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베토벤의 삶과 클래식의 힘이 빛나는 시간 - 클래식 디깅 클럽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와 클래식의 무대
글 입력 2023.02.0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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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Story)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재미있는 드라마에 빠져들 때, 우리는 자연스레 캐릭터에 몰입한다. 극 중 주인공이 겪는 모든 일에 이입하게 되면 밤을 새워서라도 정주행을 한다. 그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상상하고 추론해 보는 것이 어느새 가장 큰 즐거움이 된다. 그만큼 스토리는 캐릭터와 사람 간의 간격을 좁히는 힘이 있다.

 

2023년 2월 4일 토요일,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만나본 <클래식 디깅 클럽 - 베토벤>도 강력한 스토리가 있었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해설가 김문경이 무대로 나왔다. 관객들에게 문득 베토벤의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청중을 매료시키는 재미있는 해설로 베토벤의 삶을 이야기했다. 청중에게 말을 걸듯이, 마치 동화책을 읽어주듯이 베토벤이 살아온 이야기를 전했다.

 


[포스터] 클래식 디깅 클럽 - 베토벤.jpg

 

 

베토벤에게 강압적이었던 그의 아버지와의 일화, 베토벤이 모차르트를 존경한 비하인드 스토리, 그가 태어난 도시 독일 '본(Bonn)'의 이야기까지 총출동했다. 베토벤에 대해 쉽게 접하지 못했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니 눈과 귀가 번쩍 트였다. 어느 순간 그 옛날의 베토벤과의 심리적 거리가 단번에 좁혀졌다.

 

해설가 김문경의 이야기는 왠지 퇴근길 차 안에서 듣는 라디오 같았다. 그만큼 공연장에서 해설을 듣는 마음이 편안했다. 알고 보니 그는 KBS 클래식 FM [생생 클래식] '오늘의 클래식' 코너에서 활약한 이력이 있었다. 입문자도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사람이었다. 

 

베토벤과 조금은 더 친해졌다는 느낌과 함께, 본격적으로 <클래식 디깅 클럽 - 베토벤>이 시작됐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은 총 두 개의 주제로 요약된다. '악성 베토벤의 탄생' 그리고 '모차르트를 디깅한 베토벤'이다.

 

 


 

P R O G R A M

 

 

Theme 1 악성 베토벤의 탄생

 

Beethoven - Piano Sonata No.8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8번

 

Beethoven - Violin Sonata No.8 (mov.1)

베토벤 – 바이올린 소나타 8번 1악장


Theme 2 모차르트를 디깅한 베토벤

 

Beethoven - 7 Variations from Mozart's Magic Flute

베토벤 -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테마에 의한 7가지 변주곡

 

Beethoven - Piano Quartet in C Major WoO 36 No. 3

베토벤 – 피아노 4중주 제 3번

 


 

 

이번 공연의 컨셉은 '디깅(Digging)'이다. 디깅이란 무언가에 집중해 깊게 파고드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요즘은 나만의 취향에 따라 모든 서비스와 상품을 선택하는 시대다.

 

만약 음악을 디깅한다면 베토벤 애호가들은 어떤 곡을 선택했을까. 이번 공연에서는 피아니스트 정한빈, 바이올리니스트 이유진, 비올리스트 이신규, 첼리스트 이경준이 베토벤 애호가 또는 베토벤 입문자들을 위해 총 4곡을 선보였다.

 

 

내 프로젝트 (28).jpg

 

 

