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제를 기대하고 미래를 그리워하다 - 마리아 스바르보바: 어제의 미래

과거와 미래의 공존을 통해 현재를 이야기하는 전시
글 입력 2023.01.1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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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swimming_out_대지 1.jpg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개인전에 다녀왔다. 그녀의 작품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스위밍풀 시리즈 중 <노란 수영모>가 걸린 포스터에 유독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오래된 영화 필름처럼 노란끼 도는 필터를 씌운 것만 같은 색감과 어린 시절 보았던 것 같은 네모난 타일의 수영장, 그러나 그 안에 몸을 담구고 있는 인물의 차분한 무표정과 노란 수영모에서는 왜인지 접해보지 못했던 낯선 느낌이 들었다.


이렇듯 전체적으로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지만 세심히 뜯어보면 한번도 본 적 없는 구성의 그녀의 작품들은 묘한 매력으로 관람객을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마리아는 늘 예술가를 꿈꿨지만 한번도 누군가로부터 예술을 교육 받지 않았기에 누구보다 틀 속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고 독특한 본인만의 방식을 추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마리아의 작품 속에서 독특하게 두드러지는 특징들과 그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함께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1. 감정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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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1 노스텔지아에서 마리아는 [닥터 시리즈]와 [정육점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작품들에서 두드러지는 인물들의 특징은 '감정의 부재'로 설명할 수 있다. 이들은 아무 감정과 자유의지가 없는 마네킹처럼 마치 누군가가 그들의 자세를 하나 하나 정해준 것만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인간 형상의 피사체가 필요해서 존재하고 있을 뿐 도무지 하나의 인격체로 보이지 않는다.


처음 이 시리즈 작품을 보고 느낀 감정은 섬뜩함이었다. 병원만큼 온갖 감정이 혼재 하는 곳이 과연 또 있을까? 생과 사의 기로에 놓인 이 공간에서 누군가는 환희하고 또 누군가는 끝없는 절망 속에 빠지기도 한다. 게다가 수많은 연령층이 찾는 공간이니만큼 얼마나 다양한 정서가 오가는 곳이란 말인가. 그토록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부재한채 표현된 병원이라는 공간은 어딘가 낯설게 다가오다 못해 섬뜩한 냉기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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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모든 감정이 부재된 곳에서 혼자만의 색체를 지닌 인물이 있다. 엄마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온듯한 작은 소녀는 발도 닿지 않을 만큼 높은 침대에 앉아 진찰을 받고 있는데, 누가봐도 이 상황이 못마땅하다는 듯 뚱하고 긴장 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아이를 달래주기 위해 달달한 스틱 간식을 내미는 다정한 행동과 달리 무미건조한 표정의 간호사와 너무나도 대비되는 이러한 아이의 표정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듯 하다.


누구나 한번 쯤은 어린 시절 병원을 방문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유일하게 감정이 담긴 아이의 표정에 시선이 이끌린 후, 어쩌면 관람자들은 기억 저편에 심어 두었던 어린 시절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는 어느 순간 부터 인물들이 짓는 인위적인 표정에 지쳐 모델의 감정 표현을 완전히 제외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관람객들은 자신의 경험 속 인물들에게서 느낀 감정과 표현을 자유롭게 모델의 무표정 위에 덧입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속 감정의 부재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그 어떤 감정이든 덧칠할 수 있는 도화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나는 스틱을 내미는 간호사 모델의 모습 위에 내 기억 속 어린시절 방문했던 치과에서 진료를 마치면 항상 여러가지 스타일의 반지를 내밀며 고르게 해주던 친절한 간호사의 따스함을 덧칠해 본다. 그러면 섬뜩하게만 느껴졌던 작품 속 분위기는 어느새 그리운 향수가 되어 다가오는 것이다.

 

 

 

2. 해석은 작품의 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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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마리아의 작품은 관람자로 하여금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곤 한다. 감정의 부재를 통해 관람자의 경험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적극적인 해석의 요구하는 그의 작품들은 [정육점 시리즈]에서 접할 수 있다. 정육점 '시리즈'는 그 이름 만큼이나 하나의 작품이 아닌 몇 점의 연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장면을 열거한 듯 하다.


소소하게 장사를 하는 평범한 부부의 정육점이라는 공간에 제복을 입은 낯선 사내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관람자들에게 의문점을 남긴다. 처음 낯선 사내가 등장 했을 때 나는 공산주의의 체계 속에서 부부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그가 일종의 단속을 위해 이곳을 방문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긴장감 속에 마주한 다음 장면에서 그 사내는 카운터를 넘어 부부의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와 아내를 마주하고 있었고, 상황은 또 다른 국면으로 흘러가는 듯 했다.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칼을 든 남편과 사내도 남편도 아닌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는 아내의 묘한 시선 처리는 관람자로 하여금 여러가지 추측을 하게 만든다. 남편은 왜 칼을 들었을까? 아내의 외도 장면을 목격한 남편의 분노일까? 혹은 정말 강압적인 단속으로 아내를 위협하는 공무원을 언제든 제압하기 위한 준비였을까? 일련의 시리즈 작품을 지나며 든 여러가지 추측은 하나의 작품에서 여러가지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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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이야기는 하나의 연작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정육점 시리즈]의 마지막 장면 속 여전히 칼을 든 채 경직된 자세로 서 있는 남편을 끌어안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는 소녀는 다음 작품 <크럼키>에서 똑같은 차림을 하고 다시 나타난다. 이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긴 호흡의 집중력을 이끌어내는 요소가 되어준다. 자연스럽게 다시금 소녀에 대한 풀리지 않은 의문을 붙잡게 되는 것이다.


