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위화의 손끝에서 만난 대서사시: 도서 '원청'

글 입력 2023.01.12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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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엔 소설을 참 원없이 많이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집에 세계문학전집이 있어서 손때가 묻을 만큼 달달 읽었고, 대학교 1학년 때까지도 다양한 소설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영미권 소설, 일본 소설, 그리고 국내 소설까지 두루 읽었는데 전공 공부가 시작되던 순간 소설을 읽던 습관을 내려놓고 전공 도서들을 읽는 데에 빠졌던 것 같다. 가만 생각해보면 소설에서의 화법보다 나는 사회과학 도서들의 화법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들, 흔히 접하기 쉬운 소설을 대표로 해서 말해보자면, 소설의 화법은 아주 완곡하다.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명백하게 표면에 나서서 말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 속에서 살아 숨쉬는 수많은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상황을 통해 우회적으로 나타낸다. 또한 소설은 다루는 소재가 매우 다양하다. 시대적이고 거시적인 문제를 다루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미시적으로 한 개인의 생각이나 일상 혹은 행동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면서 인간사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조망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은 읽다보면 확실히 취향을 탄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기까지 내가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크기 때문에 이 미괄식의 화법에 적응해야만 하고, 또 그 화법이나 소재가 나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이와는 달리 사회과학 도서들, 소위 말하는 비문학 도서들은 두괄식이고 연역적이다. 책의 제목에서부터 저자가 주장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고, 목차만 봐도 저자가 주장을 펴기 위해 설계한 논리가 보인다. 따라서 저자의 화법이 직설적이라는 점과 나 스스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거나 논박하거나 파악하기 위하여 즉각적으로 내용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문학 책보다 더 선호한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예전에 비하면 문학 작품들에 대해 약간의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게 된 나에게도, 여전히 큰 의미를 갖는 문학 작가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아주 오랜만에 고대했던 작가가 신작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아트인사이트로부터 접했다. 그래서 당장 이 작가의 신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중국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위화의 <원청>을 읽고자 한 것이었다. 위화의 <인생>을 읽고 그 후에 <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며 위화의 문학세계에 빠져들었고 그의 수필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을 통해 위화의 문체에 빠져든 나로서는 이번 작품을 놓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 <원청>의 번역은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의 역자였던 문현선이 그대로 맡았다. 위화와 출판사 푸른숲, 역자 문현선의 삼위일체를 이룬 <원청>을 읽어보길 갈망했던 나는 끝내 이 소설을 손에 쥐고 쉼없이 읽어내려갔다.


 



< 책 소개 >


대륙 최고의 거장 위화의 새 소설 [원청: 잃어버린 도시]가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원청]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출간 1년 만에 15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등 절정의 인기를 재확인시켰다. 중국 일간지 [중국청년보]는 이와 같은 현상을 두고 "문학계에서는 [원청]을 읽었느냐는 말이 인사말처럼 오갔"으며 "2021년 문학계의 중대 사건이 되었다"라고 특필했다.

 

청나라로 대변되는 구시대가 저물고, 중화민국이라는 새 시대가 떠오르는 대격변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원청]은 위화의 첫 전기(傳奇) 소설로서, 작품의 스케일로나 완성도로나 가히 위화 세계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원청'이라는 미지의 도시를 찾아 떠나는 린샹푸의 여정 속에서 천재지변과 환란, 그리고 전쟁의 한가운데에 놓인 평범한 인간 군상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삶과 죽음이 뒤엉키는 절체절명의 순간, 개인과 가족, 공동체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것일까? 그간 [인생], [허삼관 매혈기], [제7일] 등 역경 속에서 특히 빛을 발하는 휴머니즘을 감동적으로 그려온 위화는 [원청]에서 이전의 작품을 뛰어넘는 감동과 통찰을 선보인다. 

