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절망 속 예술가의 힘찬 날갯짓, 그 바람을 느끼며 - 클래식 디깅 클럽 : 베토벤

글 입력 2023.02.1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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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디깅 클럽 : 한 공연에 한 작곡가를 디깅(Digging)하기



‘디깅’이란 ‘채굴, 발굴’ 등을 뜻하는 단어로, 디제이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공연 리스트를 채우기 위해 음악을 찾는 행위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 일반인들에게도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자신만의 특색 있는 플레이리스트를 짜는 행위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와 대상에 집중하여 파고드는 것을 ‘디깅’ 문화라고 일컫는다.


‘클래식 디깅 클럽’은 이러한 ‘디깅’ 용어를 공연 제목에 내세우며 한 공연에 단 한 명의 클래식 작곡가를 집중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지난 4일의 공연에서는 악성(樂聖)이라 불리며 음악가들의 음악가로 여겨졌던 베토벤이 그 주인공이었다.



[크기변환][포스터] 클래식 디깅 클럽 - 베토벤.jpg


 

 

쉽고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들여다보는 베토벤의 삶



나는 베토벤을 즐겨 듣는 사람이 아닐뿐더러 클래식 음악 장르 안에서 어떤 작곡가에 대한 특별한 선호도 아직 없는, 소위 말해 ‘머글’이기 때문에 공연 관람 전에 약간의 걱정이 앞섰다. 


‘머글인 내가 한 작곡가를 디깅하는 공연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걱정.


그러나 ‘클래식 디깅 클럽’은 베토벤의 음악을 잘 아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마니아틱한 공연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껏 봐온 어떤 클래식 연주회보다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연주 전 진행된 해설에 있었다.


이전에도 TV 프로그램이나 책을 통해 음악가들의 생애와 음악 세계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된 후에는 왠지 모르게 그들의 음악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곤 했지만, 막상 직접 공연장에 가서 말없이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연주를 듣다 보면 곡이나 작곡가별 특징을 잘 짚어내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클래식 디깅 클럽’은 이러한 머글의 설움을 정확하게 포착한 듯하다.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김문경 해설가의 쉽고 재미있는 해설에 연이어서 연주를 들으니 몰입과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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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일화들, 그리고 음악



1부의 해설은 서서히 진행되었던 베토벤의 청력 이상을 대주제로 삼았다.


‘deaf’와 ‘dead’가 철자 하나 차이이듯 음악가에게 청력 상실이란 죽음과도 같은 치명적인 일일 것이다. 베토벤 역시 자신이 서서히 청력을 잃고 있다는 사실–이외에도 수많은 건강상의 문제를 함께 겪긴 했지만-에 절망감을 느껴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요양하던 중 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1부의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청력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에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 8번 전 악장, 그리고 하일리겐슈타트 유서가 쓰였던 시기인 1802년에 완성된 바이올린 소나타 8번의 1악장으로 구성되었다.


2부에서 김문경 해설가는 관객들을 베토벤의 고향인 본(Bonn)으로 안내하며 그의 가족사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또한, 모차르트를 동경했던 베토벤이 그에게 배움을 얻고자 빈으로 향했지만, 본으로 금방 다시 돌아와야 했던 일화를 언급하고 ‘모차르트를 디깅한 베토벤’이라는 주제 아래에서 앞으로 이어질 곡들을 소개하였다.


피아노와 첼로 연주자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테마에 의한 7가지 변주곡’을 선보인 이후, 베토벤이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아 작곡하게 된 피아노 콰르텟 다 장조 3번을 네 명의 연주자가 아름다운 하모니로 함께 연주하며 공연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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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 예술가의 힘찬 날갯짓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베토벤이 유서를 쓸 만큼 절망적인 상황에서 만들어진 곡임에도 열정적이고 경쾌한 여유를 담은 바이올린 소나타 8번 1악장이었다.


이유진 바이올리니스트의 수려하고 당찬 표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정한빈 피아니스트와 마치 대화를 나누는 듯한 자연스러운 호흡을 보여준 점도 좋았다.


코로나 이후로 관현악기 외의 악기 연주자들은 무대 위에서도 마스크를 쓴 채로 연주를 해왔지만, 다른 무대예술에 비해서 악기 연주는 마스크로 인한 표현의 제약이 미미한 분야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연주자들의 얼굴을 온전히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자, 장르를 불문하고 마스크가 그동안 예술가와 향유자 간의 소통에 굉장히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유진 바이올리니스트의 눈빛, 표정과 함께 들은 연주는 절벽에서도 피어나려는 의지를 품은 꽃과 같은 인상을 주었고, 연주자들 간의 호흡은 조화로움이 주는 감동을 배가했다. 이는 연주자들의 모든 표현을 제대로 볼 수 있었기에 전달된 감정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베토벤은 청력 상실을 비롯한 여러 질병으로 인해, 그리고 현대 예술인들은 범세계적 감염병으로 인해 예술 활동에 여러 고충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베토벤의 오래된 음악들을 현대 연주가들의 해석과 표현으로 듣고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날아오르고자 힘차게 날갯짓을 하는 예술가들의 마음을 전달받은 기분이 든다.

 

 

 

송진희 컬쳐리스트.jpg

 

 

[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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