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슈베르트로 하나된 순간: 이효주 피아노 리사이틀

글 입력 2023.02.22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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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은 겨울과 봄을 오가는 묘한 달이었다. 서울에서도 기온이 영상 8도에서 9도를 오갈 정도로 봄 기운이 완연한 기온이 왔다가 영하 10도에 가까운 한파가 다시금 찾아와 도무지 날씨에 대해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한 달이었다. 이렇게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2월 중에도 나에게는 유일하게 명백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2월 22일에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리사이틀에 찾아가리라는 점이었다. 2월 말에 만나게 될 그의 연주회를 기다리면서 슈베르트를 듣는 것이 2월을 버티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이효주의 연주를 오래도록 기다렸기 때문일까? 한파가 다시금 찾아왔던 한 주였지만, 이효주 피아노 리사이틀이 있었던 22일은 심각한 추위 없이 하루가 흘러갔다. 정말 다행이었다. 물론 한파가 휘몰아쳤어도 연주회를 가는 건 변함이 없었겠지만, 아무래도 기온이 심각하게 떨어지면 연주회에서 기침하는 소리나 코를 훌쩍이는 소리 같은 소음들이 발생하는 빈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연주에 대한 집중도가 다소 떨어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을 찾았다.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 공연이 겹친 날이어서 음악당의 콘서트홀, IBK챔버홀, 리사이틀홀이 모두 공연으로 가득 차서 로비가 굉장히 붐볐다. 다른 두 공연을 찾는 관객들도 많았지만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리사이틀을 찾아온 관객들도 굉장히 많았다. 리사이틀홀을 가득 채우는 관객들을 보며, 다들 이효주의 슈베르트로 수요일 밤을 기억하겠다는 마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에게, 과연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더욱 기대감이 들었다.


 



< PROGRAM >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4 개의 즉흥곡, Op. 90, D. 899

4 Impromptus, Op. 90, D. 899

No. 1 in c minor - Allegro molto moderato

No. 2 in E-flat Major - Allegro

No. 3 in G-flat Major - Andante

No. 4 in A-flat Major - Allegretto


INTERMISSION


피아노 소나타 14번 가단조, Op. posth. 143, D. 784

Piano Sonata No. 14 in a minor, Op. posth. 143, D. 784

I. Allegro giusto

II. Andante

III. Allegro vivace


환상곡 다장조, Op. 15, D. 760, ‘방랑자 환상곡’

Fantasie in C Major, Op. 15, D. 760 “Wanderer-Fantasie”

I. Allegro con fuoco ma non troppo

II. Adagio

III. Presto

IV. Allegro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이번 리사이틀의 첫 곡으로 슈베르트의 4개의 즉흥곡을 선곡했다. 즉흥곡 1번은 심지가 굳은 타건으로 서두를 열며 시작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도입부에서 반주 없이 행진곡 리듬이 제시되고 이 주제가 점점 폭풍처럼 크고 강렬해져 가는 1번의 진행 과정 속에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섬세하고 진중한 터치, 특히 슈베르트에 너무나 잘 부합하는 페달링이 아주 돋보였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페달링이었다. 더할 것 없이 완벽한 깊이감이었다. 그렇게 소리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하는 페달링과 타건으로 강렬하게 시작해 폭풍 같이 휘몰아치다가 석양을 바라보는 듯이 1번이 마무리되었다.