 


 


위화가 쓴 소설은 항상 딱히 눈에 띄지 않을 법한, 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아니, 그걸 주인공으로 내세운다고 해야 할까? 분명 소설 속에서 주가 되는 인물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를 주인공이라고 해도 될 지 모르겠다. 위화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그저 위화의 세계관과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선택인 듯하지만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시대의 선택이기도 한 결단들을 내리며 급물살 속에 휘말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원청>에서 드러난 주인공으로 대변될 만한 인물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원청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구분된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북쪽 출신의 거구의 남자, 린샹푸다. 하지만 위화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 속 주인공도 있다. 바로 샤오메이다. *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


위화는 가장 먼저, 원청이라는 곳을 찾아 딸을 안고 이곳저곳을 헤매며 다니는 남자 린샹푸를 조명했다. 북쪽의 어투가 남아있는 남자, 하지만 남쪽 동네 시진까지 내려와서 원청이라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을 찾는다. 어딘지 모를 원청을 찾는 길을 떠난 그에겐 갓난아이 딸이 있어 그는 엽전을 쥐고 시진에서 젖동냥을 하며 딸아이를 돌봤다. 시진보다 더 남쪽까지도 내려가 보았지만 그는 왠지 모르게 시진이 원청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결국 시진에 머무르게 되었다. 시진에 머무른 그가 원했던 유일한 한 가지는 딸아이의 생모이자 자신의 부인이기도 했던 샤오메이 그리고 샤오메이의 남매라고 말했지만 과연 남매인지 모를 남자 아청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린샹푸는 샤오메이와 아청을 찾지는 못한다. 대신 시진에서 자신만의 인연들을 만들어 나갔다. 자신처럼 외지에서 들어온 천융량과 리메이롄 가족을 만나 그들의 두 아들과 자신의 딸을 한 집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진에서 목공소를 열어 자산을 쌓아나가기 시작하고, 시진의 높은 인물인 구이민과도 인연을 트고 아이들의 혼사까지 나눌 정도가 된다. 그렇게 시절이 평탄하게 흘러가는 듯하지만 어느새 마을의 주변에서 국민혁명군과 북양군이 전투를 벌이고, 토비 떼들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일쑤가 되면서 린샹푸와 딸 린바이자, 그리고 천융량, 리메이롄, 구이민을 비롯한 시진 사람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린다. 그 일련의 흐름 속에서, 린샹푸는 끝내 자신의 부인이었던 샤오메이와 그의 남편일 것으로 의심하던 아청을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만다.


린샹푸가 굴곡이 많았던 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은 자연사가 아니었다. 국민혁명군과 북양군 간의 전투가 벌어지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백성들이 토비가 되면서 다른 마을의 일반 백성들을 약탈하고, 강간하고, 납치하여 몸값을 갈취하는 사건사고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린샹푸는 토비들이 납치해 간 시진의 구심점, 구이민을 찾기 위해 토비들과의 거래에 응하는 시진 대표로 나섰다. 거래물품이었던 총을 가지고 토비들을 만난 린샹푸는, 구이민을 이미 죽였다는 토비들의 도발이 거짓임을 미처 알지 못하고 분노로 그들에게 반격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칼을 맞고 생을 마감해버렸다. 딸 린바이자가 천융량의 아들 천야오우와 묘한 기류를 보이는 것을 감지하여 그와 딸을 떨어뜨려 놓을 겸 안전한 곳에서 기거하게 하도록 상하이로 보낸 이후, 린샹푸는 린바이자에게 자신의 마지막 의중조차 온전히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뜬 것이다. 샤오메이와도, 린바이자와도 닿지 못한 채로 말이다.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위화는 "원청"에 이어 "또 다른 이야기"로 샤오메이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샤오메이는 린샹푸가 최종적으로 의심했던 것처럼, 아청이라는 남자와 남매지간이 아니라 사실 부부지간이었다. 시진 사람 아청의 집에 샤오메이가 민며느리로 들어가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시진에 있던 아청의 부모님을 두고, 어떤 명확한 계획 없이 타지를 떠돌았다. 샤오메이의 고향 완무당에서 선뎬으로 가고, 거기서 상하이로 넘어간 두 사람은 번화한 그곳에서 흥청망청하다가 노잣돈을 거진 탕진하고 만다. 그래서 아청은 어머니에게 말로만 들었던 경성에 있는 이모부에게 의탁하러 떠나자고 한다. 그렇게 경성을 향해가던 샤오메이와 아청은 사실상 이모부의 성함조차 모르고 자신들이 불확실성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들은 딩촨 근처에서 오솔길로 빠져서 경성이 아닌 다른 곳에 이른다. 그리고 거기서 샤오메이는 린샹푸를 만났다. 비록 그를 만나 잠시간 부부생활을 했지만 샤오메이는 그를 떠나 아청에게 돌아갔다. 그 후 임신 사실을 알고, 남하하던 도중에 다시 린샹푸에게 돌아가 딸아이를 출산한다. 그러나 딸아이를 키우던 그는 린샹푸에게 정착하지 않고 그에게 딸을 돌려준 후 다시금 아청에게 돌아가 시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시진에서 머물면서, 린샹푸가 자신을 찾아 '원청'이 이곳인가 하고 내려왔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 하지만 끝내 그들은 마주치지 못했다.


