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밀한 묘사에서 드러나는 진심 -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그가 진정한 예술가인 이유
글 입력 2023.01.0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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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의 최상층에 위치한 63아트에서 열린 맥스 달튼의 개인전 <영화의 순간들 63>에 다녀왔다. 일전에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맥스 달튼의 개인전이 개최되었을 당시 시간의 제약으로 방문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기도 했고, 서울 시민인 내게 너무나 익숙한 외관의 63빌딩이었지만 정작 그 내부를 들여다 본 적은 없었기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부푼 마음으로 탑승한 60층행 엘리베이터가 데려다 준 곳에는 생각보다 훨씬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어스름이 질 때쯤 전시회장에 도착했는데, 노을 진 핑크빛 하늘이 전시의 포스터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포스터의 배경이 되는 부다패스트 호텔의 위엄에 뒤지지 않는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서울 풍경이 이어져 있었기에 두 도시의 풍경을 한 눈에 담아보는 특별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맥스 달튼의 전시가 초입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유는 그도 나와 같은 취향을 공유하고 있다는 친숙함에서 시작되었는데, 달튼을 소개하는 섹션 벽면의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하루에 세 편의 영화, 일주일에 세 권의 책, 그리고 훌륭한 음악 레코드만 있다면 내가 죽는 날까지 행복하기에 충분할 것이다.’라는 문구는 그동안 전시회장에서 접했던 어떤 명언 보다도 콘텐츠를 사랑하는 내게 공감되는 것이었다.


맥스 달튼은 70-90년대를 풍미한 영화를 소재로 일러스트를 작업했을 뿐 아니라 직접 영화의 대본에 참여하기도 하고, 레코드 LP로 음악을 듣는 것을 사랑했다고 한다. 장르를 가르지 않는 문화 컨텐츠 사랑에 그 역시도 소위 ‘잡덕’이라 일컫는 애호가일 것 같다는 동질감과 함께 그가 얼마나 다채로운 상상력과 공상을 작품 속에 풀어 냈을지 무척 기대되었다.

 

 

 

전반부: 달튼 만의 표현 법에서 느껴지는 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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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막에서 달튼은 영화 역사에서 손 꼽는 명작들을 재구성했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특유의 신박한 형식들이 돋보였는데, 미니어처 작품의 2D 버전을 연상케 하는 건물 내부를 표현한 작품들이 유독 많았다. 건물 안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나면, 접해본 적 없는 영화임에도 그들의 스토리가 보이는 것만 같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 <아멜리 폴랭의 멋진 운명>은 커다란 건물 내부의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각각 집 안에서 신문을 읽으며 휴식을 즐기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반려동물의 밥을 챙겨주기도 한다. 이렇듯 지극히 단순한 일상의 루틴들 속에서 어쩌면 아멜리는 완벽한 조화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작품 속에서 따스한 색채와 대칭 구조로 표현된 이들의 일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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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튼의 표현법 중 인상 깊었던 또 다른 포인트는 그의 작품 속에서 영화의 주조연 모두가 동등하게 나열된다는 점이었다. 그는 몇몇 작품에서 마치 쇼윈도의 제품들처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나열하곤 하는데 약간의 디테일과 소품 만으로 인물의 정체성이 표현되고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이든, 잠깐 스쳐가는 인물이든 별다른 차이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위손 컷아웃>이라는 작품에서 그는 인물 뿐 아니라 소품들까지 함께 나열하며 마치 어렸을 적 유행하던 캐릭터 옷 입히기 게임을 연상케 하는 표현법을 선보였는데, 뜬금 없게도 작품의 가운데를 차지 하고 있는 것은 인물도 아닌 톱니 바퀴이다. 그런가 하면 <오래전 멀고 먼 은하계에>라는 작품에서는 스타워즈의 등장인물들을 마치 도감처럼 나열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의 구성은 사람마다 영화 속에서 다르게 느꼈을 인상 깊은 요소들을 찾아보며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익숙한 인물을 찾기 위해 눈을 굴리는 동안 주연에 가려져 몰랐던 매력적인 조연들의 모습을 만나볼 기회를 주기도 한다. 영화를 아직 접하지 않은 관람객들 또한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훑어 보며 자연스럽게 이들 간에 벌어질 사건들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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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의 작품은 가만히 들여다 보다 피식 웃게 만드는 재치를 지니고 있었다. 백 투 더 퓨처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 <힐 밸리>에서는 자동차들이 하늘을 날고 있고, 바닥에는 ‘NO LANDING(착륙 금지) 문구가 적혀 있다.


이 작품은 교통 전쟁이 심해지던 어느 미래 급기야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일종의 디스토피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의 얼이 빠진 표정과 달리 날아다니는 자동차에 아무렇지 않은 시민들, 주인공이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타임 머신이 차도에 착륙해 있는 것에 오히려 놀라는 행인의 표정이 함께 담겨 작품의 분위기는 어둡고 침체되어 있기 보다 센스 있는 재치가 돋보이면서 밝은 분위기로 표현되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유쾌한 표현법은 <고질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언뜻 보면 도심에 커다란 괴물이 나타난 심각한 재난 상황이지만, 작품 속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보다 보면 그의 재치를 발견할 수 있다. 왼쪽 하단을 자세히 보면 검은색 도복을 입은 채 달리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 그가 얼마나 급박한 상황 속에 놓였는지 한 눈에 느낄 수 있다.


