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어쩌면 루브르에 가고 싶었던 게 아닐지 모른다. -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글 입력 2023.01.08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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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대화에 많이 오르는 주제는 그거다. 돈이 무한히 많다면 뭐부터 하고 싶은지.

 

스물 초중반의 대학생들은 대부분 취업이라는 모호한 목표를 향해 달리다가 취업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가정하게 되면 혼란에 빠진다. 나 또한 그랬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그래서 궁극적으로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선 뭘 하고 싶은지 갈피를 못잡는 상태.

 

그러다가 깨달았다. 나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쫓으며 살고 싶었다. 그러니까,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어쩌면 나만의 미술관을 발견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도서,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의 한 문장이 이런 욕망에 불을 지폈다. 우리가 작품을 하나씩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작품을 선택할지 고민해보라는 문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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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는 문어체 대신 구어체 위주로 쓰인 책이다. ‘톡파원 25시’에도 출연한 화제의 도슨트가 친절히 설명해준다는 컨셉 그대로 읽기에 어려움이 없는 잘 쓰인 책이다.

 

대부분의 도서에서 모든 예술인의 유토피아라 불리는 루브르만을 조명하는 것과 달리, 루브르 뿐만 아니라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로댕 미술관까지. 프랑스에 존재하는 미술관을 전반적으로 다룬다는 점이 특장점이다.

 

가장 상징적인 루브르에서 시작해서 비교적 덜 알려진 오르세, 오랑주리, 로댕 미술관으로 뻗어나가는 책의 흐름이 굉장히 매력적인데, 기존의 루브르 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던 프랑스의 문화예술을 거시적으로, 동시에 미시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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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나라로 불리우는 프랑스는 그 명성답게 크고 작은 미술관이 위치해있는데, 신기하게도 각 미술관마다 가진 역사나 개성이 뚜렷하단 점이다.

 

가장 유명한 미술관 중 하나인 루브르가 다양한 스펙트럼과 특유의 큐레이팅으로 인류 5000년의 역사를 하나의 실타래로 엮었다면, 한때 기차역이었던 역사를 가진 오르세 박물관은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바라보는 풍경처럼 인상주의 작품이 특징적이다. 즉, 선두에 선 루브르와 그의 아류 미술관이 아니라, 여러 곳의 미술관이 유기적으로 엮여 프랑스, 어쩌면 전 세계의 문화예술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루브르 박물관 이외엔 뚜렷히 아는 곳이 없어 무작정 루브르를 꿈꾸게 되었던 사람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은 도서다. 정작 나만 해도 상단에 당당히 적어두었던 ‘루브르 박물관 가보기’를 ‘오르세 미술관 가보기’로 수정했을 정도니 말이다. 수많은 예술작품이 살아숨쉬는 프랑스에서 ‘자신만의 프랑스 미술관’을 발견하기에도 알맞은 도서다.

 

이와 더불어,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가 이야기하는 내용들도 상당히 구체적이고 색다르단 점이 눈에 띈다. 기존의 루브르 박물관을 다룬 도서에서는 대부분 ‘예술작품’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세기의 작품으로 훌쩍 튀어오른 모나리자의 작가, 역사, 기법적 특징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전형적으로 예술작품이 주인공인 구조다. 때문에 첫 번째 챕터는 흥미롭게 읽다가도 다음 챕터로 넘어가면 뭔가 이질감을 느끼는 경우가 잦다. 앞에서는 모나리자가 주인공이 되었는데, 이번 챕터에서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가 주인공으로 훌쩍 올라서니 흐름상 통일성이 깨지는 것이다. 아마도 나를 비롯해서 많은 이들이 미술관련 책을 반절만 읽고, 완독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이리라 생각한다.

 

반면에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는 각 미술관이 주인공이 된다. 미술관이 가진 구조와 루트를 설명해주고 선택을 돕는 것은 물론, 작품의 기법적 특징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미술관’이 수행한 역할을 이야기한다. 이와 더해, 전시의 전략적 배치를 명쾌하고 알기 쉽게 해설해주는 것 또한 굉장한 장점이다.

 

이 때문인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예술작품이 아닌 미술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엔 단순히 <밀로의 비너스>를 꼭 한번 눈으로 보고 싶어서 루브르를 꿈꿔왔다면, 이젠 수많은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배치한 그 노력을 눈에 담고 싶어서 꿈꾸게 되었다. 비슷하지만 굉장히 달라진 것이다.

 

동시에 막연히 ‘인생에서 루브르는 한번 쯤 가봐야지’하는 모호한 이유도 구체적인 자리를 찾았다. 무의미하게 맨날 적던 루브르 방문에서, 좀 더 개인적인 이유가 가미된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루브르에 가고 싶었던 게 아닐지 모른다. 우리가 생각한 이상은 어쩌면 루브르가 아니라 오르세에, 로댕에, 오랑주리에 있을지도 모르고, 또 이를 넘어 나만의 미술관을 꿈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서,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는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던 프랑스의 이상을 비추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아마도 이게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해야하는 이유다.


 

[최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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