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고 싶은 이들에게 소개하고픈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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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법칙은 딱 하나다. 죽음의 필연성과 삶의 일회성. 한 번 살고 누구나 다 죽는다.”
위 문구는 쿠바 태생의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가 언급한 세상의 법칙아다. 과연 그렇다. 모든 생명은 선택의 여지 없이 잉태되는 순간 삶을 시작한다. 인간 사회에서 발현되는 생존본능은 복잡하다. 견고한 상부구조에 종속되어 선악이 모호한 행위와 음모가 난립한다. 와중에 발생하는 ‘인간 소외’ 현상에 모종의 인간군상은 삶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이기적 자살’로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횡역(橫逆)하는 것이다.
자살은 비단 사회적인 외부요인 때문만이 아니다. 자살 사고에는 개인의 생명을 경시하고 존엄성을 누리지 못하는 자아(ego)에서 꿈틀댄다. 죽음의 황망함에 대응한다는 듯, 김병종 작가의 ‘생명의 노래(Song of Life)’는 리비도적 에너지를 표출한다.
작가 김병종은 직관적이고 강렬하게 생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직선으로 떨어지는 것 없이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과 사선을 드러낸다. 필자에게 있어 작품에 관한 첫 느낌은 ‘무해’하고 ‘순수’한 ‘동식물’이다. 바탕을 덮은 주조색(主調色)은 베이지 계열이다. 작가는 치자, 감초, 자운영, 땡감을 안료에 활용한다는데, 치자빛이 한국의 미감을 돋운다. 치자빛 모래사장 위에는 새, 나비, 물고기가 노닌다. 작품이 평면적인 형(shape)을 비탕으로 입체적인 형태(form)를 가미한 것을 볼 수 있다. 물고기와 나비, 새, 수초로 보이는 푸성귀 모두 닥종이를 뭉치고 겹쳐 부조(浮彫)화 한듯하다. 나비와 물고기 구조를 좀 더 살펴보면 볼록한 외곽선에 날개, 지느러미같은 부분이 눌려서 구체적인 윤곽을 이룬다. 양감(量感)이 오밀조밀하게 도드라지면서 한편으로 요철(凹凸)을 담뿍 넣은 것이 재미 지다.
일견(一見) 작품에서 바로 전해지는 것은 중앙의 꽃이다. 동물과 곤충같이 움직이는 생명체 사이에서 유독 명시적(明示的)인 식물이다. 마티에르(matière)적으로 주변부보다 힘을 빼서 평평하고 매끈하다. 색은 색시 연지 마냥 붉다. 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거뜬히 경칩(驚蟄)을 맞이한 동백꽃이 떠오른다. 우연의 일치일까. 동백꽃 꽃말 ‘열정’처럼 붉은 꽃은 주위 새와 물고기, 나비 같은 생명체를 끌어당기는 에너지가 피어오른다. 꽃잎 끝은 그라데이션(gradation)으로 동백꽃향을 퍼트린다. 수묵담채화 특유의 은은함과 살랑거림이 그득하다.
적색(赤色) 꽃을 필두로 황(黃), 청(靑), 백(白), 흑(黑)이 고루 들어간 나비와 새, 물고기는 한마디로 오방색(五方色)이다. 시리즈물에 등장하는 5잎짜리 꽃은 구심력처럼 도면 대부분을 차지한다. 오방(五方)으로 뻗어 나가는 원심력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적(赤)이 상징하는 생성과 창조, 정열과 애정같은 인정(人情)을 대변하는 듯하다. 꽃밥은 일반적으로 떠올리기에 황색 일법 하지만 검정색이다. ‘생명의 노래(Song of Life)’ 시리즈에서 유명한 ‘화홍산수’에도 화홍(花紅) 꽃밥이 암갈색과 검정색이다. 시리즈 내 꽃은 붉은색 꽃잎과 검정색 꽃밥으로 통일성을 지닌다. 작가는 “꽃은 생명의 눈동자로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고 시리즈물에서 “꽃과 나무의 심장, 새들이 눈으로 나누는 대화를 화폭에 옮겨 보려고 했다.”고 하였다. 그가 이렇게 꽃을 소재로 하게 된 연유(緣由)는 그의 에세이 『먹으로 그린 새가 하늘로 가네』(비룡소 1994)에서 엿볼 수 있다. 김병종 작가는 연탄가스 중독 때문에 큰 수술까지 하며 죽다 살아난 적 있다. 퇴원 후 회복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그러던 어느 날, 뒷산을 내려오다 들꽃 한 송이를 발견했다. 한겨울을 버텨낸 꽃을 보며 ‘생명의 노래(Song of Life)’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작가는 죽음으로 마무리할 뻔한 삶을 2번이나 이겨냈다. 검은 땅을 밀고 올라오는 여린 꽃처럼 위중한 상황에도 살아났다. 추단(推斷)컨대 그에게 ‘삶’과 ‘생명’은 다른 무게일 것이다. <오딧세이아>에서 오데시우스 역시 고난 끝에 마주한 자아가 묵직했다. 자신을 시간적, 서사적 존재로 파악했다. 영생할 수 없기에 하루가 소중해지고 험난한 일이 있었기에 감사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이다. 이런 교훈은 목숨을 차라리 자살로 포기하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통렬히 경종을 울린다.
