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꽉 찬 총알을 발포한, 연극 '빵야'의 김태형 연출

글 입력 2023.02.2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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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야_포스터_최종s수정.jpg

 

 

소품 창고에 있는 99식 소총을 발견한 나나. 그녀가 꺼낸 총 빵야로부터 들은, 아니 어쩌면 그녀가 상상한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사의 맥을 순식간에 짚고 지나간다. 기무라, 동식, 원교, 아미, 선녀, 설화, 길남 등 빵야를 발포했던 인물들이 등장하며, 그 안에 담긴 가슴 아픈 절절한 사연이 펼쳐진다. 그들의 이야기에 웃고 울다 보면 어느새 빵야의 마지막 연주가 들려오고, 극장은 블랙아웃된다. 


연극 <유리동물원>, <헤르츠클란>을 제작했던 ㈜엠비제트컴퍼니가 새롭게 내놓은, 주목해야 할 올해의 신작 연극 <빵야>. 이 공연은 우수한 작품성, 믿고 보는 창작진, 연기파 배우들의 만남으로 그 진가를 보여준다. 수많은 인물의 이야기를 압축해서 재미있고 흥미롭게 연출함은 물론, 다채로운 구성과 리드미컬한 음악에 절도 있는 칼군무까지 더해지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 거대하고 화려한 소품 창고에서 꺼내진 장총처럼, 저마다의 창고에서 끄집어낸 기억하고 기록하고 증언해야 할 역사는 무엇이었을까?


지난 2월 16일, 김태형 연출님을 만나 이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연극과 뮤지컬의 경계를 넘나들며 <히스토리 보이즈>,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카포네 트릴로지> 등의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가 쏜 총소리는 어땠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로 꽉 찬 작품을 내놓는 김태형 연출님과 흥미진진했던 인터뷰 기록을 지금부터 풀어보겠다. 


 

 

재밌고, 정의롭고, 신선한 이야기를 찾아서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프로 데뷔한 지 16~17년 된, 연극과 뮤지컬 연출하고 있는 김태형입니다. 전에 한 작품으로는 오펀스, 더 헬멧, 비더슈탄트, 마리퀴리, 팬레터 등이 있네요. 평균적으로 1년에 한 8개 작품을 올리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연출 철학이나 신념이 있으신가요?

 

저는 연극이 굉장히 특별한, 그러니까 흔하지 않은 체험의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관객분들이 찾아오셨을 때 그날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을 새롭고 신선하게 만들어보자는 게 신념인 것 같아요. 


요즘은 좋거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거든요. OTT만 봐도 재밌고 다양한 콘텐츠가 점점 많아지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서 공연을 찾아보고, 돈을 써서 티켓을 예매하고, 몇 시간 동안 극장에 앉아있다가 돌아가는 관객분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그분들은 뭘 원할지와 거꾸로 나는 어떤 공연을 보고 싶은지가 궁금해졌어요. 


물론 관객분들은 잘 만든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있지만, 연극이나 뮤지컬처럼 무대예술만이 줄 수 있는 그날의 특별한 체험을 위해서 온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평상시와 별 다를 바 없는 체험이 되지 않게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같아요. 제가 동료들과 같이 만든 공연이 관객분들에게 어떤 공감과 위로, 아니면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생각에 균열을 주거나 삶에 아주 작은 변화의 씨앗을 심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연출님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우선 크게는 재밌는 이야기인지가 중요해요. 재밌는 이야기라 하면 흥미 있고, 공연 내내 관심을 유지할 수 있고, 다음이 궁금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정의로운 이야기인지가 중요하죠. 교과서처럼 교훈을 주지는 못해도 세상 사람들에게 선보였을 때 부끄럽지 않아야 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는 신선한 이야기인지가 중요해요. 그동안의 작품들과 비교해서 조금이라도 새로 이야기할 거리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죠.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따져서 선택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빵야>는 어떻게 작업하게 되었나요?

 

대본을 쓰신 김은성 작가님과 선후배 사이인데요. 2019년도쯤에 연락이 와서 연출을 맡아달라고 제안을 주셨어요. 처음에 대본을 받자마자 정말 긴 편임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읽었고요. 몇몇 부분은 읽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죠. 그런 경험이 굉장히 오랜만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코로나나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공연이 연기되는 등 올리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그래도 결국에는 무사히 개막해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무기가 될 수 있었던 시절



근현대사 장르를 무대화하는 데 있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작품은 근현대사의 심장을 관통하고 있는데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서 한국전쟁, 여순반란사건 등 역사적 사건들이 많이 나와요. 우선 작가님이 근현대사를 작품화하는 데 경력과 재능이 있으셔서 제가 여기에 묘사된 걸 새롭게 편집하는 과정은 없었고요. 