이 소녀는 누구일까? 소녀가 두 부부의 자식이라면, 어쩐지 미묘한 부모님의 대화를 엿듣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그런 소녀에게 동전 몇 개를 쥐어주며 밖에서 놀다가 들어오라고 했을 지도 모른다. 어쩐지 아이들이라면 환장할법한 과자를 손에 쥐고도 소녀의 표정에서는 복잡 미묘한 그늘이 보이는 듯하다. 이렇듯 마리아의 작품을 보는 관람자들의 해석은 온점이 되어 비로소 작품을 완성 시킨다.

 

 

 

3. 퓨트로 레트로(Futuro Re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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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을 대표하는 가장 큰 특징은 '신구의 조합'이다. 즉, 그녀는 과거의 공산주의 시대의 소품을 이용하여 향수를 일으키면서도, 그것을 현대적인 표현으로 풀어내어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조합을 통해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접해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그리움, 성립하지 않는 듯한 표현이지만 그녀의 작품을 완벽히 표현해주는 문구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특징이 개인적으로 가장 잘 드러난다고 느껴지는 <그들>이라는 제목의 작품 속 공간은 노출된 콘크리트 표면과 깔끔하게 마무리 되지 못한 채 창틀에 남은 페인트, 색이 바랜 듯한 색상의 조합을 통해 오래 전 사무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들'이 취하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은 어딘가 낯선 느낌이다. 2열로 창가에 가까이 서서 한 방향을 바라보는 이들은 광합성을 하려는 나무들처럼 보인다.


어쩐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시나리오가 머리 속에 떠오른다. 먼 미래, 악화된 기상 환경으로 인해 더 이상 실외의 공기를 필터 장치 없이는 접하지 못하게 된 인류가 일정 시간 마다 창가로 나가 햇볕을 보충하는 듯한 장면이다. 유리창을 한 번 거른 채 들어온 햇볕임에도 낯설고 눈이 부시다는 듯 살짝 찡그린 좌측 모델의 표정, 눈을 감고 햇살을 조금이라도 더 음미하려는 듯한 가운데 모델의 표정은 그러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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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평면이 있는가?>라는 제목의 작품은 오래된 강의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각이 지고 딱딱한 질감으로 줄지은 의자들, 강의실 뒤편의 노출된 우드 장식은 오랜 영화 필름 속 대학 강의실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모델들로 시선을 옮기는 순간 과거의 배경에서 느끼던 감정들은 곧 희석되고 만다. 그들은 모두 의자가 아닌 책걸상에 줄지어 '누워있다'.


마치 천장에 스크린이라도 있는 것처럼 줄지어 누운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이 괴랄한 자세에 의문을 표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퓨트로레트로풍의 작품을 지향하며 자신을 잃고 부유하는 모델의 모습을 통해 미래지향적 연출을 이끌어내곤 했다는데, 이 작품에서 그러한 특징이 잘 느껴졌다. 모델들은 마치 우주를 비행사가 된 것처럼 자신의 무게 중심을 잃은 것만 같다. 어쩌면 저들의 공간은 우리와 같은 중력을 가진 지구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통제와 자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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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작품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또 다른 요소는 '통제'와 '자유'를 오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앞선 노스텔지아 섹션에서 1989년 이전 고향인 슬로베키아의 공산주의 시대의 소품과 그 시절을 연상케 하는 질서 정연한 모습들을 연출하며 적당한 수준의 통제가 가져오는 이점과 그에 대한 향수를 이야기하고 있다.


개개인에게 자유와 선택권이 주어지며 낭비와 과도한 플라스틱 사용으로 환경 오염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마리아는 이러한 현실과 대비되게 [정육점 시리즈]에서 필요한 만큼의 정육만을 취급하는 모습을 통해 과거 공산주의의 적당한 통제에서 오는 소박한 일상에 대한 향수를 불러왔다. 또한, <스파르타키아드의 소녀들>의 작품에서처럼 같은 소품과 의상을 착용한 모델을 일렬로 배치한 통제된 질서에서 오는 쾌감을 자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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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의 대표작인 [스위밍 풀 시리즈]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마리아는 가장 자유롭게 여가를 즐겨야 할 수영장에서 조차 여러가지 금기 사항을 내걸며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그려내기도 했다. 좌측 상단에 시선을 끄는 '다이빙 금지'라고 적힌 빨간색 문구를 의식한 듯, 모델들은 다이빙 자세를 취하면서도 절대 물 속으로 몸을 던지지 않는다. 특히나 스위밍풀 시리즈의 영상 버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모델들의 절제된 동작에서 그러한 통제감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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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수영장과 같은 휴식 공간도 제한과 금지로 가득 차 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에 매료되어 이를 차용하여 사회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통제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시켰다.

 

그녀의 또다른 스위밍풀 시리즈 중 하나인 <걸파워>에서 모델들은 앞선 작품들 속 통제를 따르는 여성 모델들의 무미건조한 표정과 대비되는 자신감 있는 자세와 밝은 표정을 취하고 있다. 마네킹처럼 여겨졌던 모델들이 비로서 한 개개인으로서 존재하게 된 듯 하다.

 

이렇듯 마리아는 과도한 통제와 과도한 자유 그 어딘가에서 줄다리기를 하듯 적정선을 찾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 풀어낸다.

 

적정한 통제를 그리워하지만 온전한 휴식마저 방해하는 과도한 제한을 경계하고자 하는 그녀의 작품관은 절대적인 진리는 없기에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일종의 타협을 통해 살아가야 하는 개인의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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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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