김병종 작가는 큰 수술이라는 고난의 서사를 지닌 자기 삶의 오데시우스이다. 오데시우스는 출항하고 귀향하는 변증법적 교차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미완(未完)의 기획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끝없이 항해한다. 인간은 미완성의 개별자(個別者)인 것이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인간 본질은 결정되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태어난 이후 스스로 선택해 주체적으로 자신의 본질을 만들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불교에서도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으로 뜻이 서로 통한다. 인생화두를 생각하면서 자신을 비우고 낮추고 나누는 삶을 주체적으로 행동하라 한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으로 연결되는데, 본인에게 우주의 가치가 담겨져 있기에 존재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영화 <파이란(Failan)>에서 주인공 강재가 위장결혼한 아내의 편지를 읽고 결정적인 선택을 바꾼 것도 자신의 존재가치와 삶의 의미를 대면하고 나서다.
생사학적으로 삶과 죽음을 바라본다면, 죽음에 관한 공포나 우리가 끝난다는 공포보다 생명, 삶, 죽음 등에 보다 즉자적(卽自的), 대자적(對自的)인 부분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이런 이치는 자연에 치환할 수 있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인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죽음에 흐르는 진리에 관한 사유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한다.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여러 작품에서 마크 퀸(Marc Quinn)의 작품까지. 김병종 작가는 이 사유체계를 나비, 새, 물고기, 꽃으로 작업한 것이다.
예전 인상주의 화가 고흐(Vincent van Gogh)가 ‘별이 빛나는 밤’ 작품에서 죽음을 다뤘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한번 자르면 다시 뿌리가 나지 않으므로 죽음을 상징했고 별은 영원하므로 죽음을 은유했다. 생명체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모든 자연물에서 크로노스(Chronos)적인 시간의 변화가 들어있다. 고갱이 전통적인 회화기법을 거부하고 색채, 색조, 질감 자체에 관심을 둔 것처럼 김병종 작가도 수묵담채화에 질감 시도를 했다. 다만 고흐처럼 ‘죽음’에 초점을 두기보다 ‘생명’을 천착(穿鑿)한다. 이런 그의 정신과 작품성은 창의적 상상력을 입증하기 충분하다. 그의 작품은 영국 대영박물관, 캐나다 로얄 온타리오 미술관, 방글라데시 국립박물관까지 소장되어 있다.
예술의 진정한 가치란 향유하는 것뿐 아니라 예술을 통한 영혼의 정화이다. 서양의 현대 작가들(위에서 언급한 데미안 허스트, 마크 퀸 등)처럼 파격적이거나 충격적인 아이디어로 이목을 끌고 대중적 인기를 얻는 시도 없이 김병종 작가는 자신만의 소재와 색감으로 생명의 노래를 해 나간다.
21세기를 살아간다는 것은 선형적인 시간만 흘러보내는 것이 아니라 원형적인 시간을 인식하며 삶을 지속해야 한다. 죽음의 필연성과 삶의 일회성은 변함없다. 한 번 살고 누구나 다 죽는다. 혹여나 잠깐의 인생 파고(波高)에 휘청거리는 이들은 이 작품을 만나길 바란다. 맞이한 물고기가 함께 파고를 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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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빛나 에디터]첨부파일 다운로드생명의_노래.png (555.3K)다운로드<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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