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말 선물을 준 콘서트 - 소프라노 강혜정 연말콘서트 누벨바그

글 입력 2023.01.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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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악기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하나가 된 소리도 좋아한다. 그래서 클래식을 자주 듣는 편이다. 아는 것도 없고, 제목이나 작곡가를 외우지도 못하고, 아직 들어보지 못한 곡도 많아서 좋아한다는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자주 찾아서 듣고, 때로는 피아노 연주나 오케스트라 공연 영상을 찾아서 보기도 했다.


소리가 워낙 좋으니까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이유를 알게 해준 것은 최근에 다녀온 ‘소프라노 강혜정 연말콘서트 – 누벨바그’였다. 더불어 오케스트라를 만난 목소리의 매력을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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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강혜정 연말콘서트 – 누벨바그’는 소프라노 강혜정, 지휘 차웅, 게스트 클라리넷 송호섭, 한경arte필하모닉으로 무대를 꾸몄다. 해설은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맡아 깔끔하고, 위트 있는 진행을 보여줬다. 영화와 곡 설명을 해줘서 곡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진 상태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소프라노 강혜정은 2005년 뉴욕에서 오페라 <마술피리>로 ‘뉴욕 마이클 시스카 오페라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인물이다. 클래식뿐만 아니라 다수의 오페라 주역, 합창, 한국 가곡, 뮤지컬 등에서 활동하며 넓고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 그녀만의 매력이 더 널리 알려진 건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였다. ‘패티’역을 맛깔나게 소화하여 ‘강패티’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뉴욕 타임즈에 ‘다채로우면서도 유연한, 너무나 달콤한 소프라노’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맑고, 청아하면서 단단한 힘이 느껴지고, 폭발적인 성량과 뛰어난 테크닉으로 많은 사람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그녀는 22년 영화음악 연말 콘서트로 팬들에게 찾아왔다.


흥미로운 점은 공연 곡들을 성악가 강혜정이 직접 엄선했다는 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공연 내내 남다른 애정이 느껴졌다. 고전 명작 영화부터 현대 영화까지 대중이 열광했던 영화를 골랐으며,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곡들을 불렀다.


함께한 차웅은 토스카니니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 없는 2위를 한 지휘자로 유명하다. 한경arte필하모닉은 2015년 ‘경제와 문화의 가교’라는 가치로 한국경제신문이 창단한 오케스트라다. ‘청소년 문화 사랑의 날’ 투어, ‘한국을 이끄는 음악가 시리즈’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이번 콘서트의 주제인 ‘누벨바그’는 새로운 물결(New Wave)이란 뜻의 프랑스 영화계에 일어난 새로운 풍조를 말하는 영화용어이다. 이 의미에 걸맞게 대중적인 곡들을 소프라노 강혜정만의 해석으로 새롭게 불렸다.


영화 ‘라라랜드’부터 ‘엽기적인 그녀’, ‘레미제라블’, ‘스타 이즈 본’, ‘레미제라블’, ‘사랑은 비를 타고’,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OST가 소프라노 강혜정의 목소리와 감성 그리고 한경arte필하모닉에 의해 새롭게 재탄생했다.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놓고 자주 들었던 곡부터 한, 두 번 정도 들어본 곡까지 만나서 반가웠다.



한경arte필하모닉.JPG

 

 

14곡 모두 반가웠지만 그 중 ‘엽기적인 그녀’와 ‘사랑은 비를 타고’, ‘라라랜드’의 OST가 가장 반가웠다. 특히 세 영화는 각각 다른 시절에 봤던 영화라서 감회가 새로웠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스크린에 영화 속 장면이 나오지 않았지만, 나머지 두 영화는 주요 장면들이 스크린에 상영되어서 영화 줄거리가 다시 기억났다. 연주와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보니 ‘뮤직비디오 live가 있다면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영화 ‘라라랜드’ 주제곡부터 삽입곡까지 메들리 공연을 선보여서 영화 한 편을 다시 본 것 같았다. 음악 재생 앱이나 영화를 통해서만 듣다가 현장에서 연주와 노랫소리를 직접 들어서 좋았다. 피아노, 현악기 등 다양한 악기의 소리가 영화 음악을 만난 순간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라라랜드 OST의 연주나 노래를 라이브로 들으면 어떨지 상상만 해왔었는데, 상상이 현실이 되어 감격했다.


