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친절한 가이드로 다시 만나는 베토벤 - 클래식 디깅 클럽

글 입력 2023.02.1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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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클래식 디깅 클럽 - 베토벤 (1).jpg

 

 

악보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은 일정한 규칙을 엄정히 따른다. 그럼에도 그간의 조합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기에 악보 위에서 작곡가는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다. 그리고 음악의 악성이라 불리우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육체적 한계마저 뛰어넘으며 그 순전한 가능성을 탐색한 인물이다. 작곡가로서는 생명과도 같은 청력을 잃어가는 시련 가운데서도 그는 음악의 역사, 나아가 인류의 역사에 영원히 새겨질 업적을 남겼다. 베토벤을 집어삼킨 비운이 오히려 음악을 향한 열정에 기름을 부어 그의 천재성을 폭발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생애는 그의 작품 못지않게 뜨거운 주목을 받아 왔다. 그의 작품세계를 분석할 때도 그가 청력을 잃었던 시기를 기준 삼아 분류되곤 한다. 특히 동시대를 살았던 모차르트와 하이든 등 또 다른 거장들과의 관계 혹은 가족사, 심지어는 연애사 등의 그의 인간적 생애마저도 관심의 대상이다. 음악이야말로 창작하는 매 순간의 심상이 가장 직관적으로 반영되는 장르이기에, 작곡가의 삶을 그의 작품과 연관지어 바라보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난 2월 4일, 그런 베토벤의 생애를 설명을 곁들인 뛰어난 음악가들의 연주로 만나볼 수 있는 공연이 진행됐다. 스톰프뮤직에서 주최, 주관한 이번 공연은 디제이가 공연리스트를 짜기 위해 자신만의 음악을 ‘디깅(digging)’하듯, 나의 취향에 맞는 클래식 작곡가의 음악을 만나보는 시간인 ‘클래식 디깅 클럽’ 시리즈의 첫 번째 무대로 기획됐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문경의 해설과 피아니스트 정한빈, 바이올리니스트 이유진, 비올리스트 이신규, 첼리스트 이경준의 연주가 함께한다.


토요일 오후 2시, 공연이 예정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 들어서자 무대 위의 피아노 한 대와 스크린에 영사된 공연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베토벤의 모습을 채도 높은 색감의 일러스트로 표현한 포스터 이미지와 ‘클래식 디깅 클럽’이라는 공연 제목에서 트렌디한 분위기가 묻어났다. 클래식 연주회 특유의 무게를 내려놓고 감상자에게 한 발 먼저 다가오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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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에 앉아 오늘의 몇 가지 목표를 머릿속에 새겨봤다. 첫 번째, 클래식 공연이니만큼 연주자들의 선율에 온전히 빠져드는 것. 두 번째, 베토벤이 삶 가운데 느꼈던 심상을 그가 남긴 음악으로 더듬어 보는 것. 특히 이번 공연은 베토벤의 삶에 대한 해설을 곁들이는 공연이었기에 두 번째 목표에 더 큰 기대감을 걸어보면서 관람 준비를 마쳤다.


정시가 되자 김문경 해설가가 무대 위로 올라 짧은 인사와 함께 곧바로 1부의 설명을 시작했다. 1부 테마는 ‘악성 베토벤의 탄생’으로 베토벤의 생애를 간략히 훑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가 태어난 도시 ‘본’, 그리고 청력을 잃고 유서를 쓰기 위해 향했던 도시 ‘하일리겐슈타트’를 마치 가이드투어를 하듯 살펴보았다. 베토벤 생가나 유서의 집 등 현재 베토벤을 기념하기 위해 꾸며진 장소들도 다양한 자료들로 만나볼 수 있었다.


뒤이어 베토벤의 청력 손실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이 이루어졌다. 청력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베토벤은 그의 뛰어난 재능 덕분에 마치 시나리오를 쓰듯 음률을 상상하며 작곡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해설가는 청력을 잃는 것이 세상과의 단절과도 같다는 점을 설명하며 베토벤이 당시에 느꼈을 암울한 심경을 생생히 전하기도 했다. 틈틈히 설명에 도움이 되는 곡들을 직접 연주하며 해설에 풍성함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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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의 첫 번째 곡으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이 준비되어 있었다. ‘비창’으로 잘 알려진 이 곡은 베토벤의 청력 악화가 시작된 1789-1799년경에 작곡된 소나타로, 피아니스트 정한빈이 무대에 올라 전 악장을 연주했다. 제목처럼 1악장은 다소 무겁고 비극적인 분위기로 출발한다. 하지만, 이내 장중하지만 조급하게 상승하는 선율로 듣는 귀의  긴장감을 자극했다. 묵직한 공백의 기운이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극적으로 몰아치는 흐름 가운데 집중력을 놓칠 수 없는 무대였다. 


2악장은 서정적인 분위기로 시작됐다. 공연의 포문을 여는 첫 번째 연주가 부담하는 무게에 곡의 장엄함이 더해져 다소 긴장감이 어렸던 직전의 연주와는 대조적으로, 피아노 현의 맑고 깊은 울림과 편안한 감정이 묻어나는 곡이었다. 귀에 익숙한 부드러운 선율이 마치 담담하고도 차분한 노랫소리처럼 흘러 지나갔다. 