*


위화가 쓴 이 전기 소설은 중국의 시대적 배경을 은근하게 담고 있다. 100여년 전의 중국을 짚어보자면, 이 시기는 청나라 시대의 끝과 중화민국 시작이 나타나던 신해혁명이 얽히고 설켰던 시기다. 청나라 왕조가 철도를 국유화려고 하자 백성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이 때에 쑨원은 민중들의 지지를 힘입어 공화정을 선포하며 신해혁명을 일으켰다. 이 때 신해혁명의 기조와 노선을 함께 하는 이들이 바로 소설 '원청' 속에서도 등장하는 국민혁명군이다. 청 왕조는 쑨원을 위시한 신해혁명 세력을 자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어 군벌 위안스카이를 끌어들였다. 쑨원은 위안스카이와 협상하여 그에게 중화민국의 총통 자리를 넘겨주기로 하면서, 청 왕조로부터 위안스카이를 빼낸다. 이렇게 청 왕조는 몰락하고 마는데, 위안스카이가 이 시점에 갑자기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야욕을 보인다. 위안스카이 휘하의 북양군 역시 그를 돕고자 했다. 그러나 전국적인 봉기가 일어나 결국 위안스카이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고, 오히려 사망하고 만다. 위안스카이의 사망 이후, 중국은 무정부 상태가 되고 만다.


위화가 소설 '원청'을 통해 조망한 시대적 순간이 바로 신해혁명에서 비롯된 이 무정부 시기다. 북양군과 국민혁명군이 전쟁을 일으키면서 국토는 쑥대밭이 되고, 먹고 살 길이 없는 백성들이 무기를 모아 다른 무고한 백성들을 수탈하는 토비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중국 사회는 그야말로 난세였다. 이 시기의 중국인들에게는 평온한 내일이 당연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나와 함께 떠들고 마시며 놀았던 동네 사람이 갑자기 들이닥친 토비의 도끼에 맞아 눈앞에서 절명하는 일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었다. 이런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들 한다. 그러면 과연 위화는 이 혼란한 정국을 담아낸 '원청'에서 영웅적인 서사를 선보였는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하기 그지 없어서, 이 격렬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리고 꺾이고 부서지는 연약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소설의 전면에 내세웠다.


아청이 샤오메이와 자신의 터전이 있는 시진을 들키고 싶지 않아 린샹푸에게 '원청'이라고 거짓말을 한 그 순간부터, 린샹푸에게 원청은 '아마도 부인 샤오메이가 있을 곳'이 된다. 샤오메이가 자신을 떠난 순간, 린샹푸에게 원청이라는 도시는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목적지가 되었다.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여정을 시작한 린샹푸는 자신의 의지로 한걸음씩 삶을 헤쳐나가는 듯하지만 뜻하지 않게 아주 정통으로, 무정부 시기 중국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정면충돌했다. 그 끝에 그는 유복했어도 탈 많았던 한평생을 순식간에 마감했다. 어쩌면 너무 비정한 장면이었을 지도 모른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 인간은 그저 부서질 수밖에 없는 무력하고 수동적인 존재인 것 같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든다면, "또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끝내 운명의 수레바퀴에 온전히 맞물리는 순간이 더는 없었지만, 린샹푸와 샤오메이는 분명 시진에서 서로 지척에 있었다. 두 사람이 끝내 다시금 조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린샹푸의 운명이 그러했다고 느낄 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닿지 못했던 두 사람의 인생의 편린들이 사실은 거의 맞물릴 수준으로 스쳤다는 것을 독자들은 분명히 안다. 그리고 비록 린샹푸와 샤오메이가 다시 닿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인생은 각자의 길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각기 다른 것들로 채워졌다. 서로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인생의 여정을 계속 이어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


