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책 읽는 지하철 꿈을 꾸며 [문화 전반]

독서 습관을 위한 나만의 소소한 노력들에 관하여
글 입력 2023.02.0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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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친구로부터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와 관련한 심각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흘 및 나흘, 심심한 사과, 무료하다, 그리고 최근 불거졌던 ‘설빔’까지. 문제의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던 논란들을 작은 해프닝 정도로 치부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조금은 아찔하게 느껴졌다.

 

교육 환경도 나날이 변화하고, 사실 일상 생활의 영역에서도 시청각 자료의 중요성은 하루가 다르게 증대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활자 텍스트만을 고집할 노릇은 전혀 아닐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과거의 영광만을 좇는 모습은 우스워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단순히 활자 대신 영상 매체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에서 조차 호흡이 긴 것들은 소화하기 어려워한다는 이야기가 진심으로 와 닿지 않았다.

 

넷플릭스 시리즈를 순차적으로 감상하기 보다는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요약본을 찾아보고, 더 나아가 이미 짧아진 영상을 또 다시 토막 낸 ‘숏폼’ 형태의 동영상을 즐기는 것이 요즘 청소년들의 트렌드라는데. 

 

솔직히 이러한 최신 트렌드가 문해력이나 어휘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처음에는 다소 비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더 이상 볼 게 없어 심심하다는 말을 내뱉는 것과는 달리, 누운 자리에서 거의 한 시간 가량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유튜브 ‘쇼츠’를 넘겨보던 내 자신의 모습에서 이런 문제가 비단 어린 청소년들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자기반성을 했다.

 

사실 핵심을 추출해서 요약 제시하는 숏폼 콘텐츠가 나쁜 것만은 전혀 아닐 테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급진적이고, 소위 ‘트렌드’라고 불리는 것들도 내게 익숙해질 즈음이면 이미 낡은 것이 되는데 반해, 우리의 삶은 그것들을 다 즐길 여유가 없을 때가 많기에. 

 

속도가 중요한 시대에 ‘엑기스’만을 담은 ‘숏폼’이야 말로 사실 효율성의 끝판왕이 아닌가. 하지만 숏폼 콘텐츠 중독과 문해력 저하 문제는 그저 우려에 그친 수준이 아니라 현실화된 문제였다. 

 

2021년 5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초중고교 교사 1천 1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많은 비율인 37.9%, 즉 10명 중 네 명 정도의 교사가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이 100점 만점 기준 70점대(C등급)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의 가장 주된 원인으로 ‘영상매체’와 ‘미흡한 독서’가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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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결국 또 뻔한 답인 ‘독서’다. 내가 청소년이었을 때도 비슷한 문제로 잔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여전히 독서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 중요성을 이제서야 뒤늦게 실감하는 중이기도 하다.

 

요즘 나는 극심한 ‘글태기(글쓰기+권태기)’를 겪는 중이다. 삶의 경험이 부족해 글감이 고갈되었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겠지만, 덧붙여 어휘나 문장 구사에서도 고초를 겪고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표현할 만한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겨우 써 놓은 문장이 전혀 성에 차지 않아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고역인 순간들이 꽤나 잦다.

 

이제는 쓰는 것은 잠시 멈추고 스스로를 채우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회의가 들었을 때, 조금은 소홀히 하고 있던 독서가 다시 눈에 밟혔다.

 

대단한 독서광도 뛰어난 문장가도 전혀 아닌, 그저 책 읽기를 아주 놓지만은 않은 평범한 청년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 수준의 어휘력이나 문해력이나마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나마 한 달에 몇 권이라도 꾸준히 책을 읽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텍스트 읽기 자체가 난관이라는 요즘 교육 현장의 실태 속에서, 독서 문제가 다시 떠오른 것에 쉽게 동의할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독서와 숏폼 콘텐츠의 본질적인 차이는 ‘사고’의 유무이다. 호흡이 긴 활자 텍스트는 독자가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들지만, 자극적인 내용으로 시청자를 유인해 내는 숏폼 콘텐츠에는 몰입은 있지만 성찰은 부재한다.

 

따분해서 긴 콘텐츠는 향유하기 어렵다는 요즘 학생들을 마냥 훈계하기보다는, 우리 어른들 역시 평소 영상매체 소비나 독서 습관을 진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몇 년째 한국의 연평균 독서율은 OECD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영상 중독 문제가 청소년에서 중장년층까지로 확대되는 현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문해력’ 문제는 학생들의 교육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른들부터 모범을 보이지 않는데, 아이들에게만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정말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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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지금만큼 보급되지 않았던 십 여년 전 까지만 해도, 지하철을 타면 책이나 신문을 읽고 있는 어른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동하는 짧은 시간에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활자를 읽던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린 나는 동경 섞인 시선을 보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의 지하철 안에는 각자의 작은 세계에 몰두하고 있는 여러 분절된 개인들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두가. 그리고 의식하지 않으면 나 역시.

 

별로 대단한 이력을 가지진 못했지만, 작년부터 시작해 어느 순간 나에게는 나만의 독서 습관이 생겼다. 자랑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수치이지만, 적어도 한 달에 두 권 이상은 꾸준히 책을 읽고 있다.

 

누군가에게 훈수 둘 입장은 전혀 아닌 것이, 한 때는 나 역시 책을 그리 가까이 하지 않기도 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인데, 독서도 공부의 일부라면 나는 대학생이던 시기 그리 성실하지 않던 학생이었던 것 같다.

