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베토벤을 디깅할 사람들 모임 - 클래식 디깅 클럽: 베토벤 [공연]

글 입력 2023.02.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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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4일 토요일 낮에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 모인 사람들은 함께 '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디깅(Digging)'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름하여 <클래식 디깅 클럽 - 베토벤>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생소한 이름의 공연일 것이다. <클래식 디깅 클럽>은 최근 떠오르는 트렌드 '디깅' 문화에 맞추어 나만 알고 싶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작곡가별로 만나보는 공연이다. 시리즈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번 공연의 첫 주자는 음악가들의 음악가인 ‘악성’ 베토벤이다.


디깅(Digging)이란 '발굴하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로, 흥미를 가진 대상에 대해 탐구하고 조사하고 찾아보는 의미로 쓰인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보다 개인의 취향을 찾아 쫓는 문화 속에서 새로 생겨난 표현이다. 현재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 자신의 특색 있는 플레이리스트를 짜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클래식 디깅 클럽>의 시작을 알리는 이번 베토벤 공연에서는 앞서 소개한 디깅이라는 단어에 맞게 나만 알고 싶은, 내가 좋아하는 베토벤의 음악을 만나볼 수 있다.


음악을 듣기 전에 먼저 해당 음악가에 관한 이야기와 들려줄 음악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쉽고 재미있는 해설로 즐기고, 그가 표현해낸 다양한 악기의 매력을 한자리에서 누린다. 사실 이런 흐름은 클래식과 더 친해지고 싶은 다수의 관객들을 위해 여러 클래식 공연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클래식 디깅 클럽>이 가진 특별한 점은 그를 좋아하거나 그가 좋아하는 관계에 놓인 음악가의 이야기까지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베토벤에게는 음악 신동들의 워너비로 불리는 모차르트가 그런 존재였다.

 

 

[포스터] 클래식 디깅 클럽 - 베토벤.jpg


 

'디깅 클럽'도 낯선데 '클래식 디깅 클럽'에 용기 내어 참여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베토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253년에 먼 지역 '본'에서 탄생했는데 늘 심리적으로는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베토벤의 대표적인 1820년작 초상화에서의 강렬한 눈빛과 헝클어진 은빛 머리카락이 사자처럼 느껴져서 친근감을 느낀 것인지, 모차르트와 함께 음악 교육 초기에 학습한 음악가이기 때문인지는 모른다.


이번 기회로 더 친밀한 존재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 그를 '디깅'하러 떠났다. 공연은 인터미션을 전후로 1부, 2부의 순서로 나누어져 있었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문경 해설이 베토벤의 청력과 관련한 생애 이야기를 들려준 뒤, 정한빈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소나타 8번 다장조, 작품번호 13 '비창'을 모두 연주했다. 뒤이어 이유진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바이올린 소나타 8번 사장조, 작품번호 30-3, 1악장을 연주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다시 음악 칼럼니스트 김문경 해설이 돌아와 모든 콘텐츠가 베토벤 중심으로 이루어진 독일의 작은 도시 '본'에 대한 재밌는 소개를 하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가정에 관한 공통점을 이야기했다. 이어 정한빈 피아니스트와 이경준 첼리스트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테마에 의한 베토벤의 7가지 변주곡을 연주했고, 이유진 바이올리니스트와 이신규 비올리스트까지 네 명의 연주자가 모두 무대에 올라 피아노 4중주 제3번 다장조, 작품번호 36-3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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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과 연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베토벤의 음악이 모두 굉장했다.

 

1부 때 음악 칼럼니스트 김문경의 해설은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로 듣기 전에 이 음악들을 작곡하던 당시의 베토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비창' 소나타가 작곡된 1798년에 본격적으로 청력 저하가 일어나던 상황을 말해주고, 직접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듯 손가락을 움직이지만 어떤 음도 들리지 않는 상황을 재연하며 당시 베토벤이 어떤 마음으로 작곡을 이어갔을지 생각하게 했다.


1부에 들려준 피아노 소나타 8번과 바이올린 소나타 8번은 모두 30대 초반 청년 베토벤의 작품이다. 젊은 나이에 좋은 음악을 남긴 위대한 음악가들이 있지만, 베토벤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가 당시 청력이 온전치 않았다는 것이다.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가 50세에 한순간에 청력을 잃었다면, 베토벤은 손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 서서히 청력을 잃었다. 음악가에게 청력 상실은 사형선고와도 같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작곡을 이어나갔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후대에 많은 명곡을 남겼다. 


처음 이 공간을 아름답게 가득 채운 베토벤의 음악은 이날 공연에서 아마 가장 잘 알려진 '비창' 소나타였다. 1798년에 작곡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초기 대표작이다. 당시 베토벤은 많은 소나타를 발표하며 새로운 성장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었는데, 안타깝게도 청력에 이상을 처음 감지한 시기이다. '비창'이라는 명칭은 '월광'이나 '열정'과는 달리 베토벤이 스스로 지어 부른 제명이었다고 한다. 악장과 악장 사이에 잠시 흐르는 정적마저 음악적으로 느껴지는 놀라운 음악과 연주였다. 


두 번째 곡 바이올린 소나타 8번 사장조, 작품번호 30-3은 1801년에서 이듬해에 걸쳐 두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함께 작곡되었다.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의 아름다운 숲에서 쾌적한 여름날 작곡한 소나타로 알려져 있는데,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주고받는 연주가 기운차고 흥겨웠다. 

