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덕후의 마음으로 : 글리프 6호- 김초엽

글 입력 2023.01.06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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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전에 비해 덕질의 범위가 넓어졌음을 실감한다.

 

아이돌, 배우 등 연예인을 좋아하는 행위에 국한되다시피 했던 시절에도 다른 문화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작가 덕질이라니, 아이돌 덕질을 오래 했던 나는 궁금했다. 작가 덕질은 어떻게 해?

 

작가 덕질 아카이빙 잡지, <글리프>는 다소 황당한 물음에 열렬히 답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담는 일은 문화를 불문한다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책과 작가를 좋아해도 덕질할 정도까진 아니었음에도 이 책을 보면서 가슴이 뛰었다. 이 책을 보며 느꼈다. 나의 좁고 깊은 덕질의 역사에 또 다른 샛길이 열렸음을!


<글리프>는 한 작가의 시선이 닿았을 모든 것을 엮어 비평 대신 덕질로, 한국문학을 새롭게 향유하고자 하는 잡지라고 소개한다. 이 시리즈는 정세랑을 시작으로 구병모, 김금희, 강화길, 정유정을 거쳐 김초엽에 닿았다.

 

김초엽은 왜, 어떻게 한국문학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는가,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모티프들과 그가 던지는 질문들을 구석구석 돌아보며 우리는 김초엽이라는 작가의 우주를 힘껏 유영해 볼 수 있다.


작가 김초엽 하면 빠지지 않고 따라오는 것이 ‘SF’다. 등단 초기부터 한국 SF 문학의 혜성으로 떠올랐고, 그의 작품들의 대다수가 SF를 품고 있으니 틀린 수식어는 아닐 테다. 내가 알고 있는 김초엽의 작품들 역시 sf 문학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책은 SF가 김초엽의 작품 세계를 납작하게 만들 때가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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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초엽이 본질적으로 다루는 이야기는 ‘혐오’, ‘정상성’에 대한 이야기다. 디스토피아 속 피어나는 엷은 인류애, 유토피아의 흐린 뒷면 등 김초엽의 작품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윤리적 상상력에서 기인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작품을 읽으며 먼 미래 혹은 우주와 같은 비현실을 감상하기보다는 보다 가까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을 무중력 속에서 읽어낼 수 있다. 덕분에 그의 작품은 따스하고, 많은 독자들을 그의 팬덤으로 움트게 했다.


덕질을 해본 입장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상태’에 대한 몰입이 극에 달한 때를 돌아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애 좀 봐줘” 하고 나의 덕질 대상을 마구 설명할 때였다. 너무 자랑스러운 나의 누군가가 더 잘 되었으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하는 그 가쁜 마음에 허둥대며 여기저기 소개하기 바빴다.


잡지 글리프의 다양한 꼭지들에서 비슷한 애정을 엿본 듯했다. 쉬운 글들로 명확히 흥미롭게 설명된 그의 작품 세계관이나 여러 배경지식들이 그랬다.

 

책에 소개된 작품들에는 내가 읽어본 책보다 안 읽어본 책이 더 많았음에도 장벽이 느껴지지 않았다. 친절하고 자세히, “나의 작가를 봐, 그의 멋진 작품들 흥미롭지 않니?” 하는 뿌듯한 마음을 세밀히 정리한 것처럼 느껴져 꼭 그 마음에 응답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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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와 같은 덕후들을 위한 꼭지들에서 이 잡지만의 끈끈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 작가에게 전하고 싶었던 진심, 또 작가와 작품에 관련해 나눈 인터뷰 등을 보며 저 순간들이 얼마나 즐거웠을까 하는 훈훈한 마음으로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나도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 문화를 이렇게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책 하나를 꾸려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다른 일보다 즐거웠을 거라 믿는다.

 

더 이상 그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게 되더라도, 열정을 쏟고 애정을 탄생시켰다는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벅차지 않을까.

 

<글리프>의 덕질이 계속되기를, 또 내가 잘 모르는 문화들에서도 <글리프>같은 시도들이 두둥실 떠오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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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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