인생이란 참 무엇일까. 인생을 여러 번 산다면 경험이 쌓여 실패를 최소화하고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삶에 점점 수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인생은 우리 모두에게 단 한 번뿐이어서 그 누구도 쉽게 정의할 수 없다. 어릴 때엔 누구나 인생이 마치 놀이동산 같을 것이다. 항상 즐겁고 재밌고 신나는 것들이 많다. 또한 어느 상황에서건 내가 주인공인 것만 같다. 그렇지만 커가면서 점점 사람은 알게 된다. 인생은 무미건조함에 점점 수렴하면서 많은 것들이 의미를 잃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주인공인 줄만 알았던 내가 사실은 커다란 사회 속 하나의 부품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오색찬란하던 모든 것들이 서서히 빛이 바래가는 것을 목도하는 과정이 인생이다. 그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빛을 되찾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배움이 될 것이고, 또 여행, 연애, 결혼 등이 될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사람은 다시금 인생에 고운 색깔을 칠하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사회가 평온할 때라면 당연히 취미생활을 하거나 여행을 다니는 등의 일련의 리프레시들도 쉽게 할 수 있을 테다. 그렇지만 시국이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가 있다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중국에 신해혁명기가 있었다면, 비슷한 시기에 한국은 구한말의 혼란기가 있었다.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뒤숭숭해졌고 경술국치로 끝내 졸속으로 일본에게 나라의 운명을 난도질당했다. 일제강점기의 폭정은 더 말해 무엇하랴. 그뿐만 아니라 광복 후에도 6.25 전쟁이 있었고, 군부정치가 있었다. 그 시대의 소용돌이 앞에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들은 자신만의 발자취를 남기며 인생을 버텨왔다. 결코 쉽지 않은 그 여정 속에서 과연 그들이 '삶은 그저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을까? 설령 운명이 가혹했다 하더라도, 내가 무력한 존재라는 절망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멈출 궁극적인 사유는 되지 않는 법이다. 원청에서 온 여자 샤오메이와 원청 여자를 사랑한 남자 린샹푸의 긴 인생사를 통해, 위화는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숭고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위화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원청이 있다"는 말로 글을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끝내 도달하고 싶은, 하지만 어떻게 도달하면 좋을 지 그 자체만으로도 고민이 되는, 그러면서도 계속 목표로 하고 다가가고자 노력하게 되는 종착지가 있다.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하더라도 모두의 가슴에 지향점 하나 쯤은 있는 법이 아닌가. 그런데 어쩌면, 아청이 말했던 원청에 도달하고도 그곳을 시진으로만 알고 원청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했던 린샹푸처럼, 사실 우리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고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그것을 이미 손에 쥐었을 지도 모른다. 알고도 살고, 모르고도 살고, 하지만 결국엔 헤매면서도 살아간다는 그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가 인간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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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심금을 울리게 하려면 엄청 위대한 것이나 압도적인 것으로 그 마음을 움직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위화는 이런 편견을 단번에 깨뜨린다.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을 법한 인물과 그의 인생으로, 위화는 중국인을 넘어서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을 저며드는 문장들을 자아낸다. 이번에 '원청'을 통해 만난 그의 문장들 역시 변함없이 그러했다. 아니, 오히려 더 깊고 날카로워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그의 마음이 드러나면서도, 비정했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서술은 담담함을 넘어 고요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도시, 원청. 누군가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닿고 싶은데도 절대 닿을 수 없는 곳이었던 원청. 그 원청을 둘러싸고 펼쳐졌던 근대 중국의 난세가 어떠했는지를 위화의 손끝으로 생생히 만나볼 수 있는 책이었다. 책장을 덮은 후에 더욱 먹먹하게 가슴을 죄여오는 이 알 수 없는 슬픈 감정과 벅찬 마음을 곱씹어볼 때, 독자들은 자신만의 원청을 찾아가는 운명적인 여정을 새로이 시작하게 될 것이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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