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놀아나는 나의 레드

매혹적이고 매서운 색깔의 이야기, 연극 <레드>
글 입력 2023.02.19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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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연극 <레드>에 대한 스포성 글과

다수의 장면 묘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안 보고는 못 베길 것 같았던


 

친구가 적중률 100%라는 심리 테스트를 해준 적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색깔과 그 이유를 그 색깔을 보면 드는 생각들로 연관 지어 말해보란다. 별 고민 없이 ‘레드’를 말했다. 이유는 강렬해서. 이어서 친구가 심리테스트 풀이를 해주었다. 이 색깔을 좋아하는 이유가 내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나의 이미지라고 했다. 맞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레드가 끌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나랑 잘 어울려서. 이 단순한 이유 하나로 레드를 꽤 오랫동안 좋아했다. 그리고 작년, 서울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친해졌던 인디스트 중 한 명이 자신의 인생 연극으로 <레드>를 고르며 재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난 <레드>를 안 볼 수가 없었다. <레드>를 볼 동기가 충만해 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연극과를 재학하면서 매 학기 계속된 제작으로 연극에 지쳐있었다. 선뜻 예매까지 결심이 서지 않았다. 미루고 미루다가 막공으로 겨우 예매하였다.

  

따라서 연극을 보는 게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연극을 볼 때 내 철칙 중 하나가 있다. 관객도 배우만큼 컨디션이 최상이어야 한다. 그래야 연극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잠도 많이 자고 배도 채우고 커피까지 마신 상태였다. 내 자리는 일명 귀족석이라고 불리는 박스석 이였다. 연극에서 박스석을 풀어놓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있으면 굳이 박스석으로 예매하는 편이다. 좀 더 특별하게 관극할 수 있는 기분이랄까. 잘 안 보일까 걱정되긴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안 보였으면 박스석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자리를 찾았다. 당황스럽게 내 자리에는 짐이 있었다. 다시 한번 자리를 확인했다. 분명히 내 자리였다. 딱 봐도 옆 사람의 짐 같았다.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말을 꺼냈다. 다행히 금방 비켜주었고 슬슬 연극에 몰입할 준비를 했다. 일단 무대를 살폈다. 살짝 밝혀진 무대는 하이퍼 리얼리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당장 화가가 살아도 될 것 같은, 리얼한 작업실이었다. 고약한 페인트 냄새가 났고, 페인트를 말리느라 눅눅해진 작업실 특유의 습한 기운도 풍겼다. 기대를 품으며 기도를 하고, 핸드폰을 끄고, 자리를 정비했다. 그 사이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탁, 탁, 탁. 불길한 기분이 엄습했다. 옆자리에 앉은 분이 박스석 앞 난간 밑에서 내는 소리였다. 멈추겠거니 하며 참아보려고 했지만 앞 관객들의 눈빛도 불편함을 호소하는 듯했다. 더 이상 얼굴 붉히는 일을 만들기 싫었지만 목소리를 냈다. 이 과정이 꽤나 피곤했는지, 서막이 지루했는지 모르겠지만 연극의 처음 40분 정도를 졸아버렸다. 

 

이 연극은 러시아 출신의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와 가상인물인 그의 조수 켄의 2인극으로 구성되어 있다. 솔직히 연극의 처음은 지루한 교수님과 제자의 대화 같았다. 켄이 조수로 들어오면서 로스코는 그의 사상, 이념, 별 얘기를 다 해댄다. 별로 공감되지도 않는 이론적인 말이 수두룩해서 재미가 없었다. 창피한 말이지만 연극에서 졸았던 적은 셀 수 없이 많다. 연극 중에서도 특히 텍스트 중심인 극들은 한번 흐름을 놓치면 지루해지기 쉽다. 놀랍게도 이 졸았던 연극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한번 졸면 끝까지 졸게 된다는 것. 하지만 <레드>는 이걸 깼다.