대본을 무대화할 때는 저도 그렇고 배우들도 그렇고 잘 모르는, 생소한 영역이 많았어요. 그런 부분들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죠. 이 캐릭터가 어떤 사건을 겪었고 어느 진영에 있었는지, 그래서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가 역사적 맥락 안에서 드러나기 때문이죠. 


극은 근현대사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거기에 숨겨진 서민들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다루거든요. 아주 전면적인 사건을 다루기보단 사건에 휘말린 개인 한 명 한 명에 집중하는 컨셉으로 만들었기에 그런 부분은 작업하기 수월했어요. 그러나 그 사건을 압축적으로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죠.


제주 4.3 사건 같은 경우에는 정확한 실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이 분위기를 어떻게 짧은 언어로 묘사할 것인가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 같아요. 배우들의 움직임을 많이 사용해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했는데, 예를 들면 원교와 아미가 남한군과 북한군으로 쪼개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담이라는 메타포를 이용해서 보여준다거나 대도구를 활용해서 제주도를 만드는 작업 등을 했던 것 같습니다.

 


2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의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신 방법이 있으신가요?


원래 대본은 지금보다 더 길었어요. 저희도 너무 길다고 판단해서 어딘가 줄이거나 잘라내려고 시도를 해봤더니, 재미도 줄고 이 공연만의 스타일이 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시간을 늘리더라도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만들자고 판단해서 조금만 덜어내고 진행했습니다.


관객들의 긴장을 위해서 리듬감과 음악성을 살리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전체적인 리듬감, 강약, 템포 같은 부분을 계속 조절하면서 진행했던 것 같아요. 마치 악보처럼 어디서는 빠르게, 어디서는 느리게 같은 디테일을 신경 썼고요. 장면 하나하나 흘리지 않고 움직임이나 연기로 꼼꼼히 채워보자 했어요. 


이렇게 장면을 꽉꽉 채우고 설명을 많이 하는 게 연출로서 단점이라는 얘기도 듣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은 이렇게 해보자 했죠.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길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총을 의인화하는 데 있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빵야 역을 맡은 배우들에게 어떤 식으로 디렉팅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대본을 보면 총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도 많고, 총이기에 할 수 있는 대사도 많거든요. 졸참나무였다가 대문이었다가 자전거로 바뀌었다고 이야기하는 게 총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들이잖아요. 그런데 대사를 잘 들여다보면 총처럼 사용되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평범한 누군가의 부모나 자식이거나 그런 관계성이 없더라도 일상생활에 있던 인물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 전쟁이라는 참극에 휘말리게 되면서 모두가 총이, 무기가 되는 시절을 겪어온 것 같아요. 그걸 지나온 사람들의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작은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기억해주고 싶었어요. 


단순히 총이니까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해야 한다고 정하지는 않았어요. 사실 하성광 배우와 문태유 배우는 아예 다른 배우거든요. 물론 나이대도 다르지만, 연기하는 스타일도 굉장히 달라요. 캐스팅할 때부터 다른 두 사람을 캐스팅해서 두 분의 제일 잘하는 걸 할 수 있도록, 그저 이 시대를 살아온 인물로 연출하고 싶다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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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빵야는 회한과 고통이 많고, 이걸 함부로 얘기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던 인물이에요. 그래서 어떤 모습이라도 상관없으니 그런 아픔을 무서워서 말하지 못했던 인물을 같이 연기해보자고 했죠. 또 나나와의 관계가 진전되며 변하는 빵야의 마음의 흐름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처음에는 나나를 피하고 밀어내다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하는 빵야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또 조연 배우들 같은 경우에는 자기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이 나오는 장면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죠. 다들 자기가 주인공인 편에 욕심내지 않고 더 흥미진진하게 잘 만들어보려고 애를 많이 써서 더 좋은 장면이 나온 것 같아요.

 

 

 

먼지 쌓인 소품을 들여다보듯,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역사를 관찰하는 것


 

각 장이 전환될 때마다 울려 퍼지는 음악과 안무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러한 장면전환을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극에서는 나나의 드라마를 1화부터 8화까지 보여주잖아요. 원래 목표는 각각의 화를 전부 다른 스타일로 연출하는 거였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곡가님에게 드라마 오프닝 음악을 8개 정도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극에서 오프닝 음악이 울려 퍼지면 배우들이 등장하고, 총의 주인공을 소개하죠.