하지만 마지막 3악장은 다시금 격정적인 감정을 소환한다. 잘 알려진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제곡의 원곡이 바로 ‘비창’의 3악장으로, 정서적인 혼란의 파도를 고스란히 담아낸 곡이다. 그 다채로운 변화에 더불어 연주자의 완전한 몰입이 돋보이는 순서였다. 곡에 녹아든 감정적 혼돈을 되살리는 무르익은 강약조절과 섬세한 페달링 또한 인상적이었다. 


1부의 두 번째 순서는 청력이 악화되는 과정 중에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8번’ 1악장으로, 베토벤이  피아니스트 정한빈과 함께 바이올리니스트 이유진이 무대에 올랐다. 이 곡은 베토벤이 귀를 치료하기 위해 조용한 시골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 머물렀던 1802년 당시 완성한 곡으로, 이때는 그가 ‘하일리겐슈타인 유서’를 작성한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글이 실제로 유서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두 동생들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한탄하는 중에서도, 죽음의 그늘 앞에서도 내려놓을 수 없는 음악을 향한 투지를 완고히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언제 오든 나는 기꺼이 맞을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예술적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동안은 설령 내 운명이 아무리 가혹할지라도 죽고 싶지 않다. (내 재능이 충분히 꽃필 때까지) 삶을 지속하고 싶다. 허나 (죽음이 예상 밖으로 일찍 찾아오더라도) 기꺼이 죽으리라. 그러면 끝이 없는 고뇌에서 해방될 수 있을 테니까.

 

죽음이여, 언제든 오라. 나는 당당히 네 앞으로 가 너를 맞으리라. 잘 있거라. 죽은 다음에도 잊지 말아다오. 그럴 만한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


하일리겐슈타트, 1802년 10월 6일, 루드비히 반 베토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베토벤의 유서 (세상의 모든 지식, 2007. 6. 25., 김흥식)

 


그래서인지 이 곡에서는 베토벤이 느꼈을 비통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한적한 시골의 자연 정취에 푹 젖어 있을 당시 썼기 때문인지 화창한 날씨를 닮은 활기찬 기운을 뿜어냈다. 특히나 바이올린 특유의 매끄러운 음색과 화려한 기교가 돋보였던 곡으로,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의 어울림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두 악기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실제로도 두 연주자는 틈틈히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으며 연주를 이어갔다. 그러한 화합이 이 곡의 생동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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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베토벤의 젊은 시절을 대표하는 두 가지 곡으로 1부가 마무리된 후, 2부의 테마는 ‘모차르트를 디깅한 베토벤’으로 진행됐다. 다시 무대에 오른 김문경 해설가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관계에 대한 해설을 시작했다. 베토벤은 하이든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스승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고, 모차르트를 사사하기를 원했지만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베토벤은 변함없이 모차르트를 높이 평가했기에 작품세계에서도 그의 영향력을 쉽게 엿볼 수 있다.


2부의 첫 곡인 ‘마술피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베토벤이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주제선율을 인용해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이번 순서에서는 첼리스트 이경준이 피아니스트 정한빈과 무대를 펼쳤다. 유려한 피아노 선율과 묵직한 첼로의 음색이 어우러져 현장의 공기를 이완시키고, 여유로우면서도 경쾌한 분위기를 가득 채웠다.


2부의 마지막 곡으로는 ‘피아노 콰르텟 다 장조 3번’이 준비되어 있었다. 앞서 등장한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의 연주에 비올리스트 이신규가 합류해 아름다운 4중주를 선보였다. 네 악기가 한 발짝씩 서로 호흡을 맞추며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절제된 통일감이 인상적이었는데, 말 그대로 ‘합주다운 합주’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떤 악기와도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는, 비올라 특유의 부드럽고 균형 잡힌 음색이 두드러지는 곡이었다.


*

 

셀 수 없이 많은 음악 장르들이 있지만 청각에서 출발해 온 정신을 풍요로움으로 채워주는 장르는 클래식만한 것이 없다. 한치의 부족함도 과함도 없는 완연한 조화에 빠져드는 순간, 잡념을 밀어내고 그 순간의 음악적 감상에만 오롯이 빠져들게 해준다. 특히나 유수의 경력을 자랑하는 공연진답게 연주 그 자체로는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공연의 구성 측면에서 공연 컨셉과는 다소 동떨어진 접근 방식이 아쉬움을 남겼다. 개인의 취향에 집중해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든다는 ‘디깅’이라는 컨셉과는 달리 베토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음악가다. 그렇다면 베토벤의 곡들 중 비교적 대중에게 낯선 곡들을 발굴해 그의 이면을 심도 있게 소개하는 방식이었다면 어땠을까.


굳이 이러한 방식이 아니더라도, ‘디깅’이라는 단어를 통해 기대했던 바보다는 얕은 층위의 해설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아쉬웠다. 해설과 함께하는 클래식 공연은 흔치 않은 만큼 해설이 감상의 길잡이가 되어주길 바랐지만, 베토벤의 생애를 간단히 소개하는 데에 그쳤다. 곡이 작곡될 당시의 베토벤의 상황이나 심상에 조금 더 집중해 연주곡과 긴밀히 밀착된 해설을 제공했다면 어땠을까. 특히 2부 해설의 경우 곡들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없는 상태로 감상하게 되어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클래식 디깅 클럽은 2월 25일 저녁 8시, 쇼팽편으로 다시 한 번 돌아오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간 다음 차시의 공연과 해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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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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