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장 시적인 편지를 당신의 책장으로 - 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

글 입력 2023.01.23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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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한 친구와 손편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미 언제든 손만 뻗으면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사이였다. 그러나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자신을 잃어 중심을 잡지 못했고 연락이 되지 않는 동안 계속해서 불안해 했다. 그 과정에서 집착과 소원함과 소외됨 등을 느낀 우리는 지속가능한 관계를 위해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그러던 중 내가 글을 쓰는 잡지의 연재물이 떠올랐다. 제목은 '벗에게 시간을 묻다'.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인 이현배 옹기장과 농부시인으로 유명한 박형진 시인이 주고받는 편지를 싣는 것이었다. 손편지를 통해 옆에 있어주지 못할 때에도 '네가 없을 때 나는 이런 일을 했고, 이런 걸 느꼈어'하고 알려주면 감정의 공백을 메울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일정 기간을 두고 관계의 상황을 기록하는 것도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약 100일이 지났고 많은 대화가 오갔다. 그 과정에서 느낀 손편지의 매력과 손편지 프로젝트의 시행착오를 '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를 읽으며 알아본다.

 

손편지에는 쓰는 이의 개성이 담긴다. 시작은 편지를 쓰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에서 부터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나와 친구는 문구점에서 마음에 드는 공책을 한 권씩 샀다. 식집사인 나는 몬스테라가 그려진 것을 골랐고, 친구는 '우리의 발자취가 남을테니...'라며 발자국이 찍한 것을 골랐다. 대충 아무런 필기구로 글을 쓰는 나는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볼펜으로 적었으며, 수학을 전공한 친구는 샤프가 편하다며 샤프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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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말)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필체와 말투를 살피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친구가 쓴 편지의 일부다. 편지가 어색했던 초반에는 ‘안녕? 동하야’로 시작하는 뻔한 내용으로 시작했으나, 하나의 주제를 가진 글과는 다른 맛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후에는 여러 시도를 하게 되었다. 일기의 형식을 빌어 쓴 이것도 그 중 하나다.


문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잡지사에서 기사를 쓰는 나는 하루에 있던 일들을 깔끔하게 적어 설명하는 것을 좋아했고, 소설을 쓰는 친구는 일상을 적기 보다는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그것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나는 스티커를 붙여 상황을 부연설명하기도 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는 슬퍼하는 내용이 적힌 날에는 '그림을 그려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인 오스틴의 편지에도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1799년 6월 2일 일요일 제인 오스틴이 그녀의 언니 커샌드라에게 쓴 편지 중 일부이다.

 

 

"어제 바스 거리에 있는 상점에서 1야드에 고작 4실링 하는 거즈를 봤는데 내가 가진 것만큼 예쁘거나 품질이 좋진 않았어. 이곳은 꽃들이 아주 많이 시들었고 과일도 여전히 더 비싸. 엘리자베스는 딸기 한 꾸러미를 샀고 난 포도, 체리, 자두, 살구를 봤어. 상점에 아몬드와 건포도, 프랑스 자두와 타마린드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사지 못했어...

 

우리는 6시부터 8시까지 비컨 힐에서 우아하게 산책하고 샬콤의 마을로 가는 들을 가로지르는데 작은 녹색 계곡에 자리한 그곳은 이름처럼 근사한 마을이야... 노스 양과 굴드 씨가 함께 걸었어. 굴드 씨는 차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도 나와 동행했어. 그는 젊은 청년으로 이제 막 옥스퍼드에 들어갔고 안경잡이에 <에블리나>를 새뮤얼 존슨 박사가 썼다고 알고 있는 거 있지..."

 

 

제인 오스틴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는 문학의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회자된다. ‘아이빈 호’를 써서 유명한 윌터스콧은 그의 글을 읽고, “흔하고 평범한 사물이나 인물을 흥미롭게 변화시키는 정교한 손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고.


이러한 점은 수많은 편지들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편지에는 그의 태도, 성격, 연애, 가족 관계 등이 잘 나타나있었다. 돈이나 날씨, 정원 가꾸기, 생선 가격 등 일상적인 것들까지도 하나하나 관찰하고 기록한 그녀의 천재성 덕분일 것이다. 이에 곁들여 진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농담은 덤이다.

 

 

"이제 난 편지 쓰기의 진정한 묘미가 뭔지 알게 됐어. 그건 늘 상대에게 말로 하던 걸 고스란히 종이에 옮기는 거야. 그러니까 난 이 편지에서 최대한 빨리 언니에게 이야기하는 중인 거지......"

 

 

시간이 지난 만큼 처음 기획했던 프로젝트에서 달라진 점도 있었다. 편지를 주고 받는 시기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처음 손편지 프로젝트를 만들 때 한 달 동안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잔뜩 적은 후 그것을 매월 말일 우편으로 교환하기로 했었다. 이는 내가 친구에게 적어준 프로젝트의 서문에 잘 나타나있다.

 

우리는 일기장의 첫 장에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느끼는 소회와 감정을 서문의 형태로 적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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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생긴다. 제인 오스틴의 시대에는 편지가 ‘일상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빨리 전하는 법이었지만, 현대사회에는그보다 훨씬 편리하고 빠른 방법들이 널려있었던 것.

 

덕분에 한 달 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를 꾹 참아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미 블로그에포스팅하는 주간일기와의 차별성도 찾아야 했다. 같은 내용만이 반복된다면 쓰는 이에게는 소모적인 숙제가, 읽는 이에게는 다시 읽어야 하는 지루한 것이 될 게 뻔했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몇 번의 조율의 과정이 있었다. 그 결과 찾아낸 최적의 방법은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서로 쓴 편지를 교환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교환일기가 된 셈이다. 앞선 문제들은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더불어 가장 아끼는 친구와 차를 마시며 그가 쓴 편지를 읽고 이야기를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로맨틱한 일이었다.


다양한 삶의 국면이 그대로 기록되는 편지. 편지는 읽혔을 때야 비로소 가치를 가진다. 이때 편지의 수신인에는 미래의 ‘나’도 포함된다. 미래의‘나’는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고민들과 경험들을 잔뜩 적어둔 지금의 편지를 보며 어떤 기분일까? 오늘도 습관처럼 펜을 들고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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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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