1부 '악성 베토벤의 탄생'은 피아니스트 정한빈의 연주로 시작됐다. 베토벤의 대표 피아노 소나타 중 하나인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이다. 피아니스트 정한빈이 해석하고 선보인 이 곡은 잔잔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먼저 곡이 만들어진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1796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의 나이 26세 때 베토벤은 자신의 귀에 문제가 있음을 자각한다. 젊은 나이에 자신의 청력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게 된 베토벤. 그는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놀랍게도 바로 이 곡에서 그의 무수히 깊은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차마 언어로는 온전히 다 설명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그의 집념과 의지를 떠올릴 수 있다. 청력을 잃어가는 고뇌 속에서 지은 피아노 소나타 8번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끝없이 숙연하게 한다. 절망감과 희망, 담대함과 무력감 사이를 수천 번, 수만 번 넘게 오갔을 그의 세계로 향하게 한다. 베토벤의 청력 악화에 대한 심경 변화를 유추할 수 있는 1악장부터 3악장까지,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클래식 디깅 클럽>이라는 공연의 주제에 맞게 1부를 비창으로 시작한 것은 클래식 입문자도 베토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충분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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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의 두 번째 곡은 바이올리니스트 이유진이 바이올린 소나타 8번 1악장을 연주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유진은 역동적인 움직임과 열정적인 표현으로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주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1802년으로 향한다. 베토벤이 오스트리아의 하일리겐슈타트에 머무르고 있었을 때다. 청력을 개선하기 쉽지 않음을 깨닫고 의사의 권유로 그곳에 갔다. 어떤 노력을 해도 귓병이 낫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 그는 절망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마음으로 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극심한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상황과 달리 그는 밝은 곡을 썼다. 이상하리만치 바이올린 소나타 8번 1악장은 활기찬 자연을 그리는 듯 환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새의 지저귐처럼, 잎파리의 노래처럼 들리기도 하는 연주를 통해 여름의 화창한 숲을 떠올릴 수 있다.

 

특히 바이올린 소나타 8번 1악장을 들으면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의지를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었다. 유서까지 쓸 정도로 가장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그가 어떻게 이런 느낌의 곡을 지어낼 수 있었을까. 그는 세상의 소리를 점차 들을 수 없지만, 작곡을 통해 세상에 없던 환상의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연주를 통해 피아니스트 정한빈과 바이올리니스트 이유진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호흡도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앞선 곡에서는 볼 수 없었던 두 연주자 간의 눈맞춤과 짧은 미소들이 관객의 마음을 한번 더 녹여주었다.

 

 

베토벤_연주.jpg

 

 

1부에 이어 2부 '모차르트를 디깅한 베토벤'이 시작됐다. 마찬가지로 해설가 김문경이 다시 등장해 베토벤이 동경하고 애호한 모차르트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베토벤은 모차르트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었지만, 상황과 환경의 제약에 둘러싸여 그를 만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베토벤이 고심하여 그를 염두하고 지은 곡은 자신의 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변주곡이 되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테마에 의한 7가지 변주곡으로 2부의 문을 열었다. 첼리스트 이경준이 연주하는 첼로의 아름다운 음색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피아노와 첼로가 대화를 속삭이는 듯 부드러운 공존이 인상적이었다.


2부의 마지막 곡은 피아노 콰르텟 다장조 3번이다. 네 명의 연주자들이 따로 또 같이 각양각색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이전 무대를 통해 만났던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와 더불어 마지막으로 비올라까지 함께해 아름다운 앙상블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 내게 가장 큰 감동을 준 것은 피아노 콰르텟 다장조 3번이었다. 현악기 3대장을 한 자리에서 동시에 만나는 기쁨을 누렸기 때문이다. 활기차고 청아한 바이올린, 무게감이 있어 중심을 잡아주는 비올라, 가장 중후한 소리의 첼로까지 각각의 음색과 음역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이들의 소리를 구별하면서도 통합적으로 감각하기 위해 눈을 감고 온전히 귀를 열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찬란한 동시에 아름답고 슬픈 감정을 느꼈다. 정확히 왜 이러한 감정이 촉발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가슴 깊은 곳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작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클래식 디깅 클럽>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이 곡에서 베토벤과 작별 인사를 하는 마음이었을까. 그 어느 때보다 감응하는 울림이 있었다.



베토벤.jpg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Life is short, art is long)".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이다. 이번 <클래식 디깅 클럽 - 베토벤>을 통해 또 한번 영원한 클래식의 한복판에 들어서게 됐다. 베토벤의 유한한 인생을 뒤로하고 그가 남긴 예술은 영원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공연장에 앉는 순간만큼은 관객 모두가 베토벤의 삶과 작품을 '디깅'할 수 있었다. 시간의 역사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하게 그 본질을 유지하는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공연이 끝나도 어느새 베토벤의 작품을 찾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반가운 소식이 있다. <클래식 디깅 클럽>이 베토벤 편에 이어, 다가오는 2023년 2월 25일 토요일에 쇼팽 편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클래식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 이 즐거운 디깅 클럽에 함께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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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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