 

베토벤이 그의 청력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빈'의 외곽에 있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 머무르던 시기에 바이올린 소나타 곡 작업을 완료했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로 알려진 글은 그곳에서 1802년 10월에 편지 형식을 빌려 작성되었다. 베토벤 사후에 발견된 이 유서를 통해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발견되었는데, 그가 당시에 느꼈던 혼란과 두려움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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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베토벤의 고향 현재 독일의 작은 도시 '본'에 대한 소개로 시작했다. 전체 이름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정확히 따지면 베토벤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당시에 그가 태어난 곳은 독일 족속의 신성 로마 제국 쾰른 선제후국에 속한 '본' 지역이었다. 신성 로마제국은 1,000년 역사 중에 여러 세대 동안 '빈'을 통치의 중심으로 삼았다. 나폴레옹 전쟁 중 비틀거리다가 1806년에 공식적으로 제국이 해체됐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이 정도의 사실은 거대한 정치의 흐름 속에서 일어난 한 가지 현상에 지나지 않지만,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1,000년 역사가 끝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베토벤은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둔 1801년 6월에 '본'에 있던 어린 시절 친구인 프란츠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의 '빈' 유학이 조만간 끝나고 '조국'으로 생각하는 쾰른 선제후가 지배하고 있던 '본'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베토벤은 돌아가지 않고, 그의 조국은 프랑스 혁명의 여파에 휩쓸려 사라졌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곡이 1부 마지막에 들은 바이올린 소나타 8번이고, 2부의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테마의 변주곡이다. 베토벤은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를 테마로 두 곡의 변주곡을 썼다. '연인이냐 아내냐'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과, 이번 공연에서 연주한 '사랑을 느끼는 남자들은' 주제에 의한 7가지 변주곡이다. 모차르트 원곡과 베토벤의 변주곡을 연속으로 들으면 두 천재의 음악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베토벤은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궁정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훌륭한 교육을 시키기 위해 찾은 궁정 음악가들 중 오르가니스트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를 만났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편지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에 베토벤이 네페에게 자기의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는 내용이 있다. 

 

"하느님이 제 예술의 발전을 위해 선생님을 통해 내려주신 그 많은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만약 제가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그 성공은 선생님 덕택이라 믿습니다."


네페 자신도 1783년 3월 2일자 음악잡지에서 베토벤이 지금까지와 같이 성장하면 틀림없이 제2의 모차르트가 되리라고 단언했다. 그로부터 4년 뒤 그는 17살에 모차르트에게 사사받기 위해 '빈' 여행에 올랐다.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모차르트는 언젠가 베토벤이 세상의 화제에 오르리라고 예언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1787년에 '본'이라는 작은 도시를 떠나 넓은 세상을 경험했지만 즐겁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마지막 곡은 이날 연주한 음악 중 가장 어린 베토벤의 작품이다. 1785년 그는 무려 15세였다. 베토벤 피아노 콰르텟 제3번 다장조는 피아노 소나타 3번과 같은 장조의 주제가 차용된 밝은 분위기의 곡으로, 다양한 악기의 아름다운 앙상블을 느낄 수 있다. 베토벤은 이 곡을 작곡하면서 모차르트 소나타를 면밀히 참고했다고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17번 다장조와 같은 키로 쓰였고 일부 주제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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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와 음악을 놓치지 않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짧게 지난 90분이었다. 베토벤을 더 알고 싶어서 디깅클럽에 방문했지만, 공연이 모두 끝나고 난 후에는 이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한 음악가 뿐만 아니라 악보로 남겨진 그의 음악을 연주로 생생하게 들려준 네 명의 연주자에게 빠지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연주하는 동안 바삐 손을 움직였고, 함께 연주하는 동료와 호흡을 맞추며 음악을 완성했다.


이 글은 <클래식 디깅 클럽 - 베토벤> 공연에서 듣고 본 자료를 주로 작성했지만, 베토벤에 관한 전문서적과 인터넷 자료들을 참고해서 작성했다. 김문경 칼럼니스트의 해설이 음악을 감상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면, 1986년에 발행된 <음악의 유산>은 그날 감상한 음악을 베토벤의 삶 속에서 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


책을 읽은 지금조차도 아직 그를 완전히 디깅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그의 생애 일부를 통해 삶의 태도를 배우고 더 친해질 수 있었다. 베토벤의 세계로 친절히 인도한 음악 칼럼니스트 김문경은 마지막 인사 때 이번 달 마지막 주 토요일(2월 25일) 20시에 <클래식 디깅 클럽 - 쇼팽>이 준비되어 있다는 말을 전했다. 다음 공연에서 연주될 곡도 이미 소개되었다. 

 

폴란드를 디깅한 쇼팽의 곡뿐만 아니라, 쇼팽을 디깅한 슈만의 곡까지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유명한 음악가를 디깅한 유명 음악가의 작품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이다. 기대되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고전시대의 음악가 중에서 당시 애호가들이 아는 인물 중에 '케루비니'와 '클레멘티'가 있었다. 아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이들을 아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클레멘티의 피아노 소나타는 베토벤의 음악양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베토벤은 케루비니의 오페라와 합창곡들을 서슴없이 칭찬했다. 음악사는 수많은 영향의 주고받음으로 발전해나간다. 이번 공연에서는 베토벤과 모차르트, 다음 공연에서는 쇼팽과 슈만에 주목해서 공연이 기획되었지만, 언젠가는 주역 외에도 이들에게 영향을 준 음악가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도 있으면 어떨까하는 바람이 생겼다.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 4중주 악보에는 "Muss es sein? Es muss sein!(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와 표제가 위에 적혀 있다. 공연에서 소개된 음악을 통해 베토벤과 직접 혹은 오랜 예술의 유산으로 영향을 주고받은 다른 음악가들과 몸이 불편한 가운데도 쉬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는 작품을 만든 베토벤에 더 관심을 갖고 알아가는 계기가 된다면 기쁠 것이다.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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