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작디 작은 균열을 일으키는 이방인일지라도

저는 온화한 불복종자입니다.
글 입력 2023.03.0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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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데, 나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으면서 동질감에 환호했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 때의 나는 어딜가나 이질감을 느꼈다. 집단의 공통 특성에 맞지 않는 결격 사유가 하나씩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니까, 나는 이방인의 삶이 익숙했다. 학창시절에는 만년 전학생으로, 배낭여행 중에서는 동양인으로, 그렇게 살아왔다. 보통의 삶을 원하지만 타인의 눈에 자주 밟히는 삶. 끝내는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두렵더라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 오는 삶. 그랬다. 투쟁이 잦았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순종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정당한 사유를 요구하도록 교육받은 가정환경 때문인지 유난히 복종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 부분이 더 나의 존재를 두드러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매 해가 지날수록 이런 성격 또한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아도 참을 수가 없었고, 소위 ‘왕따’라고 불릴만한 친구들을 모아 ‘거대 왕따’를 만들어 반항을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거대 왕따’ 중 한 친구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정의의 아이콘이 된 나에게 선생님은 본인이 감당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곧잘 맡기고 교무실로 사라지곤 하셨다. ‘거대 왕따’의 또 다른 한 명은 이 소속이 부끄러웠는지, 내가 서울로 전학을 오자마자 다른 친구를 시켜 전화해서 욕설을 퍼붓고는 인연을 끊어버린 일 등이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 뒤로 완전히 상반된 침묵의 삶을 살아보기도 했다. 3년을 아무런 불만이 없는 척 살다가 결국에 성질머리를 못 이겨내고선 큰 싸움이 일어났다. 이것도 새드엔딩, 저것도 새드엔딩. 중도를 찾아야 한다는 걸 인지한 뒤로부터 지금까지 적당히 말하고 적당히 침묵하는 방법을 다져 나가고 있다. 이제 나름 적응이 된 탓인지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을 많이 요청받는 입장이기도 하고.


그런 나에게 시련이 닥쳤다. 근 10년동안 꽤 잘 쌓아왔다고 자부하던 것들이 무너졌다. 내가 행동했던 것들 것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고, 심지어 나비효과 마냥 잔뜩 몰려들어서 이 기간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나는 전례 없이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업무 결과는 항상 칭찬받고, 여전히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도 똑같은데, 내가 모두의 칼이 되었다. 모든 건의사항은 내 입을 통해서 전달되었고, 심지어 나를 통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하는 사람까지 나타나고 나니 엄청난 회의감이 몰아쳤다.


사람들은 미움 받고 싶어하지 않은 마음이 더 컸고, 나는 불편함을 더 크게 느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은 반복됐다. 그리고 그들이 봤을 때 나는 할 말을 하면서도 관계를 망치지 않는 사람이니까 내 입을 빌려도 나에게 해로운 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꽤나 망친 관계도 가지게 됐고, 그 여파가 상당히 커서 내 사회생활에 대해서 재고해봤을 정도이다. ‘너무 가정이 화목한 티가 나면 좋지 않은가?’, ‘너무 불안감이 없는 사람인 것이 보이면 싫어할 수도 있나?’, ‘궁핍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 안되나?’, 따위의 것들로 원인을 찾아 헤맸다.


또다시 옛적의 이질감에 휩싸였다. 한편,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 생각과 행동은 켜켜이 근거를 쌓아 올린 결과물이었고, 나는 거의 모든 곳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나는 결코 대나무 같은 사람도 아니었다. 아주 단단하게 뿌리 박혀서 꼿꼿하게 서 있기만 하는 성질이 아니란 말이다. 건설적으로 잘 매만져냈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에게 불이익이 돌아오는 건지 규명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불이익이 날아왔다기보다 다른 사람이 이익을 가져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큰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하던 중에 <온화한 불복종자>라는 책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뿔싸, 저 단어를 이 책에 빼앗겼구나. 나를 담을 수 있는 유일한 단어인데, 빼앗겨 버렸구나. 책 앞에서 서성이다가 괜히 서점을 한 바퀴 크게 휘젓고 다니다가 다시 책 앞에 섰다가, 그렇게 반복했다. 책을 당장에 집어 들지 않은 이유는 어처구니도 없을 테지만, 학술적 근거를 담은 도서였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런 류의 책들은 혼자 읽고 싶은 부류는 아니다. 일을 하는 중이라면 망설임 없이 펴 들었겠지.