영화 ‘코다’ OST인 ‘Both Sides Now’는 세 번째 순서였는데, 콘서트에 완전히 몰입한 시작점이었다. 이 곡은 코다인 ‘루비’가 가족들에게 수화로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는 장면의 삽입곡이다. 그 장면이 스크린에 상영되면서 연주와 노래가 시작됐다.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 장면을 보면서 라이브 연주와 노래를 들으니 괜스레 울컥했다. 영화를 본 것도 아닌데, 연주와 노래, 영상만으로 영화 속 주인공의 마음과 이야기가 예상되었다. 소프라노 강혜정의 따스한 목소리와 여러 악기의 맑은소리가 ‘Both Sides Now’ 곡과 잘 어울렸다.


영화 ‘스타 이즈 본’ OST인 ‘I’ll Never Love Again’은 나에게 영화보다는 노래 제목으로 익숙한 곡이다.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곡인데, 가사와 멜로디가 슬프고 울림이 있어서 한동안 무한 반복했었다. 첫 소절이 나오자마자 반가움과 기쁨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절절함이 묻어나는 악기 소리와 슬픔과 호소력이 짙은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마치 노랫말을 부르는 게 아니라 가사에 담긴 메시지를 관객에게 말하는 듯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소프라노 강혜정도 저 영화를 봤을지 궁금했다. 그런 생각 탓인지 왠지 영화를 본 그녀의 소감을 노래로 표현한 것처럼 느껴졌다. 틈틈이 스크린에 나온 영화 장면을 보기도 하고, 연주자들을 보며 교감하고, 관객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려는 그녀의 모습이 예뻤다. 목소리와 행동이 포근한 연말을 닮아 있었다.


강혜정만의 매력과 곡을 해석하는 능력이 돋보였던 14곡이었지만, 진짜는 앵콜에 있었다. 그녀만이 가진 강점이 돋보이고 매우 빛났다. 그녀의 어떤 면에서 뉴욕 타임즈의 극찬이 나온 건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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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음악을 들으면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젖곤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제목을 들으면 그 영화를 함께 봤던 사람이 생각나고 영화를 본 후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그런 영화와 만난 음악을 들으면 추억여행을 떠나는 건 순식간이다. 이런 특징을 연말 콘서트에 잘 활용했다. 덕분에 콘서트를 즐기면서 그동안의 일들을 되돌아보며 22년과 완벽한 이별을 했다.

 

 

 

좋아하는 이유는


 

홀의 특성과 좋은 자리 덕분에 연주자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모두가 지휘자를 보며 다른 듯 비슷한 몸짓으로 연주하는 그들을 보면서 확실히 알았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였지만 같은 곳을 향한 시선, 두 눈동자로 여러 사람을 살피고 두개의 고막으로 다양한 소리를 듣고 두 손으로 여러 사람을 이끄는 모습, 여러 악기 소리가 하나로 만들어지며 탄생한 화음, 음계와 악기 소리가 함께 만들어낸 풍부한 사운드, 낮은 도부터 높은 도까지 음 하나하나가 모여 완성된 음악.


그 모든 것이 말과 마음을 주고받는 진솔한 대화 그리고 깊은 관계로 보였다. 진솔한 대화와 깊은 관계가 주는 안락함에 클래식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던 거다.


악기 소리 하나하나 그리고 음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기를 좋아하는 것은 각각의 소리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아서다.


여러 소리가 하나 되어 황홀하고, 홀을 가득 메우는 웅장한 음악은 약한 면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기 때문이다.


잊을만하면 클래식을 찾는 이유도 나를 안아주고,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무언가가 필요해서였다. 시끄럽고, 불안하고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안락함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콘서트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 클래식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게 되어 기뻤다. 22년과 잘 이별할 수 있게 도와주고, 몰랐던 이유를 알게 해준 콘서트가 고마웠다. 22년이 가는 건 서글프고 씁쓸했지만, ‘소프라노 강혜정 연말 콘서트 – 누벨바그’가 준 선물 덕에 웃을 수 있었다. 새로운 물결의 흐름을 잘 탈 수 있겠다는 기대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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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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