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해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해 - 글리프 6호: 김초엽 [도서]

글 입력 2023.01.0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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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단어 없이도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글리프]를 선물하고 싶다.

  

'작가 덕질 아카이빙' 글리프에 대해 소개하기에 앞서 밝히자면 나는 김초엽 작가 덕후이다. 첫 단편 소설집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은 후, 신간이 나올 때면 어김없이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품고 돌아왔다.

 

무려 6권의 신작이 쏟아져 나왔던 2021년에는 읽는 속도가 쓰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례적인 상황을 겪긴 했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며 따끈따끈한 신작을 읽을 수 있음이 행운이라 생각했다. 김초엽 작가의 유년기에 해리포터가 있었다면, 나의 청년기에는 김초엽 작가의 소설들이 있다.

 

이토록 김초엽 작가와 그녀의 작품들을 애정 하면서도 막상 좋아하는 이유를 물으면 답하기 어려웠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오히려 정리하기 어려웠고, 그럼에도 잘 고르고 다듬은 말로 설명하고 싶어 한참 망설이다 결국 "그냥 읽어 봐, 읽어보면 알아!"로 마무리하곤 했다.

 

그래서 글리프 6호의 주인공이 김초엽 작가라는 소식이 참 반가웠다. 비평 대신 덕질을 선택한 아카이빙 잡지, 글리프라면 그동안 구체화하기 어려웠던 생각과 감정을 잘 정리해 줄 것만 같았다.

 

예감은 맞았다.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가득한 책이 아니었음에도 김초엽 작가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고 깊이 관찰한 글을 읽으며 작가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비슷한 걸 좋아하는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부유하던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당연한 것은 당연하지 않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그 세계는 꽤나 구체적이어서 글을 읽다 보면 그 세계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이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건 그의 과학적 상상력이 아니다. 새로운 세계 속에서 마주하는 질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세계이지만 그 안의 이야기는 미묘하게 우리의 현재와 연결되어 있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 속엔 다수와의 차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세 번째 팔의 감각을 느껴 몸을 개조하고 싶어 하는 로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제거된 다른 이들과 달리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라이오니, 작은 몸으로 인해 인지 공간에 들어갈 수 없는 이브 모두 그런 존재이다. 약자로 여겨지던 이들이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고 개척하며 결함으로 여겨지던 것이 더 이상 결함으로 작용하지 않을 때, 정상성이 얼마나 얄팍한 유리 같은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 속 인물들은 내 안에 미묘하게 녹아들어 내가 살아가는 사회 속 로라, 라이오니, 이브를 바라보게 한다.

 

특히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작가가 쓰는 시기와 독자가 읽는 시기의 차이가 크지 않기에 소설 속 세계와 현실 세계는 더 긴밀히 연결된다. 오늘 아침에도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지하철 탑승 시위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읽었다. 항상 존재했지만 마치 장막이라도 덮여 있던 것처럼 흘려보냈던 문제들을 이제는 좀 더 예리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글리프 속 문장을 빌리자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정말 당연한지, 모두에게 당연한지 묻는다.'(23p.)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하는 마음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로라, <방금 떠나온 세계> 수록

 

 

김초엽 작가의 소설 속 배경은 이미 붕괴했거나, 붕괴 중이거나, 혹은 곧 붕괴될 세계인 경우가 많다. 어쩌면 현실보다 더 엉망진창인데도 소설이 따뜻하다고 느끼는 건 그 가운데 서로를 이해해 보고자 노력하는 인물들 덕분일 것이다.

 

디스토피아 속에서도, 때로는 상대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태도로 정진하는 이들을 보면 세상은 아직 아름답고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어진다. 이미 김초엽 작가를 수식할 표현이 차고 넘치는 걸 알지만 이 점에서 사랑 이야기를 참 잘 쓰는 작가라는 수식어도 슬쩍 덧붙여 본다.

 

이들의 사랑은 상대에 대한 완벽한 이해로 귀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 상대를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는 게 아픈 현실이다. 그럼에도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세 번째 팔을 갖고 싶다는 로라를 이해할 수 없었던 진이 비슷한 사람들에 대한 긴 취재를 한 것도 결국은 로라를 이해해 보고자 하는 끈질긴 노력이었다. 진은 끝끝내 로라의 감각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로라를 사랑한다.

 

결국 두 사람이 사랑하기 위해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사랑하는 것보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사랑하는 게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애써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모여 서로를 구한다고 믿기에 김초엽 소설 속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비슷한 가닥으로 내가 아무리 김초엽 작가와 그녀의 소설들을 사랑한다 해도 이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소설들 덕분에 이해하지 못했던, 어쩌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그것들을 이해해 보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명쾌히 깨닫게 해준 글리프에서 앞으로 또 어떤 작가들을 소개할 지 매우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 독자가 있는 작가로 살고 싶다는 김초엽 작가의 꿈과 덕질의 선한 영향력을 보여준 글리프의 앞날을 응원한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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