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슈베르트의 밤: 이효주 피아노 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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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첫 달이 지나가고, 어느덧 2월이 시작되었다. 한겨울의 맹추위도 어느 정도 넘어갔기에, 날이 풀린 틈을 타 2월에도 음악회를 가야겠다는 생각에 2월에 예정된 공연들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공연 목록들을 훑어보던 차에 문득 눈에 들어온 연주자가 있었다. 바로 피아니스트 이효주였다. 이효주의 연주를 실제로 들었던 순간들이 분명 있지만 항상 트리오 제이드의 무대에서 그의 연주를 접했고 그의 리사이틀을 다녀온 적이 없었다는 게 문득 생각이 났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리사이틀이 눈에 들어온 순간 우선 그가 연주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부터 보았다.
특히 이번 공연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이유는, 그의 리사이틀 제목이 '슈베르트의 밤'이기 때문이었다. 슈베르트는 들을 때마다 새롭게 듣게 되곤 한다. 다른 음악가보다 유독 슈베르트가 그렇게 와닿는 이유는, 아마도 간결하고 담백한 것 같은 외피의 이면 속에 슈베르트가 항상 다양한 얼굴들을 숨겨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슈베르트에게 온전히 저녁 시간을 할애하고자 하는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선택이 궁금했다. 그리고 프로그램 레퍼토리를 확인한 순간, 2월에 갈 공연을 바로 정할 수 있었다. 피아니스트 이효주가 안배한 프로그램 속의 의미들이 깊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 PROGRAM >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4 개의 즉흥곡, Op. 90, D. 899
4 Impromptus, Op. 90, D. 899
피아노 소나타 14번 가단조, Op. posth. 143, D. 784
Piano Sonata No. 14 in a minor, Op. posth. 143, D. 784
환상곡 다장조, Op. 15, D. 760, ‘방랑자 환상곡’
Fantasie in C Major, Op. 15, D. 760 “Wanderer-Fantasie”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이번 리사이틀의 프로그램으로 총 세 개의 작품을 선곡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의 배치가 심상치 않다. 이효주는 프로그램 전반부에 슈베르트의 말년 작품을 배치한 다음 작곡 시기상 역순으로 작품을 배치했다. 만일 이 작품들이 작곡 시기순으로 배치되었다면, 찬란한 음악적인 순간들로 시작해 문턱에 다다른 슈베르트의 어두운 말로를 연상하며 공연이 끝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이를 역순으로 배치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오히려 희망을 말하고자 의도했다. 마치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 길고 긴 터널의 끝에서 찬란한 순간을 맞이할 것이라는 낙관을 말이다.
먼저 이번 이효주 피아노 리사이틀의 시작을 알리는 곡은 바로 슈베르트의 4개의 즉흥곡 작품번호 90, D.899다. 이 작품은 슈베르트가 숨을 거두기 1년 전인 1827년에 작곡한 작품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병환과 우울로 얼룩져 있던 슈베르트의 심상을 은연 중에 연상해보게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 극도의 고통을 표면으로 드러내지 않은 슈베르트는 어떤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담담하게 그려냈을까. 단조만으로 모두 작곡했다 하더라도 그의 상황을 생각하면 납득할 법한데, 즉흥곡 네 곡 중에 단조곡은 1번 밖에 없고 나머지 세 곡은 모두 장조로 작곡되어 있다는 점은 언제 생각해보아도 참 인상적이다. 특히 독창적인 멜로디와 아름다운 악상이 고통 가운데서도 이렇게 찬란하게 빛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경이롭다.