이어지는 즉흥곡 2번에서는 아름다운 오른손 패시지로 인해 밝고도 가벼운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터치가 살아났다. 그런데 2번의 경우, 시작은 흐드러지는 노을 같이 유려하고 아름답지만 그 끝은 강렬하고 파괴적이다. 그런 면에서 직전에 연주되었던 즉흥곡 1번과 역으로 대비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즉흥곡 1번에서와는 또 다르게 부드럽고 둥글게 적당히 울려퍼지는 페달링과 강약을 적절히 오가는 터치 속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다음 즉흥곡 3번은 흐드러지게 핀 노을녘 아래의 들판 같은 곡이다. 슈베르트의 서정성이 정말 잘 드러나는데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터치도 가장 심금을 울렸다. 특히 강렬하게 다가오는 패시지들에서 그가 건반을 내리칠 때마다 심장이 공명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부의 백미였다. 마지막인 즉흥곡 4번은 하강하는 오른손 패시지가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손끝에서 아주 부드럽고 섬약하게 전개되었다. 생각보다 소리가 너무 부드러웠는데 조금 더 강렬했어도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모자라다는 느낌이라기보단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섬세함을 더욱 극대화하여 전해주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즉흥곡의 마지막 순간까지, 섬세하고도 아름답게 곡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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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의 첫 곡인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가단조는 슈베르트의 단조 작품이 가지는 매력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단조의 선율이 주를 이루고, 물론 중간에 전조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슈베르트가 단조의 정서에서 보여주는 비장함과 엄숙함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작품 전반에 걸쳐 이어진다.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부드러운 터치와 강렬한 타건을 넘나들면서 이 소나타에 어려있는 슈베르트의 극적인 감정을 잘 전달해 주었다. 시작은 섬약하지만, 점차 극적으로 전환되면서 슈베르트만의 독특한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분명 구성적으로나 음향적으로나 여백을 두면서 진행되는데도 밀도 높게 와닿았던 것은 그만큼 이효주가 전하는 슈베르트가 설득력있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특히 1부에서 연주된 작품은 즉흥곡이었기에, 2부의 시작이 소나타여서 더욱 극명히 대비되는 느낌도 관객의 입장에서 매우 즐거운 요소였다. 형식이 자유롭고 아름다운 악상을 주로 전개하는 즉흥곡과는 다르게, 녹아내릴 듯한 악상은 아닐지라도 갖추어진 형식과 명징한 정서 그리고 이를 극대화하는 음향적 효과로 가득 찬 소나타는 매독에 걸렸음에도 굴하지 않고 작곡활동을 이어나갔던 슈베르트의 기개를 드러내는 듯했다. 1부의 즉흥곡 연주 때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격렬한 타건이 소나타에서는 가감없이 펼쳐지면서 이 대비는 더욱 극에 달했다.


만일 슈베르트를 그림에 비유하고자 한다면, 그의 즉흥곡이나 환상곡은 다채롭고 화려한 면도 있기에 채색화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의 소나타들은 대개 수묵화에 가까운 감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피아니스트 이효주가 슈베르트의 소나타 14번을 통해 들려준 이 수묵화 같은 작품 속에는 거침없는 일필휘지와 동시에 섬세하고 절제된 붓놀림이 수없이 녹아 있었다. 어쩐지 모르게 절개가 넘치는 대나무 숲을 그리고 한시를 곁들인 것 같은 수묵화를 마치 귀로 듣고 있는 것 같은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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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리사이틀의 마지막은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이었다. 아타카로 전 악장에서 휴지 없이 이어서 연주해야만 하는 이 곡은 슈베르트의 전 작품 중에서 가장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또한 연주하는 내내 쉬어가는 대목이 사실상 없다는 점에서 연주자의 체력소모도 어마어마하게 요구한다. 그런 대곡임에도 불구하고 피아니스트 이효주가 이 작품을 피날레로 선곡해줘서 관객의 입장에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비록 연주자는 다소간의 부담을 안고 무대에 오르겠지만, 그가 연주할 방랑자 환상곡이 어떻게 와닿을지 무척 궁금했으니까 말이다.


