지 않는 대화. 이것이 나의 상궤고, 첨언하자면 말보단 글을 선호하는 이유다.

 

여기까지 듣다 보면 사회성 없는 어느 철부지의 얘기와도 같다. 그래도 이것은 사적인 나의 선호. 타인과 교류하기 어려운 취향. 그녀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란 낭만이 있었던 것 같다. 내겐 그런 환상이 없을 뿐. 내가 생각하는 외로움은 인간이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할 것. 피할 수 없다면 즐기란 말이 있듯이 나는 외로움을 즐기며, 내가 정의한 상궤다. ‘관계’를 제삼자의 시점으로 외로움을 대하는 것. 아, 물론 할 일은 하고.

 

지나친 고백은 크리스티만의 상궤를 쫓아, 관계의 정밀하고 첨예한 감정과 사건 사고를 다뤘다. 진정한 관계를 위해 발버둥 쳤고, 무의식의 감정 세계의 탐사를 마쳤다. 그러나 여전히 귓가엔 두려움과 외로움이 울렸다. 지금의 그녀는 그것을 잘못됐다고 여기지 않을 뿐. 8년간의 그룹 상담은 크리스티가 이를 견디고 인정하는 확신을 배우는 기간이었다고 여겨졌다. 물론 그녀의 이야기는 한참 진행 중이다. 이 책을 내고 나서 어떻게 변화했을지, 그녀의 상궤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밀물처럼 쓸려올 수치심과 두려움에도 크리스티는 그것을 이겨내려 애쓰지 않고 그대로 흘러가게 놔둘 거라 믿고 있다.

 

태생이 외롭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여전히 나였다’라는 크리스티의 마지막 말을 보며 나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고작 서른의 나이니, 속된 재단일 수도 있다. 사람은 입체적이고 양면성을 가졌으니까. 말마따나 나도 군중과 어울려 하나가 될 때 즐겁기도 하다. 다만, 한 발짝 벗어나 고독을 즐기는 것이 더 좋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마음에 칼집내며 관계의 심연에 빠지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잦다. 또 내게 그러한 관계를 요구하는 사람이 벅찰 때도 있다.

 

<지나친 고백>이 말하고자 하는 건, 관계를 위한 일련의 노력도 있겠지만, 전체적 함의는 부정없이 자신을 수용하고자는 뜻을 담은 에세이가 아닐까 싶다. 이를 어필하기 위해 유독한 비밀을 여과없이 내뿜지 않았을까. 그런 지점에서 나는 나를 수용하면서도 아직 부정하고 있는 양면성이 남아있다고 느꼈다. 고독을 즐긴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언급하지 못하니 이 얼마나 담력없는 용기인가.

 

크리스티는 작품의 끝까지, 양극단의 내면은 싸우고 있었다. 그것은 ‘나’와 ‘나’의 싸움으로, 자신과 친밀해지기 위하여 자기 심장에 난도질하고 있던 거다. 책을 덮으며 질문이 들었다. 과연 나는 나에게 화날 준비가 됐을까?

 

 

[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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