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HANEL, 장소의 정신①

글 입력 2014.09.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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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모스크바를 시작으로 상하이, 베이징, 파리에서 개최된 문화샤넬전 장소의 정신이 드디어 서울에서 개최되었습니다. 8 30일부터 10 5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는 최근 서울의 대표 건축물로 떠오르고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장 루이 프로망이 큐레이팅을 맡은 이번 전시는 가브리엘 샤넬에게 영감을 준 장소와 그 곳에서 나온 영감이 그녀의 빛나는 창조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재조명 하고자 합니다.
 
DDP는 이라크 출신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것입니다. 자하 하디드는 샤넬의 수장 칼 라거펠트의 절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샤넬의 전시가 4개의 도시에 이어 드디어 서울 DDP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청명한 가을 날씨의 일요일, 저는 문화샤넬전 장소의 정신을 관람하기 위해 DDP를 찾았습니다. 저는 지금 가브리엘 샤넬과 그녀의 장소, 그리고 그녀의 영감과 창조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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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가을하늘과 DDP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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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으로 가는 통로에 서 있는 ‘CURTURE CHANEL 장소의 정신알림판>
 
 

 
장소의 오브제
사물은 사람처럼 자기 그림자가 필요하다.”
가브리엘 샤넬
 
내가 좋아하는 건, 길을 떠나는 거야…” 그녀는 이렇게 털어놓곤 했다. 가브리엘 샤넬은 방랑자이다. 그녀는 소뮈르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그 곳에 오래 머무르지는 못하고 평생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방랑벽을 지니고 살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처자식을 이끌고 여기저기 떠돌며 유랑하는 행상인이었다. 소뮈르에서 태어난 샤넬은 코레즈에서 자랐고, 오바진 수도원에서 머무르다 물랭으로 떠난다. 비시에서 자취를 감추고 콩피에뉴로 올라간 그녀는 파리에 잠시 머물다 도빌로 가서 매장을 연다. 파리로 돌아와 자리를 잡고, 비아리츠와 칸느에 매장을 열어 성공을 거둔 다음에는 베니스에 매료된다. 파리 패션계를 평정한 샤넬은 영국에서 지낸 후 로크브륀으로 훌쩍 떠났다가 대서양을 건넌다. 스위스 망명생활 후 샤넬은, 영원히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어디서나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자신을 발견한다. 신작 컬렉션 전날, 이 여정의 끝에서 마주한 그녀의 죽음은 마치 끝없는 여행이 우연히 중단된 것만 같았다. 아니면, 정말로 그녀는 영혼이 영원히 머물, 자신의 장소를 찾아 떠난 것일까?
 
여러 장소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방랑자는 언제나 자신의 장소로 되돌아온다. 떠도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다. 가야 할 곳을 알고 있기에 자신이 지나 온 곳을 잊을 수 있는 것이다.
 
샤넬은 세계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그 찬란한 명성은 시대의 지표가 되었고, 수없이 유사하고 광범위한 차용을 통해 확산되면서 여성 스타일의 지주가 되었다. 저지 원피스에서 트위드 투피스, 2.55백에서 커스텀 주얼리에 이르기까지, 눈부신 그녀의 작품들이 이제는 거꾸로 그녀의 두 삶을 풀어낼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을 만들던 시기의 어렴풋한 그림자 속에서 중요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면들, 결정(結晶)들을 언뜻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번 전시회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다. 샤넬의 진정한 장소는 여기, 그녀의 창작물 안에 있다. 그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방랑자로서 그녀는 그것들을 지니고 가져가기 위해 만들었다. 그것들은 움직이는 몸에 지니는 것들이다
 
 
장 루이 프로망의 CULTURE CHANEL 장소의 정신』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의 창조물들은 그녀가 머무른 장소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하였습니다. ‘샤넬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저지 소재의 블랙 드레스, 트위드 재킷, 퀼팅 백, 샤넬 №5 등등. 수많은 샤넬의 시그니처 아이템의 시작은 바로 그녀의 장소입니다. 
 
본 전시는 가브리엘 샤넬이 머물렀던 열 개의 장소에서의 삶과 그것이 그녀의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순차적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샤넬이 현재 칼 라거펠트의 샤넬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함께 볼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샤넬, 그리고 그녀가 창조해 낸 샤넬을 다시 한 번 바라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유년기의 인상
 
그들처럼 농민 정신이 강한 이곳 출시인 그녀는, 그들을 묘사하는 게 곧 그녀에 대한 묘사가 되어버릴 정도로 모든 특성이 그들과 유사했다. 체형, 활기, 완벽에 대한 집착, 생산에서(다시 말해 명맥을 잇는 데서) 느끼는 기쁨, 엄격함, 권위적인 말투, 고집, 맹렬함에 열정까지 모드 게 그들과 똑같았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직업 때문에 변함없는 계절의 질서에 순응했으며, 매사에 일이 우선이었다. 다산인 농민의 후손 가브리엘 샤넬은 수많은 여성들의 각광을 받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에드몽드 샤를-루의 저서 『자유분방한 샤넬의 인생』에서는 샤넬의 유년기를 이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소뮈르에서 태어났다가 오베르뉴로 간 샤넬은 대지 속에서 자라납니다. 당시 프랑스인들의 주식이었던 밀은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상징합니다. 샤넬은 대지와 밀에 영향을 받아 밀 이삭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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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S/S 샤넬 오뜨 꾸뛰르 컬렉션. 밀 모티브를 금실로 수를 놓은 아이보리 레이스 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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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2007 S/S 레디--웨어 컬렉션 수영복을 입은 베하티 프린슬루, 2007>
 

