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그럼에도, [영화]

영화 <백만엔 걸 스즈코>를 감상하고
글 입력 2023.02.1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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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코는 전문대를 나왔지만, 취업이 어려워 아르바이트하며 부모님과 함께 사는 평범한 20대 여성이다. 여느 20대처럼 스즈코는 독립을 꿈꾸지만, 아르바이트 벌이로는 역부족이다. 그러던 중 친구에게 함께 살 것을 권유 받고 이에 응한다. 하지만 친구는 이사 당일 연락이 되지 않고 친구의 남자친구만이 함께 살기로 했던 집에 들어와 있었다. 방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와 함께 살던 어느 날, 스즈코가 길에서 데려온 새끼 고양이를 그 남자는 짜증 난다며 내다 버렸고, 스즈코는 화가 나 그가 외출하는 동안 그의 모든 짐을 버려 버린다. 그 짐에 100만 엔이 들어있었다는 이유로 스즈코는 벌금형에 처하고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로 인한 주위의 시선과 본인 자신을 견디다 못한 스즈코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도시로 가서 일하며 돈을 모으고, 100만 엔이 모이면 다른 도시로 떠나는 식의 삶을 계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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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코는 경찰 조사관에게 “그래서 둘이 했어?”라는 질문을 지속해서 받는다. 이런 무례한 질문은 아무리 피고인 신분이라 해도 젊은 여성이기에 당하는 불합리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스즈코는 이에 대해 “저는 잘못한 게 없어요”라는 말을 반복한다. 스즈코가 남의 짐을 허락 없이 내다 버린 것은 물론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이지만, 전반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영화는 관객이 스즈코가 벌을 받는 게 스즈코의 탓만은 아닌 것으로 인지하게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람들은 내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 인생 속에서 나의 의지와는 다른 억울한 일로 삶이 꼬여버리는 것만 같은 경험을 하곤 한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에 대해 영화는 그것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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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코의 여정은 젊은 여성에게 결코 상냥하지만은 않은 현실을 잘 보여준다. 첫 번째로 도착한 바닷가 마을에서 만난 청년은 스즈코를 좋아한다는 명목하에 스즈코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치근덕댄다. 두 번째 산골 마을에서는 친절한듯하지만 스즈코가 목욕하거나 잠자고 있는 동안 불쑥불쑥 나타나 불편하게 하는 마을 청년과 스즈코에게 복숭아 아가씨가 되어 달라고 강요하는 마을 사람들 때문에 도망치듯 마을을 떠난다. 이는 ‘청춘’에게 마음껏 ‘자유’를 즐기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여성들에게 허울 좋고 어쩌면 무책임하기까지 한 말이라는 걸 보여준다. 젊은 여성이 연고 없는 외진 도시에 아무런 걱정 없이 머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고 미래를 걱정하기에는 사치일 정도로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등장하곤 한다.

 

시골 마을에 질려버린 스즈코는 세 번째 마을로 도쿄에서 멀지 않은 작은 도시를 택한다. 역시나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만,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친절한 또래 남자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고,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면서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곧 조용하고 내성적인 스즈코와 달리 쾌활하고 붙임성 좋은 새로운 여자 아르바이트생과 가깝게 지내고 심지어는 스즈코에게 돈을 빌리기까지 한다. 스즈코는 슬퍼하지만, 남동생의 편지를 받고 마음을 굳게 먹는다. 남동생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는데, 누나 스즈코가 다른 사람의 시선 속에서 늘 당당하려 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자기도 도망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이에 스즈코는 위로를 받고 또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로의 여정을 계속한다.

 

영화는 장소 이동에 따라 스즈코가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즈코는 전과자 낙인이 찍힌 도쿄에서 도망쳐 나오고, 바닷가 마을에서도 말없이 훌쩍 떠나는 것으로 자신에게 접근하던 남성에게 거절을 대체한다. 그런데 다음 장소인 복숭아 마을에서는 많은 사람 앞에서 복숭아 아가씨를 할 수 없다고 외치기도 하고, 마지막 작은 도시에서는 남자친구에게 직설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들을 건네기도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웃으며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스즈코가 한 층 더 강해졌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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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코는 남동생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만나기 위해 헤어지는 거야”라는 말을 전한다. 이는 영화에서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인데, 그 헤어짐이 두려워 침묵하고 무리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게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진실한 서로를 만나고 각자를 마주하기 위해서 헤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너무 슬퍼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너무나 좋은 말이고 영화의 흐름과도 잘 맞지만,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살려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스즈코의 편지와 내레이션을 통해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 아쉽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결코 뻔하지만은 않다. 스즈코는 사람에게 기대는 것은 위태로운 선택이라는 걸 배우면서도,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깨닫는다.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도 여정을 지속한다. 쉽지만은 않은 모험이라는 걸 느끼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스즈코의 씩씩한 모습이 관객들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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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새로운 마을도, 새로운 일자리도, 새로운 인연도 스즈코에게 정답이 되어 주지 못했다. 하지만 스즈코는 낯선 곳에서 온전히 자기자신과 마주한다. 그리고 도망이 아닌 도약을 시작한다. 누구나 한번 쯤 꿈꾸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가장 강인하고 씩씩하게 그려낸 영화이다.

 

 

[최아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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