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감을 얻는 방법 [미술/전시]

글 입력 2023.02.2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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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달보다 짧아서 억울하거나 혹은 아쉬운 달인 2월에만 12개의 전시를 봤다. 전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지만 에세이를 쓰기 위한 글감을 찾는 데 훌륭한 취재원이 되어주곤 한다.

 

그런데 인풋이 과했는지 많이 본 만큼 아웃풋을 생산하지는 못했다. 매일의 일상이 너무 바빠서 결과물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고 하면 핑계일 수 있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너무 무능하게 느껴지니까 그냥 그렇다고 하자.

 

부지런히 정보를 기록하지 않았더니 역시 남는 것도 별로 없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기분이 이러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달에 본 12개 중 인상적인 전시 하나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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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예술적 경험(전시, 관련 서적, 퍼포먼스, 영상 등)에 목을 매는 이유는 이 경험들이 고스란히 쌓여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라고 말하면 멋있겠지만 허세 부린다고 내 글쓰기 스승에게 혼날 게 뻔하다. 

 

솔직히 말하면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글의 소재가 될 수도 있고 인생의 나침반이 될 수도 있는 요소들을 내가 가장 잘 알아챌 수 있는 분야가 예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컨텐츠를 접한다고 해서 늘 영감이 오는 건 아니다. 소개팅 나간 만큼 애인이 생기는 게 아닌 것처럼 영감은 드물게 또는 천천히 온다. 

 

가끔은 내가 부족해서 기발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하는 날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만일 신이 영감을 내려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시험에 낙방했을 때 ‘시험의 신이 날 외면했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나도 툭툭 털고 일어나 영감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다. 

 

청년 작가 박지형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그의 전시 《영감의 발신지는 어디입니까? (Where Does Inspiration Come From?)》는 ‘영감의 신’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상상하고 영감의 발신지를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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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흥미로운 일들이 필연적인 사건처럼 다가온다고 말한다. 특히 이러한 사건들은 막혔던 작업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는데, 이를 전부 ‘영감의 신’이 보내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거다. 

 

창작이 오롯이 개인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신이 내게 딱 알맞은 영감을 보내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으면 그 고통은 견딜만한 것이 된다. 창작자가 할 일은 배달되는 영감을 착실히 받아 작품으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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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은 ‘영감의 신’이 업무를 보는 사무실 형태다. 작가는 ‘북극에 있는 산타클로스의 사무실이나 을지로 금속상가 사장님의 사무실처럼 마술적인 존재는 마술을 뒷받침하는 사무실을 갖추고 있는 법’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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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안쪽에는 ‘영감의 신’에게 보내는 영감 신청서 작성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일단 신청을 하긴 했는데 ‘영감의 신’이 아직 영감을 보내지 않아서 그런가 별다른 일이 생기진 않았다. 다만 언젠가 배송될 영감을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어쩌면 이 마음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신의 선물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법. 특히 나는 이런 면에선 인내심이 없다. 난 당장 영감이 필요한데. 신의 사무실에 앉아 내가 생각한 건 ‘신에게 영감을 받는 방법’이었다. 단순히 기다리는 건 방법이 아니다. 방법은 좀 더 적극적인 해결의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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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우습게 생긴 나뭇잎이 코 앞에 떨어진다거나 으스스한 느낌의 학생이 옆자리에 앉는 일 등의 에피소드를 신이 보낸 영감이라 여긴다고 했다. 그런데 나 같은 일반인은 낙엽이 떨어지면 ‘떨어지나 보다’ 누군가 옆에 앉으면 ‘누가 앉는구나’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렇다면 이 에피소드를 영감으로 탈바꿈시키는 방법은 도대체 뭔가. 

 

인간의 힘으로, 특히 나처럼 평범하고 재능이 없는 보통 사람이 영감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부지런한 리뷰와 정리라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인풋을 잘 소화하라는 의미다. 

 

지금까지 꽤 많은 양의 글이 내 일기에서부터 시작됐다. 단순한 취미생활이자 하루를 마무리하는 루틴이지만 나름의 사고 소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오 재밌다’ 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과 이를 문장으로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왜 재미를 느꼈는지, 나는 어떤 부분을 재미있어 하는지, 이 재미가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정리해보면 단편적인 느낌이 순식간에 입체적으로 보이고 만져지고 느껴진다. 감정이든 작품이든 활자로 정리하고 나면 그럴듯한 소재가 된다. 즉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영감은 부지런한 기록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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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글을 쓸 때에는 개인적인 감상 뿐만 아니라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정보를 찾아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얻게 되는 자잘한 지식들이 영감이 될 때도 많다.

 

필수적인 과정이지만 내 머리로는 도저히 좋은 생각이 나지 않을 때 쓰는 최후의 카드이기도 하다. 영감도 얻고 지식도 얻으니 똑똑한 척하기에도 좋다. 이처럼 영감을 갈망하는 태도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 삶에 훨씬 크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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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낀 것을 영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바탕으로 다시 가공하고 조합하고 편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는 일련의 과정을 묶어 창작이라고 한다면 창작을 위해 필요한 게 영감인데 영감을 위해 필요한 것이 다시 창작이라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닭이 있어야 달걀이 있고 달걀이 깨져야 닭이 된다는 거다.

 

일상 속 사건과 느낌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문장으로 만들어보는 것이 영감의 시작이라는 말을 길게 했다. 그런데 써놓고 보니 영감을 얻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 것이 어쩌면 ‘영감의 신’이 내게 보낸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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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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