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허황된 꿈은 아니었다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2.0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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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익숙한 것에 물들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걸 벗어나기 위해 다른 것을 택하기도 한다.

익숙함이 지겨워서 나를 망가뜨리는 것만 같아 새로워지기를 원한다. 

 단순히 행복을 추구하는 게 아닌 스스로 고난을 겪어 변화해나가는

이 인물에 우리는 집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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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떠납니다


 

 
내가 여기서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p.11

 

 

회사를 다니던 계나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 몰랐었다. 마치 방향을 잃은 것만 같았다. 회사 생활에서 즐거웠던 일은 밤 근무를 하여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것, 먹을 메뉴를 고민하지 않아도 됐던 소소한 것들이었다. 스스로가 성취를 느낄만한 것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계나 친구들의 대화 주제는 늘 같았다. 계나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도 이들은 반복했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상황을 바꿀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친구들. 결국 몇 년뒤에도 똑같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생활의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외국행을 택한 이유였을 것이다. 한국에서 보내는 삶은 변화 가능성이 없을 거고 이들과 몇 년 뒤에도 같은 주제를 반복하며 한숨만 푹 쉬고 있는 모습이 상상 되었을지 모른다. 특히 시드니에서 보낸 계나의 파란만장한 삶은 친구들의 문제와 비교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들이 얄팍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참고 힘들었으면 싫다고, 하기 힘들다고 의사를 내비쳐야 하는데 그저 푸념을 늘어놓는 친구들은 여전했다.

 

밴드로 수입을 버는 남자친구와 사귀는 동생 예나. 그런 동생을 보면서 계나는 밴드하면서 돈을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며 예나의 신분 상승은 물러갔다는 말을 꺼낸다. 자신이 호주로 갔던 이유는 신분 상승할 수 있는 방향이 있었기에 간 것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동생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하는 언니처럼 보이지만 호주행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였다.

 

아이엘츠에서 봤던 지문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내용을 전하려는 목적보다는 이런 지식을 습득해 말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보였다. 글로만 읽었던 지문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자기 모습을 보며 호주에서 보낸 삶은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시야에서 보이는 삶



계나의 인도네시아 남자친구 '리키'가 등장한다. 리키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인도네시아 이야기를 꺼냈다. 편견이 있을지라도 자신의 나라는 뒤처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만남을 이어가면서 늘 인도네시아와 한국에 관해 대화를 자주 꺼냈던 리키. 아마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시선을 뿌리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거다.

 

이 소설에서 등장한 한국인들이 보는 인도네시아는 어떨까?

 

계나와 호주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던 지명. 그곳에 가면 당연했던 것들이 아닌 삶을 살 거라고 조언했다. 동남아 사람을 예시로 들어, 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인과 같은 생활 수준을 누리며 살고 있지 않지 않다고 말했다. 지명이 말한 건 일반적인 매체에서 보인 삶의 일부 중 하나였으며 선입견이었다.

 

계나는 리키와의 대화를 통해 인도네시아와 호주가 가까운 나라라는 걸 알게됐다. 인도네시아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모르는 걸로 보아 무관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같은 유학원에 다녔던 써니 언니도 리키를 인도 남친이라고 언급했다. 계나가 인도가 아닌 인도네시아라고 정정했지만 뭐가 잘못됐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한국 애들은 제일 위에 호주인과 서양인이 있고, 그다음에 일본인과 자신들이 있다고 여기지. 그 아래는 중국인. 그리고 더 아래 남아시아 사람들이 있다고. 그런데 사실 호주인과 서양인 아래 계급은 그냥 동양인이야. 여기서 사람들은 구별도 못해. 걔들 눈에는 그냥 영어 잘하는 아시안과 영어 못하는 아시안이 있을 뿐이야."

 

p.85

 

 

리키는 한국 유학생들을 향해 비꼬는 말을 했다. 같은 동양인을 무시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에 등장한 인물들을 대입해 보면 맞는 말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동남아 사람들을 그냥 '동남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어느 특정 나라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 통상적이다. 그들의 나라를 나누는 기준은 없다 우리 눈에는 그저 동남아 사람으로만 보고 살아왔다. 어쩌면 우리가 인종차별을 당함과 동시에 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입견들을 의심해 봐야 할 것이다.

 

 

 

확고한 선택 


 

 
몇 년 전에 처음 호주로 갈 때에는 그 이유가 '한국이 싫어서'였는데, 이제는 아니야. 한국이야 어떻게 되든 괜찮아. 망하든 말든, 별 감정 없어 … 이제 내가 호주로 가는 건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아직 행복해지는 방법은 모르겠지만, 호주에서라면 더 쉬울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

 

p.161

 

 

한국에서 가졌던 역할을 벗어나 자유로움을 추구하며 살아가기 시작한다. 자아를 찾기 위해 호주에 도착했고, 좋아하는 것들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행복을 찾기 쉽다는 확신이 들었다. 

 

호주에서 보냈던 삶은 한국과 많이 비교됐다. 셰어하우스를 살며 전전긍긍했고 랜드 로드까지 했다. 일은 늘 바뀌면서 힘들게 삶을 이어갔을지라도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려고 끝까지 버텼다. 그리고 새로운 인연을 맺어가며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지명과는 헤어짐을 선택했다. 한 번의 헤어짐으로 끝난 줄 알았지만, 다시 걸려 오는 지명의 전화를 받아 다시 만나게 된다. 이때의 계나는 아직 한국생활의 자신을 못 벗어난 걸로 보인다. 지명은 돈 있으면 한국이 편하다고 생각했기에 호주에서 온갖 고생을 떠안고 살아가는 계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계나를 정말 사랑했다면, 존중했다면 함께 호주로 떠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왜 외국으로 가게 됐는지 궁극적인 목적을 묻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모습은 상대에게 관심이 부족했다는 걸로 증명된다. 
적어도 계나가 떠난 이유와 호주에서 어떤 문제를 이겨나갔는지 알았다면 이런 말을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계나는 지명과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제는 호주에서 시작하는 삶은 시작되었다.

 

행복도 '자산성 행복성'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자신에게 부족했던 건 현금 흐름성 행복이었다. 한국에서 지낼 때는 자신의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하기가 어려운 환경이었다는 걸, 그래서 호주로 향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였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 행복을 찾겠다는 마지막 말과 함께 정착지를 찾아 떠났다.

 

 

 

행복을 찾으러 떠난 계나. 이후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무작정 '행복'을 찾으러 떠난 것이 아닌, 자신이 어떤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아마 계나는 스스로 이뤄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호주행을 후회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우여곡절이 많아 힘들어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고난한 여정을 거쳤을지라도 스스로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기에 버텨왔다고 생각한다.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호주를 향한 계나는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자아를 찾게 되었다. 스스로를 향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계나에게 응원의 말을 보낸다.



 

[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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