사실 곡은 거의 다 똑같지만, 자세히 들으면 조금씩 다른 악기를 사용해요. 길남이는 하모니카, 설화는 호른, 기무라는 트럼펫이 주로 등장하죠. 마지막에 다 같이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에 쓰이는 악기와도 같다는 게 주목할 만한 포인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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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엠비제트컴퍼니

 

 

극 중 배우들이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군무를 보여주는 장면의 비중이 높아서 뮤지컬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는 일부러 의도하신 건가요?


일단 작가님이 군가를 모티브로 쓰자고 제안하셨어요. 그래서 배우들이 군가를 부르면서 군무를 선보이게 되었죠. 워낙 군가가 많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음악과 악기를 많이 활용했던 것 같아요. 설화가 부르는 노래 '오빠는 풍각쟁이야' 라던지 각종 악기의 군악대 연주처럼요. 


이현정 안무가와도 장면에 안무를 어떻게 집어넣을지 고민했죠. 보통은 음악이 있는 장면에 안무를 만들지만, 이번에는 대사만 있는 장면에 안무를 만들기도 했어요. 거기에 음악을 붙인 뒤 다시 한번 음악의 리듬에 맞춰서 움직임을 정리했죠. 대사가 엄청나게 많은 공연이지만 오히려 움직임을 통해 그 장면을 극대화해서 보여줌으로써 말이 더 꽂히는 듯한 효과를 주고 싶었습니다. 



무대를 하나의 소품 창고로 꾸미고, 그 안에서 배우가 소품을 가져다 쓰면서 극을 끌어나가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대 세트를 이러한 방향으로 사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애초에 무대 공간이 소품 창고는 아니었어요. 작가님은 영상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공연을 상상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계획은 무대에 배우 두 명이 있고, 나머지 배우는 영상으로만 등장하는 거였어요. 그러다 무대 디자이너님과 상의하면서 작가의 테이블에서 시작해서 그가 상상하는 일이 영상이나 대도구를 통해 무대에 펼쳐지는 컨셉을 생각했죠. 하지만 그런 스타일은 예산이나 기술적인 면에 어려움이 있어서 무산되었고, 그 후 소품 창고로 해보자는 의견을 통해서 이걸로 밀어붙이게 되었습니다.


우선 소품 창고가 굉장히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고, 거기서 나나가 구석에 있던 장총을 꺼내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거잖아요. 엄밀히 말하자면 소품 창고에 있는 소품을 바라보며 상상하는 거죠. 그 상상을 위해 소품을 공부하고 조사하며 그의 이야기, 더 나아가 역사를 끄집어내는 느낌이었어요. 


이는 작품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메이저의 흐름보다는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떤 사연을 겪었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그게 궁금한 거잖아요. 정말 먼지 쌓인 소품을 들여다보듯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만 역사를 관찰할 수 있는 거죠. 무대 디자이너님이 소품 창고를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준비를 해주셔서 예쁘게 잘 나온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창고 사이사이에 작은 조명을 배치해서 다양하게 활용한 점이 인상 깊었는데, 이러한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램프를 쓰자는 아이디어는 회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영상으로부터 출발했어요. 유럽의 오래된 전파사를 보여주는 아트 비디오였는데, 부품을 수리하는 아저씨가 있으면 그 옆에 UFO처럼 조그만 것들이 허공에 떠도는 거였어요. 그런 느낌을 재현하기 위해 무대 곳곳에 램프를 설치했죠. 램프의 빛을 통해 소품들이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혹은 별처럼 빛나도록 활용한 것 같습니다. 



엔딩 장면에서 제자리로 돌아간 총의 곁에 수많은 펜이 함께 놓이게 되는데, 이때 펜은 총을 대신한 소품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수많은 총이 모여 있는 걸 표현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어요. 이번 무대의 컨셉은 총이 딱 한 자루만 등장한다는 거였죠. 그래서 배우들도 총을 상체로만 표현해요. 총이 무수히 쌓인 모양을 연출하고 싶은데 유사한 형태면서도 저렴한 물건을 찾다가 펜으로 결정된 거죠. 따로 꾸미거나 새로운 디테일을 넣지 않고 그저 쏟아지는 총처럼 연출했습니다.


