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순환하는 계절 속에서, 우리만의 작은 숲을 만들어요. [영화]

영화 리틀포레스트 리뷰
글 입력 2023.02.1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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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과 리틀 포레스트


 

시험, 연애, 취업…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오랜 친구인 재하와 은숙을 만난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 평범한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은숙’과 함께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끼 한끼를 만들어 먹으며 혜원은 겨울에서 봄, 그리고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며 고향으로 돌아온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된 혜원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게 된다.

 

 

리틀 포레스트의 ‘봄’


"타이밍이다. 기다려, 기다리면 최고의 음식을 맛볼 수 있어."

 

극 중 혜원의 대사다.


봄은 시간의 계절이자, 시작의 계절이다.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계절이라 파랑 하늘과 초록 들판의 조화를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자라나고 푸릇해지는 때라, 처음 심어 새순이 돋아날 때까지 지켜보고 있노라면 나도 덩달아 잘 자라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덩달아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해진다. 자라나는 때에 맞춰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때맞게 햇빛도 쐬게 해주면 모든 생명이 성장을 기꺼이 맞이할, 적절한 순간이 찾아온다.

 

 

리틀 포레스트의 ‘여름’


여름과 아카시아, 두 단어를 함께 놓는 것을 좋아한다. 봄보다는 훨씬 짙은 푸름과 초록이 찾아오는 계절. 시각적으로 강렬해진 풍경의 대비감과 함께 눈에 비치는 햇살도, 부시다. 


땀방울과 열매의 계절이다. 둘의 공통점은 지나치게 동글동글하다는 것, 한꺼번에 많이 매달리곤 한다. 흘린 노력에 대한 결실이 되돌아오는 여름에는 우리가 씨를 뿌려놓은 많은 것들이, 기다렸던 많은 것들이 온다.


여름은 혜원에게 힌트를 주고, 혜원은 여름에 깨닫는다. 혜원이 잊고 살았던 삶의 감각이 되돌아온다. 친구들이랑 낄낄거리는 그런 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같이 웃는 그런 거. “내가 여기로 떠나온 게 아니라,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는 거.”

 

 

리틀 포레스트의 ‘가을’


가을은, 봄처럼 화창하지도, 여름처럼 과일이 많이 열리지도 않지만 사람을 끄는 무언가가 있다. 재하의 전 사랑이 끝나고 푸릇한 사랑이 예고된 것처럼, 멸하기도 하고 생겨나기도 하는 신기한 계절이다. 


순환의 진리를 담고 있는 가을은 계절 중 유일하게 깊어간다. 가을 하늘은 높고 청명하며, 비가 많이 내린다. 드높은 하늘 아래서 우리는 한없이 겸손해진다.


“하늘이 하는 일을, 우리가 뭔 수로 대적하겠어.”

 

 

리틀 포레스트의 ‘겨울’


영화에서 혜원과 재하는 겨울에 양파를 심으며, 이 행위가 '아주 심기' 라는 것임을 알려준다. 겨울을 겪은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는 더 달달하고 단단하다. 그 과정에서 혜원은 무엇인가를 결심하고,


떠나왔던 그 겨울에 혜원은 돌아간다.

 

돌아왔던 그 겨울에 혜원은 떠나간다.

 

 

리틀포레스트 사진.jpg

 

 

 

정해진 궤도를 벗어난다는 것은


 

“긴 겨울을 뚫고 봄의 작은 정령들이 올라오는 그때까지 있으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극 중 혜원의 대사이다.


혜원은 많이 아파하고, 방황한다. 취직도 연애도 실패하고 시험에도 떨어지고 만다.

 

혜원은 선택한다.

 

매일 먹던 편의점 인스턴트와 같이 아무리 먹어도, 아무리 살아봐도 자꾸만 허기가 지는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곳에서는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인스턴트 요리가 없으므로, 직접 요리를 한다. 재료의 색을 어루만지고 질감을 느끼며 정성스레 오색 빛깔 시루떡을 빚는다. 정성을 다해 원하는 요리를 만들어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 봄을 가득 담은 꽃 파스타를 만들기도 하고, 농사를 짓고, 사과를 따고, 웃고, 떠들고, 추억한다.


단편적인 사회의 시선으로 본다면 혜원은 ‘실패한 사람’이다. 시험 합격, 결혼, 취직 성공 등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정해진 궤도에서는 벗어났을지라도 혜원은 할 일들을 하며 순환하는 계절을 충실히 살아낸다. 그리고 깨닫는다.

 

애초에 우리라는 행성의 궤도는 각자의 행성만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실패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선택에 대한 후회, 성공에 대한 성취감 또한 마주하게 된다.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는 순간은 너무나 자주 찾아오고, 성공이라는 명제 속 절대적 결과 기준에 비해 성공을 위한 절대적 과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사유하여 정할 수 없었던 기준들에 부합하려 너무 많이 소모된다. 진짜 원했던 선택들은 해야 할 것들에 가려져 유보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쌓인 탑은 영혼에 빈자리를 남기고, 남의 숨결 한 모금이 불어오면 휘청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혜원이 자신만의 은신처를 만들어 직접 자신의 삶을 가꾸고, 쉬어가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겨있었듯이, 우리가 얼마나 늦었든, 자유롭지 못하든, 실망스럽든, 실패했든 또다시 회복하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계절이 4개로 나뉘어 온기와 냉기를 넘나들 듯이, 생의 굴곡도, 관계의 온도가 그러하듯이, 모두는,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겠어도 결국 답을 찾은 채 다시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그저 우리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가지고 있으면 된다.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긴 여행의 출발점, 각자의 작은 숲을 말이다.

 

 

[김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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