1번 즉흥곡은 슈베르트의 소나타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나있다. 1번은 변주곡 형식으로 연주되면서, 처음에 잔잔하고 옅게 연주되는데, 다소 희미한 듯했던 색채가 점차 진하고 강해지면서 화려해진다. 2번 즉흥곡은 보다 서사적인 전개가 나타나는데, 여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오른손의 화려한 테크닉이다. 일견 연습곡처럼 느껴질 정도로 격정적인 오른손 패시지가 인상적이다. 3번 즉흥곡은 아름다운 멜로디로 매우 유명하다.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서정성과 악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4번 즉흥곡 역시 독일 낭만주의의 서정이 잘 드러나있어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하강하는 스케일 속에서 아름다운 음색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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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선곡된 작품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가단조 D.784다. 이 작품은 고전적인 형식 위해 슈베르트만의 고유한 음악 어법을 얹어 독창성을 확립한 피아노 소나타로 평가받는다. 1822년 매독에 걸려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던 슈베르트는 아버지의 집에서 칩거하면서 건강 회복을 도모했다고 한다. 피아노 소나타 14번은 바로 그 다음 해인 1823년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매독으로 인해 건강을 잃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슈베르트가 겪었던 일련의 감정들이 묻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4번은 사뭇 비장하다. 1악장 알레그로 쥬스토는 특히 이 작품의 장엄하고도 비장한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침잠한 듯한 악상으로 시작하여 점차 강렬하게 크레센도가 되어가는 1악장은 강약의 대비가 극명하여 슈베르트의 심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2악장 안단테는 여기서 전환하여 따뜻하고 부드러운 노래악장으로 전개된다. 마치 1악장의 어두운 그늘을 몰아내고자 하는 듯하다. 그러나 마지막 3악장 알레그로 비바체는 2악장에서 전환하여 빠르고 활기차게 전개된다. 그러나 이를 관통하는 단조의 정서는 맹렬하다. 아름다운 악상이 때때로 이 사나운 기세를 완화하고자 끼어들지만, 이 난입은 궁극적으로 피날레에 담긴 야성을 깨뜨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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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이효주는 리사이틀의 대미를 장식할 작품으로 방랑자 환상곡을 선곡했다. 방랑자 환상곡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작품 중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작품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연주자에게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동시에 당대 기준으로 진보적인 구조로 작품이 구성되어 있어 피아노의 표현 범위를 괄목할 만하게 확대시킨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기에, 피아니스트 이효주가 슈베르트에게 헌정하는 아름다운 순간의 피날레로 선곡할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1악장은 장대한 슈베르트의 스케일이 느껴진다. 2악장 아다지오에 이르러 가곡 '방랑자' 주제에 의한 변주가 나오기 시작하면 1악장에서와 사뭇 다르게 매독으로 건강을 잃어가기 시작한 슈베르트의 당시 심경이 일견 그려진다. 3악장은 프레스토지만 스케르초 악장이라 볼 수 있다. 빠르게 진행되는 악상 속에서 1악장의 주제가 모방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4악장 알레그로는 푸가적인 구조에서 느낄 수 있는 치밀한 화성과 더불어 표현력을 요하는 패시지들로 가득하여 연주자의 비르투오시티를 극도로 발하게 만든다. 연주자의 에너지와 표현을 만끽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이번 이효주 피아노 리사이틀이 막을 내리게 되는 셈이다.
pixabay
피아니스트 이효주는 2004년 월간 피아노음악(음연)에 의해 ‘한국 피아노 음악의 미래’로 지목된 이래로 전세계를 무대로 선 굵은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국 신시내티 국제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모스크바 국제 청소년 쇼팽 피아노 콩쿠르 우승과 아시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그랑프리 수상, 상하이 국제 콩쿠르 입상과 프랑스 피아노 캠퍼스 국제 콩쿠르 우승 및 청중상 수상 그리고 에피날 국제 콩쿠르 2위 수상 등 주요 국제콩쿠르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2010년 가장 저명한 국제 피아노 콩쿠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준우승 및 청중상, 그리고 특별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 차세대 피아니스트로서의 면모를 세계에 증명해 왔다.
프랑스 유학시절부터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트리오 제이드’는 2013년 아트실비아 실내악 오디션에서 대상 수상, 제9회 슈베르트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한국팀 최초로 1위 없는 3위, 이어 제 8회 트론하임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하며 우리 실내악계의 위상을 세계무대에 드높였다. 프랑스와 핀란드 대사관의 초청 유럽 투어연주 및 2015년 북미투어, 2016년 결성 10주년 기념 콘서트를 성료하였으며, 2018년 프랑스의 페이 드 라 루아르 국립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삼중 협주곡으로 6차례 현지 투어를 마쳤으며, 금호아트홀 무대를 통해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시리즈를 완주하고 지난해 네 번째 정기연주회 <보헤미안>을 성료하는 등 한국 클래식계를 대표하는 피아노 트리오로서의 존재감을 계속해서 증명해 나가고 있다.
그런 피아니스트 이효주가 선보일 슈베르트의 밤. 이효주만의 로맨틱 피아니즘을 만날 수 있는 이번 리사이틀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2023년 2월 22일 (수)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이효주 피아노 리사이틀
슈베르트의 밤 Scubert's Nacht
전석 40,000원
약 95분 (인터미션 15분)
입장연령 : 8세 이상
(미취학 아동 입장 불가)
주 최 : 목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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