원래 소품 창고의 소품들이 여러 가지로 변형되고 활용되는 걸 꿈꿨기에 펜 역시 자연스럽게 총의 물성을 지닌 것처럼 사용하자고 연극적인 약속을 했어요. 그래서 배우들에게도 정성껏 쏟지 말라고 했죠. 그런 수많은 총 속에 파묻힌 장총의 느낌을 대신하고 싶었죠. 하필 펜인 것은 어쨌든 작가의 주변에 가장 많이 있을 수밖에 없는 물건 중 하나로써 드라마를 쓰고 있는 펜이라는 매체가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총이라는 매체와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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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공을 들이는 이야기, 공을 들이는 연출



나나와 빵야의 이야기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저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가 생각이 났어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나가 드라마 한 편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정성을 쏟아붓고,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봐야 하거든요. 자신이 만든 등장인물을 사랑하고, 그를 책임지고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돌보면서요. 


결국에는 자기가 쓴 이야기를 보게 될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그런 마음이면 좋겠다고 하면서 쓰는 거잖아요. 물론 그녀가 쓴 이야기는 아픔, 괴로움, 슬픔이 담긴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하고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쓰다듬어주면서 역사 속에 흩어진 수많은 사람을 잊지 않겠다는 거죠.


극에 나오는 역사적인 사건들이나 전쟁들은 일제강점기에서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에서의 이데올로기나 정치적인 이념 싸움, 경제적인 득실을 위한 싸움,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이득을 위한 싸움 등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사실 그런 비판의식이 대본에 은근히 강하게 들어가 있고, 그 지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걸 강조해요. 그저 넋 놓고 있다 보면 우리가 빵야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어쨌든 나나가 빵야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런 분들에 대한 존중과 위로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지금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도 총인 빵야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있거든요. 그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고, 원하지 않더라도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나 명령을 따라야 하고 말이죠.


무언가를 창작하는 것도 그렇고 서로의 관계에서도 공을 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공들여서 우리가 지나온 역사 속 사건을, 이 사건을 관통한 사람들을 잊지 말자는 거죠. 그러다 보니 그분들의 삶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위로하고 안아주고 싶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빵야_공연사진 (6)수정.jpg

(주)엠비제트컴퍼니

 

 

만약 연출님이 제작자 혹은 방송사의 입장이라면 나나의 대본을 채택하실지에 대한 의견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적극적으로 채택할 것 같아요. 사실 대본이 쓰일 당시는 몰랐지만, 이제는 이런 에피소드 구성의 드라마들이 은근히 많이 나왔잖아요. 이 작품이 잘될 거라고 믿어요. 오히려 더 화려한 스타 캐스팅으로 24부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네요. 물론 담당하는 작가나 연출의 경험이 많아야 하겠지만요. 실제로 작가님한테 드라마로 내놓자고 이야기도 해봤어요. 아마 넷플릭스 10부작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올해도 벌써 많은 작품이 들어오고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죠. 어떤 작품이든 정성껏 잘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다시 하는 작품은 더 잘 만들기 위해, 새로 하는 작품은 또 다른 연출과 이야기를 들려 드리기 위해 노력할 것 같습니다. 



어떤 연출가로 기억되고 싶나요?


좋은 작품을 많이 하는 연출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가 연출한다고 했을 때 불안하지 않은, 그저 신뢰하고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일단 믿고는 보지만, 무슨 연출을 할지는 모르니까 더 궁금한 그런 연출가가 되고 싶어요. 저 역시 여태까지 보던 거랑 조금 다르고 새로운 걸 만들었는데 한번 봐달라는 마음으로 올릴 것 같습니다. 


-빵야에서는 어떤 새로움을 보여주셨나요? 

 

이번 작품에서는 제가 잘 해왔던 방식들, 익숙한 연출들을 사용했어요. 이번에야말로 정말 끝장을 보자는 마음으로 모든 장면을 꽉꽉 채워놨거든요. 제 이야기가 취향에 안 맞을 수는 있지만, 정성을 들였다는 느낌이 없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 어느 때보다 대충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처음에 읽으면서도 너무 좋았던 대본을 몇 년을 묵혔다가 결국 무대에 올리게 되었는데요. 다행히 관객분들도 사랑해주시고, 배우들도 스스로 만족해하고, 창작진과 컴퍼니 역시 좋은 공연이라는 걸 서로 믿고 가는 것 같아서 행복하고 기쁩니다. <빵야>를 계속 발전시켜서 오랫동안 관객들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한 10년 정도 하고 싶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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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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