또한 오른쪽 하단에 차가 전시된 단상을 보면 양복을 차려 입은 한 남자가 쭈구리고 앉아 있는데, 도망치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속에서 숨을 죽인 채 괴물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길 바라는 듯한 모습이 대비되며 현장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이렇듯 정신없는 사람들의 모습과 대비되는 고질라의 여유로운 표정과 그저 유명한 음식을 맛보러 온 듯한 행동이 이 작품을 더욱 재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시너지 효과를 내는 전시장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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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튼의 독특한 표현 법이 느껴지는 또 다른 작품은 <모르도르는 아무나 걸어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요>인데, 작품의 제목처럼 도착지로 추정되는 모르도르까지의 힘겨운 여정을 보드 게임 형식으로 풀어냈다. 주인공의 여정에 펼쳐질 각종 고난, 시련 뿐만 아니라 인연과 사소한 일상까지 플레이어들이 거쳐갈 말로 표현되어 작품의 스토리를 한 눈에 담아 볼 수 있다는 점이 신박하게 느껴졌다.


달튼의 이러한 재치 있는 표현법과 더불어 전시 공간을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전시의 구성이 있었기에 완벽한 시너지를 느낄 수 있었는데, 해당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작품의 아래 위로 삽입된 영화 속 문구가 그 첫번째 구성이다. 아무래도 영화의 한 장면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 대부분이기에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소외되기 쉬운데, 해당 장면의 문구를 삽입하여 작품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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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겁쟁이처럼 생겼냐고?!> 작품의 벽면처럼 작품 속에는 없지만 연상 되는 이미지를 벽면에 마치 스티커처럼 작업하여 조금 더 작품 속 이미지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도 관람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 것 같다. 덕분에 액자 속에 있는 작품 뿐만 아니라 벽면 전체, 전시장 전체를 눈에 담으며 새로운 형식의 관람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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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해당 전시관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소소하지만 몰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요소들도 기억에 남는데, 먼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전시된 공간으로 넘어가기 이전에 기생충에서의 한 장면을 직접 재연해 볼 수 있게 해당 영화에서 쓰인 모스 부호와 전등 스위치를 갖춰 두었는데, 직접 스위치를 껐다 켜는 행동을 해봄으로써 작품 속 배경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63빌딩 최고층에 위치한 전시장의 이점을 잘 활용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경관을 잘 볼 수 있는 통유리로 구성된 공간에 작품의 일부를 시트지처럼 붙여 놓았다. 이는 마치 우리가 실제로 보고 있는 서울의 전경 속에 달튼의 작품 속 등장하는 괴물이 나타난 듯한 장면을 연출하며 조금 더 그의 작품 세계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후반부: 세세한 묘사에서 오는 달튼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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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달튼의 작품들 중에서는 <마더>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이 가장 인상깊었다. ‘마더’라고 적힌 간판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 작품은 멀리서 보면 평화로운 한 시골 마을의 풍경 같지만, 달튼의 작품들이 항상 그렇듯 자세히 보면 또다른 서늘한 느낌을 준다.


옥상 위에서 마치 머리를 감는 듯한 자세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교복 입은 소녀의 모습, 오른쪽 상단에 불에 휩싸여 타들어 가고 있는 집 한 채, 어쩐지 기괴하게 느껴지는 중앙에 위치한 옥상의 마네킹까지, 영화에서 벌어질 사건들을 표현한 듯한 각각 요소들은 서늘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자극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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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디스패치를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 속에서도 달튼의 세밀함을 느낄 수 있는데, 그는 손님들의 눈에 익은 화려한 건물의 앞면 뿐만 아니라, 스텝들의 공간인 건물의 뒷면도 함께 표현하며 작품의 또 다른 국면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아침이 되면 많은 인파들이 거니는 대로변에 위치한 상징적인 건물이지만, 그 뒷면에는 어쩐지 외로워 보이는 골목이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치도 못한 그의 표현법에 또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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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후반부에는 달튼이 푹 빠져 있던 또다른 장르인 음악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의 세밀한 묘사 속에서 발하는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라는 작품은 여러가지 기타가 벽면에 전시된 밴드의 작업장을 보여주는 듯 한데, 자세히 보면 아티스트의 위쪽 기타가 불에 타고 있다. 처음에는 불 효과를 표현한 디자인인가 싶었는데, 그을리고 있는 벽지와 연기가 정말 기타에 불이 붙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기타가 불 타는 것도 모른 채 연주에 열중하고 있는 아티스트의 모습이 대비되며 달튼이 가진 음악에 대한 열정이 어떤 것인지 느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LP판의 표지를 디자인한 듯한 그의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모두 똑같아 보이는 LP판들이 담고 있는 음악이 어떠한 것인지 달튼 만의 표현법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그것이 어떤 음악일지 상상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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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튼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화가들의 작업실을 표현한 작품 시리즈였다. 그는 유명 화가들의 작업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하는 상상에 기반한 작품들을 시리즈로 작업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수련>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모네의 작업실이 가장 눈에 띄었다.


모네는 언젠가 수련이 만발할 듯한 연못이 있는 정원에서 이젤을 세운 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으로 담겼는데, 화가의 작업장이 언제나 실내에 있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편견을 깨주는 동시에 아름다운 정원 모습에서 영감을 얻는 모네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동시에 그러한 세밀한 묘사에서 달튼이 해당 작가들에게 느끼는 경외심과 존경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의 작품들은 항상 눈여겨볼수록 숨은 그림 찾듯이 나타나며 작품을 받쳐주는 디테일들이 있고, 그러한 세밀한 묘사에서 느껴지는 그의 진심을 찾아볼 수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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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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