 
오바진의 규율
 
 그리고, 아이들은 흑백으로 된 세계의 문 속에 갇혀 있었다. 빨고 또 빨아 늘 얼룩 하나 없이 깨끗했던 고아원 소녀들의 셔츠는 흰색이었다오래 입을 수 있고 큰 보폭으로 걸을 수 있도록 굵게 주름 잡힌 치마는 검은색이었다. 수녀들의 베일과 소매가 넓은 수녀복도 검은색이었다. ! 팔꿈치까지 걷어 올려진 그 소매들이라니. 접힌 소매 주름 속엔 손수건이 감춰져 있었지하지만 수녀들의 머리에 두은 띠와 스탠드 칼라 모양의 넓은 가슴받이는 눈이 부시도록 하얬다. 긴 복도들과 회칠한 벽도 흰색이었다. 하지만 공동 침실의 높다란 문은 검은색이었다. 어찌나 짙고 고상한지 한 번 보면 영원히 기억에 남을 그런 검은색. 오바진은 그런 곳이었다.
 
12살의 나이로 오바진 수도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가 오바진 수도원의 고아원에 그녀를 버린 것입니다. 평생 상처로 남을만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이 곳에서 훗날 브랜드 샤넬의 원천이 되는 수많은 영감들을 받습니다.
 
오바진 수도원은 샤넬 하우스의 인테리어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녀의 깡봉 가 31번지 아파트는 성모자상과 다양한 크기의 십자가, 봉헌물들로 가득 찼고, 그녀의 별장은 오바진 수도원의 건축양식에서 영감을 얻어 교차 궁륭으로 이루어진 입구, 바실리카 풍의 거실, 로마네스크식의 아치를 사용한 문과 창문들, 회랑과 꾸밈없는 벽체 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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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가브리엘 샤넬이 소유했던 성서,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에 있던 제의용 십자가,
십자가에서 모티브를 얻은 브로치>

 
브랜드 샤넬을 살펴보자면, 샤넬의 모노그램인 더블 C는 오바진 수도원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인 샤넬의 로고 더블 C! 그것이 12세기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영향을 받았다니! 그녀가 어린 시절 머무른 장소가 샤넬이라는 브랜드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샤넬의 블랙&화이트는 수녀복의 색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샤넬 5 향수의 포장, 화이트칼라와 커프스를 단 LBD(Little Black Dress), 배색 트위드 투피스에 블랙&화이트 색상을 사용했습니다. 샤넬의 주얼리들도 묵주에서 영감을 얻은 긴 목걸이와 목걸이 줄, 십자형의 펜던트에서 볼 수 있듯이 수도원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샤넬의 상징들이 가브리엘 샤넬의 유년 시절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12세기 수도원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니, 놀랍지 않나요? 위대한 창조물의 원천은 멀리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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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오바진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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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블랙 자켓을 입은 프레하 베하,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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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오뜨 꾸뛰르의 원피스를 입은 까뜨린느 드뇌브, 1963>
 

 
다름이 주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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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포스터는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 포스터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의 공연 포스터이지요. 고아원을 떠난 샤넬은 가수가 되고 싶어 물랭의 뮤직홀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녀가 불렀던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라는 노래로 인해 그녀는 코코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코코 샤넬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바로 아래의 그림은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에 있던 라 모드 드 스틸’, 스타일의 양식이라는 그림입니다. 샤넬이 물랭에서 가수로 활동하면서 받은 영감을 고스란히 녹인 듯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1985 S/S 오뜨 꾸뛰르 컬렉션의 드레스로 이어집니다. 바로 그 아래의 니콜 키드먼이 입은 드레스가 그것입니다. 물랭에서의 경험이 고스란히 샤넬 컬렉션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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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모드 드 스틸, 스타일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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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S/S 오뜨 꾸뛰르 컬렉션 드레스를 입은 니콜 키드먼, 2001>
 
물랭은 군부대와 기병들이 주둔하는 도시였습니다. 샤넬은 몇몇의 군인들과 친분을 맺으면서 그들의 옷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이후 샤넬은 군복의 요소들을 자신의 디자인에 차용하면서,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아래 도로테아 맥고완이 입은 샤넬의 투피스 재킷 또한 군복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칼 라거펠트는 이를 재해석하여 2005 F/W 레디--웨어 컬렉션의 원피스 등을 선보였습니다. 1987 F/W 레디--웨어 컬렉션의 챙 달린 모자는 군복과 패션의 다채로운 조화를 이루어냈다는 평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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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댕 제1기병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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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F/W 오뜨 꾸뛰르 컬렉션 투피스를 입은 도로테아 맥고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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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아 워보이와 함께 한 2005 F/W 레디--웨어 컬렉션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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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F/W 레디--웨어 컬렉션>
 

 
잘 보셨나요?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가브리엘 샤넬이 파리를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까지의 여정과 르와얄리유, 파리, 베니스에서의 삶을 통해 그녀가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럼 See you again!
 
<출처 : 서나래, 문화샤넬전 홈페이지, CULTURE CHANEL 장소의 정신』>

 
[서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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