이효주의 연주가 시작되고 나니, 어쩌면 이번 리사이틀을 통해 1부에서부터 2부 초반까지 보여주었던 그의 모든 슈베르트 연주는 결국 방랑자 환상곡이라는 종착지로 귀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연주는 1악장부터 그야말로 강렬했다. 방랑자 환상곡을 연주하는 동안 그가 보여준 완급조절, 호흡, 기교 그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종합적이었다. 어려운 작품이라는 걸 아는데 어렵겠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고, 방랑자 환상곡에 담긴 아름다운 서정성과 드라마틱한 스케일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온 마음이 뺏겼다. 좋은 연주란 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2악장 아다지오에서 느낄 수 있는 침잠하는 방랑자의 정서는 이효주의 손끝에서 더욱 가슴에 사무쳤다.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는 절망 가운데 있는 것 같아 탄식이 나올 것만 같은 순간을 그는 담담하게 읊조렸다. 그 터널 같은 시간을 지나,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특히 3악장과 4악장에서 관객들을 향해 다시금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삶이 어려운 순간이 있을지라도, 그는 우리가 다시금 일어설 희망은 분명 존재하고 이를 낙관하고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야 함을 말하는 것 같았다. 4악장에서 나타난 푸가는 우리 모두가 이 모든 의지를 다져야 한다고 말하는 의지의 발로나 다름없었다.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방랑자 환상곡을 통해 자신의 비르투오시티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그 강렬함 속에 분명히 녹아있었던 것은 슈베르트가 젊은 날 겪었던 것 같은 그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는 관객들을 위로하고, 슈베르트가 내포하고 있는 이 극복의 힘을 모두와 나누고자 하는 배려였다. 그래서 그의 방랑자 환상곡이 마무리되자마자, 객석에서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비록 피아니스트 이효주가 이 모든 과정에서 말로 관객들에게 설명한 바는 없어도, 그가 무언으로 전해준 연주 속에 담긴 뉘앙스는 말보다 더 분명하고 선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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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이 이어지자,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무대 위로 나서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평일 중에 바쁜 시간을 멈추고 자신의 무대를 찾아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면서, 그는 자신이 이미 다음 리사이틀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참고로 다음번 리사이틀의 테마는 쇼팽과 드뷔시가 될 예정이다. 두 작곡가를 묶는 키워드는 프렐류드다. 즉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다음 독주회에선 쇼팽과 드뷔시의 프렐류드로 공연을 구상하리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를 살짝 맛보기처럼 보여주기 위해, 그는 앵콜로 쇼팽 프렐류드 7번을 연주했다.


쇼팽 프렐류드 7번은 정말 아름답다. 가장조의 유려한 안단티노를,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꿈결처럼 부드럽게 전해주었다. 프렐류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아름다운 심상을 전해주는 순간 앵콜이 끝나버렸다. 이는 이번 공연을 마무리하는 앵콜곡인 동시에 다음 리사이틀의 티저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아주 전략적이고도 효과적인 앵콜 선곡이었다. 듣자마자 그의 다음 리사이틀이 언제가 될 지 체크해봐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으니까.


*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연주를 정말 오랜만에 들었다. 심지어 그의 연주를 매번 앙상블로만 듣다가 독주를 듣는 것은 이번이 온전히 처음이었는데, 이전에 놓쳐버린 그의 리사이틀이 다 아쉬워질 만큼 너무 좋은 무대였다. 앙상블에서도 온전히 음악 속에 녹아들어 혼연일체가 되었던 그는 리사이틀에서도 온전히 피아노 속에 녹아들어서 슈베르트와 피아노만이 남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슈베르트를 들려주기에 가장 좋은 터치와 페달링이 곁들여지면서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아름다운 슈베르트의 밤은, 이효주의 손끝에서 슈베르트를 회고하는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힘을 주는 시간이 되었다.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슈베르트는 지친 일상을 달래주는 위로인 동시에 새로운 활력 그 자체였다. 남은 한 주를, 남은 한 달을, 그리고 남은 한 해를 더 열심히 헤쳐나가겠다는 의욕을 나눠받은 리사이틀이었다. 피아니스트 이효주가 나눠준 이 회복의 힘으로, 그가 열 다음 리사이틀까지를 열심히 살아나가야겠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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