세 바퀴 정도 돌았을 즈음에 ‘온화한 불복종자, 이 수식어를 갖고야 말겠다’며 마침내 결심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내가 동질감을 느꼈던 책들(이방인, 인간실격 등)이 인간의 어두운 면을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에 비해 이 책은 표지부터 너무나도 건실했다. 밝았다. 표지에는 한 마디가 더 써 있었다. “관계를 지키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 설득의 심리학”, ‘ㅇㅇ의 심리학’과 같은 문구는 심리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쓰여졌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매번 피하곤 했었는데 여기, 내 앞에 이 책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아주 많은 문구들을 메모했고, 필사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해서 받은 감명과,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과정을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언급하고 다녔다. 일전에 다른 글에서 자기개발서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 나는 그저 맞는 책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아, 이 책은 자기개발서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인문서 혹은 교양서에서 찾을 수 있다. 어쨌든, 내 행보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근거들이 단단하게 논리를 지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왜 사람들이 자기개발서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지 이해가 되는 페이지들이었다.


한 때, 모든 것을 인고하던 기간을 결국 유지하지 못한 이유는 그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해 나에게 해로움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중도를 찾아가기로 한 이유 역시, 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약간의 불편함을 희생하여 더 큰 자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적당함’의 선을 찾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번에 대실패를 겪고 나서 ‘해로움’을 가늠하지 못했던, 예상하지 못했던 스스로에게 절망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지 못한 것은 그 옛날에 내가 ‘거대 왕따’를 만들어 주동자들이 나에게 친절하게 굴기 시작했고, 선생님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채셨고, 더 이상 친구의 가방에 터진 우유팩이 들어있다던가 사물함에 압정이 낭자해 있지는 않았던 변화였다.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문구를 몇 가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불복종 행위는 대개 처음부터 다수의 지지를 얻지는 못한다. 대신 그들이 뿌려 놓은 의심의 씨앗은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무르익어간다.”, “비순응주의자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가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거나 그들이 제안한 해결책이 옳지 않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불복종은 인접한 가능성을 여는 문이다.”, “당신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클지 모른다. 장기적인 변화는 서서히 진행되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의견이나 제안을 심사숙고하는 동안 수면 아래에 거품처럼 떠 있을 수도 있다.”


이번의 대실패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는 증거들을 찾아냈다. 합리화라고 해도 좋다. 모든 일이 끝난 이 시점에 나에게 고백한 동료는 사과하며 나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내가 망친 관계라고 생각했던 이는 안주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변혁적인 비전을 세웠다. 이 장소에서 마지막 순간의 나는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온기가 언제 꺼질지 예상이 되지 않을 정도다.


여전히 ‘이방인’이라는 단어는 나의 정체성이다. 이제 ‘온화한 불복종자’의 성격을 가졌다는 한 구절이 추가되었다. 누군가는 의아함을 표명할 수 있겠지만, 나는 항상 평범함을 추구고자 한다. 불복종때문에 눈엣가시가 되는 순간들을 견뎌내는 것이 나 역시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방인이었던 경험이 매우 적은 이들에게 감히 연대를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 때까지 걸어온 기간이 아주 길었듯이, ‘망친 관계’로 분류한 사람들에게도 내가 작은 균열을 일으켰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내가 모든 균열을 볼 수 없으니, 보이는 균열만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뭐, 그렇다고 그들의 긴 기간들도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리 너그러워야 할 이유도 없으니.


“거부당한 아픔이 지금도 당신의 태도와 의사결정의 질을 손상시키고 과거의 적들에 대한 견해를 지배할 것이다.”, 상처를 받을지 말지 선택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다만 나는 기꺼이 상처를 받고, 그 위로 새 살이 돋아나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한다. 꺾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겠다. 더 좋은 모습으로 일어나려 발버둥치겠다. 그럴 때마다 나를 일으켜주는 것은 내 팔다리보다도 나에게 느껴지는 온기와 내가 눈치챌 수 있는 정도의 아주 작은 균열이면 충분하다는 걸.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알았으니,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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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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