 

무언가가 습관이 되고 루틴이 되는 것은 어렵다. 당연해지기까지 사소하지만 귀찮은 여러 노력들이 필요하다. 독서 역시 나에겐 그랬다. 비록 거창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작은 노력들에 대한 실천을 통해 독서를 습관으로 굳힌 내 모습이 나에게 만큼은 꽤 자랑스럽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조심스럽게 나의 소소한 노력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1. 나를 위한 책 한 권


  

예전에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곰곰이 생각하다 집 밖을 나서 나를 위한 작은 소품을 산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해지고 괜한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바람을 쐬곤 했다. 딱히 갈 만한 곳이 없어 대형 서점이나 소품샵으로 향할 때가 많았을 뿐이다.

 

그것의 연장선으로 언제부터인가 한 달 용돈을 받으면 습관적으로 서점에 가서 맘에 드는 책 한 권 씩을 골라왔다. 그리고 어딘가를 이동할 때마다 조금 무겁더라도 챙겨 다니며 틈틈이 읽어 나갔고, 완독하고 나면 또 다시 나를 위한 책 한 권을 채워 넣었다.

 

시작은 그저 형체도 없는 스트레스를 물질적인 것으로 치환하는 것일 뿐이었는데, 그것이 꾸준히 책을 읽어 나가는 긍정적인 습관으로 자리잡았다.

 

거창하게 시간을 정해 놓고 읽기 보다, 길 위에서 버려지는 시간을 적극 활용했다. 때로는 왕복으로 두 시간 가량을 지하철을 타곤 하는데, 출퇴근 시간을 피한 운 좋은 날에는 짧은 책의 경우 지하철에서 한 권을 완독할 수 있었다.

 

남들과 다름없이 이동 시간에 폰 화면을 들여다보기 바빴던 나였지만, 이제는 좁은 지하철 안에서 책을 꺼내 드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사실 집에서는 다소 불량한 자세로 누워서 독서를 하게 되지만, 지하철은 오히려 보다 정석인 자세로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방이 아주 무거운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를 위한 책 한 권을 들고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2. 휘발되는 것들을 기록하기


  

책을 읽다 보면 가끔 가슴에 콕 박히는 문장을 만나게 된다. 내 책이야 그저 연필로 죽 밑줄을 그으면 그만이지만, 빌린 책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어 끝내 놓치게 될 때가 많다.

 

너무 맘에 들어 손에 쥐게 됐지만, 용도를 정하지 못한 작은 수첩에 필사노트라는 명분을 붙여주고는 그 문장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적힌 문장들을 더듬고 나면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던 감상들이 다시 상기되었다.

 

조금씩 채워 나가던 페이지가 반 년이 조금 지나고 나서 끝에 이르렀고, 나는 새롭게 생긴 구실을 가지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쇼핑을 떠났다.

 

독서를 좀 더 의미 있게 만들어주던 습관은 나아가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 초등학생 시절에 쓰기 싫어 꾸역꾸역 채워 넣었던 독서록을 자발적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괜찮은 아이디어나 뛰어난 발상도 기록하지 않으면 휘발되기 마련이다.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도 마찬가지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무엇을 느꼈는지는 커녕 사실은 내용도 가물가물해진다. 필사와 독후감은 그 무엇보다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 시켰다.

 

솔직히 독후감은 아주 가벼운 노력은 아닌 것 같다. 나 역시 모든 책에 대해 쓰기 보다는, 인상 깊었던 책에 대해서만 시간을 내서 작성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에 반해 필사에 경우 가끔은 독서에 대한 새로운 재미를 불어 넣기도 한다. 내가 수집한 문장들을 보고 있으면 작지만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좀 더 의미 있는 독서를 원한다면 필사를 한 번 권유해보고 싶다.

 

 

 

3. 함께 독서하기


  

독서율에 대한 조사를 하던 중 조금은 반가운 소식도 볼 수 있었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서율이 대체로 감소하는 추세에서 20대의 독서율이 0.3%포인트 증가하여 가장 높은 독서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요즘 청년들은 책을 잘 읽지 않을 거라는 편견과는 다르게, 요즘 MZ세대들은 독서에 관심이 많다. 이는 어쩌면 ‘갓생’이라는 키워드의 열풍과도 맥락을 함께 하는 것 같다. 

 

그 어느 세대보다도 자기계발에 집중하는 현 청년세대들은 외면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스스로를 가꾸려고 꾸준히 노력한다. 다만 이러한 독서율이 양극화되는 측면은 무시할 수 없겠지만.

 

단순히 미디어 속에서만 접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 내 주변에서만 보더라도 과거에 비해 꾸준히 독서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음을 실감할 때가 많다.

 

지난 해 나는 친구의 추천으로 북클럽에 참여하게 되었다. 꾸준히 책을 읽는 습관을 형성하자는 취지의 모임은 격주에 한 번 본인이 읽은 책을 소개하고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성인 이후에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어려운 건, 많은 것들에 대한 강제가 사라지고 스스로가 규칙을 설정하고 자율적으로 이에 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서에 대한 자잘한 습관을 형성했지만, 강제성이 없는 스스로와의 규칙은 의식하지 않으면 쉽게 해이해지기 마련이었다. 아주 강한 강제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집단으로부터 받는 압력은 느슨해질 때마다 스스로를 다시 조이는 계기가 된다.

 

더불어 독서모임에서 타인과 의견을 주고 받다 보면 생각의 깊이나 너비가 확장되기도 하고, 새로운 분야의 책을 추천 받기도 한다.

 

혼자만의 독서가 지겨워졌다면, 함께 독서하는 방법을 물색하는 것이 좋은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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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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