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두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페르소나>

글 입력 2023.02.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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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다른 실험영화, <페르소나>

 

음산하고 어지러운, 또 기괴하고 몽롱한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색다른 영화를 통한 한층 다른 새로움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페르소나>는 러닝 타임 내내 혼을 쏙 빼놓기에 가장 적합한 영화가 될 것이다.

 

글을 쓰기 앞서, 먼저 이 영화를 난해하지만 재미있는 실험영화로 소개하고 싶다. 사실 나에게는 그간 실험영화는 꽤나 지루하고 어렵기만 할 것이라는 편견이 존재했다. 실제로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자 감상을 시도한 실험영화 몇몇에 실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숨에 그러한 편견을 뒤엎어 버렸다. 우선, 영상 속 이미지들의 간극 사이에서 펼쳐지는 상상계들이 매우 매력적인 영화이다. 한 장면 한 장면 연결고리를 파악하여 읽어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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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페르소나: 본래는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그것이 점차 인간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철학용어로는 이성적인 본성(本性)을 가진 개별적 존재자를 가리키며, 인간·천사·신 등을 페르소나로 부른다. <네이버 오픈 사전>


연극 배우 엘리자베스는 자발적인 실어증에 걸리게 되면서부터 정신과 간호사 알마의 간호를 받게 되는 이야기이다. 어딘가 닮아 보이는 두 여자의 정체성이 뒤얽히는 이야기라고 간단히 줄거리를 설명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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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의 배열

 

이미지 배열의 매혹성을 이야기할 때는 가장 먼저 아주 난해했던 오프닝 시퀀스에 관해 적어 보고자 한다. 겹쳐 투영되는 이미지들이 흩뿌려질 때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오프닝 시퀀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는 각각의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순차적으로 배치된다. 다음 이미지로 전환될 때마다 하얀색 디졸브 화면이 나오는데, 앞뒤로 연결되는 이미지들 간에는 인과관계라고 할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인위적인 하얀색 화면만이 존재할 뿐이다.

 

개연성이 없는 이미지들의 난잡한 배열과 중간중간 제시되는 영사기, 조명, 필름 등 다양한 영화 장치의 이미지, 마치 고전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피사체의 움직임들의 단순한 나열은 앞으로 보게 될 영화가 현실과는 완전히 분리되는 영화 그 자체가 될 것임을 명시해 주고 있다. 이렇게 꿈속을 유영하는 듯한 이미지들의 연속 속에 한 소년이 등장한다. 그곳은 병원일까? 소년은 정신적으로 무슨 문제를 앓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일어난 소년은 영사기에 손을 뻗는다. 영사기에 투영된 여성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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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과시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이 오프닝 시퀀스가 매력적인 이유는 이것이 단순한 이미지들이 배열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떻게 본다면 영화 속에서 다른 어떤 장면들보다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는 핵심 시퀀스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미지들의 배열은 단순한 실험성을 넘어 영화 자체의 복잡한 구성과 주제를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속에서 헤매고 있는 인물들과 그들의 정체성에 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 영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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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세 가지 질문으로 <페르소나>를 집약해 보고자 한다.

 

1. 소년은 두 여성으로 겹쳐 보이는 스크린에 닿고 싶고자 한다. 

2. 관객은 영화 속 두 여자의 정체성 중 과연 어떤 것이 진짜 인격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3. 그렇다면 그 소년은 대체 누구일까? 

 

두 여성의 얼굴과 소년의 얼굴은 혼합되어 배치되는데, 이는 두 여자들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혔고, 그 사이에 그 소년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여성이 아들에게 엄마 역할을 하지 못한 사실에서부터의 죄책감을 느끼는 장면에서 먼저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장면이 다시 반복될 때는 알마의 얼굴을 보여 준다. 종국에는 둘의 얼굴이 합쳐지는 몽타주가 등장하고, 알마는 자신이 엘리자베스에게 한 말에 대해 마치 자신이 엘리자베스라도 된 것처럼 스스로 대답한다. 알마는 임신 중절 경험이 있고, 엘리자베스 역시 엄마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두 여자가 느끼는 동질감을 표현하기 위하여 두 여성을 섞여 보이는 듯한 이미지를 사용하였는데, 마침내 알마의 피를 빨아먹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으로 둘의 완전한 합일까지 깔끔하게 떨어지는 구조가 완성되었다.

 

여기까지가 단순한 영화의 해석이었다면, 또 한편으로 영화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듯하다.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전달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관객들을 위해서인지 배경이 현실과 분리된 영화 속 세계, 허황의 세계 그 어딘가로 설정되어 있음을 계속해서 암시하며 특유의 묘하고 난해한 특징들을 쿨하게 인정하고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페르소나>가 사용한 다양한 낯설게 하기의 기법이다. 영화 속 낯설게 하기의 세계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며 펼쳐진다.

 

1. 이데올로기적 폭로

영화는 아이가 두 여자로 겹쳐지는 스크린에 손을 뻗는 장면을 오프닝 시퀀스와 마지막 장면에 배치하며 수미상관의 구조를 이룬다. 아이의 반복적인 행위, 그러나 닿지 못하는 여성들과의 물리적 거리감을 통해 마치 스크린을 통해 두 여자가 누구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관람을 마무리하게 되는 우리 관객들의 모습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구조적인 일체감을 이루는 와중에 영화의 장치적 요소들의 이미지들이 샅샅이 삽입되는데, 이때 실제로 영화의 제작진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를 통해서 영화가 영화로 시작하여 영화로 끝날 것임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듯 <페르소나>는 중간중간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을 삽입하여 그 스토리가 환상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기도 하지만, 몇몇 장면들은 그냥 대놓고 스토리가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인식시켜주기도 한다.


2. 브레이트 식의 거리 두기 기법

대표적으로는 목에 크림을 바르며 독백을 하는 알마의 모습을 예로 들 수 있겠는데, 이때 그녀의 시선은 마치 카메라 밖 관객들에게 향해 있는 듯하다. "별꼴이야. 자기 멋대로야. 자기 좋은 것만 하고."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듯한 기법 역시 영화가 현실이 아닌 꾸며진 이야기임을 강조하는 데 일조한다. 이렇게 영화는 전형적인 영화 문법에 반격하며 영화의 현장 그 자체를 폭로하면서 현실로부터 영화를 독립시킨다.

 

3. 삼위일체

양의 피를 짜내는 이미지, 못 박히는 손의 이미지, 교회와 같이 보이는 건물의 이미지, 이 세 이미지들의 조합 역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장면들은 정체성 혼란이라는 영화의 대표적인 주제를 두고 삼위일체의 문제로 접근을 시도한 감독의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중반부에서는 뜬금없이 예수의 조각상 이미지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은 역사상 오랜 기간 동안 계속해서 문제되어 왔던, 성부 성자 및 성령이라 일컫는 하느님의 인격 중 과연 어떤 것이 진짜 인격인가에 관한 문제를 두고 감독이 비유적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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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에 두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고대 연극에서 쓰던 가면 페르소나에 숨어 있는 듯 묘하게 얽혀 있는 두 여자의 이야기. 두 여자는 과연 서로의 분신으로서 존재하는 것일까, 각기 다른 인격체로서 존재하는 것일까?

 

영화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하고, 무의식과 의식을 자유롭게 오가는 환상을 한번 체험해 볼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신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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