 

내 모든 졸음이 달아났던 장면은 로스코와 켄이 함께 레드를 칠하는 장면이었다. 격정적인 클래식 음악과 경기를 치르듯 공격적인 붓질이 만들어낸 레드는 매서웠다. 좋아하는 색인만큼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았던 레드가 낯설게 느껴졌다. 무대에 막 색칠된 레드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신기하게도 지금껏 목격했던 수많은 피들이 생각났다. 언덕에서 뛰다 넘어져 까진 다리에서 흘러나온 피, 어안이 벙벙해졌던 첫 생리혈, 잠든 동생의 발차기에 맞아 터진 쌍코피가 멈추지 않았던 순간. 내 기억 속 레드는 피상적으로 연상될 수밖에 없는, 지독한 픠의 기억들이었다. 레드 그림의 색과 질감이 무대의 조명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는데, 이상하게 어두워질수록 편안해지는 듯했다. 밝은 레드는 어둠과 아픔을 담고 있는 색이 지나치게 밝아서 일까. 인위적인 느낌이 났다. 

 

무대 위 레드 그림은 블랙이 부분적으로 덧발라지면서 완성된 듯했다. 이 블랙을 가지고 로스코는 "삶에서 두려운 것이 하나 있거든. 그건 언젠가 블랙이 레드를 삼켜 버릴 거라는 거야.”라는 대사를 한다. 그는 검은색이 부재와 죽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켄도 나도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블랙이 레드에게 잡아먹힌 걸 수도 있지 않나? 블랙과 레드가 한 그림에 공존하는 순간, 잡아 먹히었을지 잡아먹은 건지는 알 수 없다. 난 블랙이 공백, 비어 있어 깔끔하다고 생각해 왔다. 평소 연극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도 암전이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순간, 마음에 평화가 온다고 할까? 동시에 어떤 것이 펼쳐질까 흥분된다. 도리어 로스코는 내 블랙의 해석을 화이트에 둔 듯했다. 켄도 이런 로스코에게 색을 인격체로서 과잉 부여한다고 했다. 블랙과 레드가 꽤 어울리는 색 조합이라고 생각했던 난, 어느 순간 블랙과 레드가 썩은 사과와 같은 부조화로 보이기 시작했다.

 

연극은 켄과 로스코가 말다툼을 하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켄은 로스코 밑에서 일하면서 같은 화가로서 존경과 경멸을 품고 있었다. 2년간 한 번도 자신을 궁금해하지 않았다며, 창문은 다 막아놓고 자기 캔버스에 갇혀 사는 로스코에게 행복하냐고 큰소리를 친다. 로스코도 이에 한마디 한마디 다 받아치다가 ‘레드’를 꺼내는 순간 작아진다. 그도 인정한다. 그의 모든 우울을 담은 그림을 파는 것이 맞는 건지. 이 그림을 사는 사람도 우울에 빠질 걸 알면서 그림을 파는 건 아무것도 주지 않은 채 칼이 가득한 방에 아이를 내보내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켄이 ‘포시즌스 레스토랑’을 언급했을 때, 로스코는 켄을 해고하기까지 이른다. 제일 비싼 벽난로 위의 그림들을 그리고 있다는 말이 정곡을 찌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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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로스코는 포시즌스 레스토랑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연극은 그의 외로운 최후를 암시하는 장면을 보여준 채 끝이 난다. 연극을 보고 박스석에 앉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스석에서는 객석과 무대가 함께 눈에 들어오다 보니 1층 객석의 네모난 구역이 레드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로스코가 점점 레드에 빠져 온 신발이 빨갛게 물들고 공연장 내에 페인트 냄새가 가득해질수록, 나도 이 레드의 바다에 흥건해지는 느낌이었다. 한동안은 레드를 목격할 때마다 이색의 묘한 기분 속에서 헤엄치고 싶다.

 

 

[신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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