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숨이 차도록 달리는 청춘 [영화]

영화 속 달리기 장면.
글 입력 2023.01.0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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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정말 간단해 보이면서도 매력적인 활동이다.

 

그저 걷는 데서 보폭을 조금 더 넓혔을 뿐인데도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은 금방 단축되고, 운동 효과도 배가 된다. 아기는 태어나서 뒤집기를 하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걸음마를 떼다가 마음껏 달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달리기는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달리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빠르게 달리는 단거리 달리기, 주자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오랫동안 달려야 하는 마라톤. 열심히 달리다 보면 길에 놓인 장애물을 보지 못해 돌부리 따위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뛴다. 그 과정이 제법 극적이어서 그런지 달리기는 사람의 길고 지루한 인생을 비유할 때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내가 본 영화에는 달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희한하게도 화면 속에서 달리는 사람들은 죄 나랑 나이가 비슷한 젊은 사람이었다. 달리는 것이 어린 사람들의 전유물이어서 그런 것일지, 원래 인생의 시작 단계에서는 이만큼 달리는 것인지, 아니면 무서울 게 없는 존재여서 달릴 수 있는 것인지.

 

영화 속 달리는 장면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달리기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달리기 장면에서는 마법이 일어난다. 포레스트 검프는 장애가 있어 다리에 보조 장치를 착용하고 있었고, 당연히 걸음도 느리고 이상했다.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 포레스트 역시 또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그런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이 달리기다. 여기서 달리기는 포레스트가 처음 자신의 의지로 시작한 일이고, 많은 한계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장치이다. 그러면서도 첫사랑이 나를 생각해 시킨 일. 포레스트는 따돌림과 자신을 구속했던 보조 장치를 벗어나게 해준 달리기를 평생 이어간다.

 

계속 달리며 그는 어린 시절을 벗어나고 사회에 나가 온갖 시련을 겪게 된다. 같이 참전한 동료를 메고 달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달린다. 그렇게 그는 점점 안정을 찾아간다.

 

인생의 주요 순간마다 달릴 것을 선택하는 포레스트를 보고 있으면 인생에 시련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물음에 성공한 많은 사람이 '그냥 하라'고 답하는 모습이 생각난다.

 

 

 

폭발하려는 마음을 잠재우며 달리기


 

 

 

젊음은 작은 일에도 마음이 쉽게 벅찬다. 청춘과 열정이라는 단어 따위가 같은 테두리 안에 묶이는 것도 그런 탓이다. 알렉스는 무엇을 위해 뛴 걸까? 그것이 그를 이렇게 날뛰게 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을까?

 

레오 까락스의 영화 <나쁜 피> 속 알렉스의 달리기는 그런 모든 질문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저 그 순간 달리고 있는 젊은 남자가 있을 뿐이다. 이 장면에 사용된 데이빗 보위의 음악 '모던 러브'와 온몸으로 달리는 청춘, 그리고 허무하게 끊어지는 음악과 장면은 이후 많은 영화에서 오마쥬 되었다.

 

 

 

 

마음이 터질 듯이 달리는 장면은 레오 까락스 감독의 조금 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도 묘사된다. 이들은 길거리를 집 삼아 살아가는 비참한 인생이지만 누구에게나 무료인 멋진 불꽃과 사랑하는 상대방만을 믿고 거리를 마구 뛰어다닌다.

 

볼품 없고, 춤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이며, 오히려 발악에 더 가까운 이들의 몸짓은 어딘가 목적지를 향하는 달리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터질 듯한 감정을 온 몸으로 표현하려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고도 남았다.

 

 

 

흑백 현실 속에서 꿈을 꾸며 달리다


 

 

 

<프란시스 하>의 달리기 장면은 분명히 <나쁜 피>를 오마쥬한 장면이다. 도시를 자유롭게 달리는 젊은 사람과 갑자기 끊어지는 장면.

 

그런데 <프란시스 하>의 달리기는 어딘가 답답한 면이 있다. 그건 아마 프란시스 하가 자유와는 거리가 먼 상황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무직이고, 친구 관계도 소원해졌고, 애인과도 헤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프란시스는 주인공답게 밝게 화면을 누비고 다니지만, 흑백 화면과 뉴욕의 복잡한 도심 속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다.

 

<프란시스 하>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인정하고, 자신과 현실의 한계에 어느 정도 타협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그런 영화의 주제를 너무나도 잘 대표하는 장면이다.

 

 

 

현실에 가로막힌 달리기


 

 

 

수많은 모던 러브 오마쥬 중에 가장 최근 것이면서, 가장 세련된 오마쥬라고 생각되는 장면이다.

 

<나쁜 피> 속 달리기 장면에서는 알렉스 개인의 감정에 집중하고 있다면, <스윙 키즈>의 오마쥬 장면에서는 두 청춘이 마치 서로를 향해 달리는 것처럼 화면을 연결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창조해냈다.

 

게다가 각 청춘이 이념이라는 사회와 시대의 거대한 담론으로 인해 춤과 마음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고 이를 달리기로 돌파하는 장면은 영화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시퀀스 마지막에 무책임하게 끊어지는 음악과 춤으로 관객은 현실을 깨닫게 된다. 사회적 상황에 가로막힌 청춘의 달리기.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달리기


 

 

 

<트레인스포팅>은 마약 중독자들이 청춘을 낭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주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무언가를 피해 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청춘을 낭비하는 청춘. 매 순간의 선택과 그에 따르는 결과를 회피하기 위해 달리는 청춘.

 

 

 

서로를 향해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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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리쉬 피자>의 달리기 장면은 조금 특별하다. 개리와 알라나는 다른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매력적이지도 않고 그저 평범하기만 하다. 이들은 영화의 마지막에 크게 무언갈 이루지도 않는다. 그저 다른 평범한 사람들같이 평범하게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이들이 따로따로 달리는 장면을 단순히 이어붙이기만 해도 마법이 시작된다. 그 긴 러닝타임 내내 헤매던 이들은 서로를 향해 달리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뿐만 아니라 그 모습을 보던 관객도 말이다.

 

가장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활용한 달리기 장면이지 않을까 싶다.

 

 

[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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