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여행 한 번 가자 [사람]

글 입력 2023.01.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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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여행.jpg

 

 

아, x랄하지 마 진짜. 나는 혐오한다는 듯한 눈빛으로 짜증스럽게 M을 쳐다보며 말했다. 취기가 올라 턱을 괴고 있던 그녀는 내 얼굴도 보기 싫었던 건지 앞에 앉은 H만 보고 있었다. 정작 중간에 낀 H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순 없으니, 그 말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냥 그만 얘기해. 나는 짐을 모조리 가방에 넣으며 자리를 뜨는 시늉을 했다. 패딩 지퍼를 지익 올렸다. 지퍼를 올리는 동안 H가 나를 적극적으로 막아 앉혀주길 바랐지만, 그 녀석은 한두 번 예의 상 말리고는 말았다.

 

나의 모진 말에 스스로 찔린 나는 밖으로 떠밀려 나왔다. 스무 살이 넘어서는 거의 손절하다시피 지내다가 6년여 만에 만난 M과 나였다. 얼마간 잘 지내나 싶었는데, 또 파국이구나. 이제 우리 관계는 진짜 끝이려나. 여러 생각이 머리에 들어찬 것도 잠시 이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싶어졌다. 누군가와의 관계 때문에 골머리 썩는 일은 가끔씩 퍽 성가시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오자 흥분해서 오른 뺨의 열이 차가운 겨울밤 공기에 화악 식었다. 에이, 모르겠다. 마냥 후련했다. 어찌 됐던 M에게 지랄하지 말라며 욕까지 한 ‘못된 친구 년’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상황에서 벗어난 것에 오묘한 해방감을 느끼며, 나는 대로변으로 향했다. 택시를 잡아 올라탔다. 지갑을 찾으려 가방에 손을 넣어 뒤적거리는 참에 차갑고 각진 것이 손에 닿았다. M의 휴대폰이었다. 술기운에 눈이 풀려, 몇 번 잔 남자에게 카톡 할까 말까 묻는 M을 막겠다고 내 가방에 넣어둔 것이었다. 망설이다 H에게 전화를 걸어 멋쩍게 말했다. 야, 나 얘 폰 갖구 왔다. 다시 갈게.

 

결국 그 술집 안을 다시 들어섰다. 주변 사람들은 무관심했다만, 격양되어 자리를 박차고 나간 내가 도로 일행에게 걸어가는 게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성큼 들어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슥 놓고 M을 봤다. 그녀는 손가락을 머리카락 사이에 엉긴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꼴 같지 않았다. 나도 기분 나빴는데, 지가 울면 나만 나쁜 년이 되는 거 아닌가. M 앞에 가만스레 앉아있던 H는 일단 풀자며 나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이번엔 알겠다는 듯 나도 앉았다.

 

우리 셋은 M의 전 연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M의 전 연애는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모종의 문제가 있었고, 나는 이런저런 해결 방안이 있지 않았겠냐며, 그런 시도는 왜 하지 않았느냐고 M에게 물었다. 그냥 고개만 끄덕거리면 될 일이었다. 그녀도 그것을 바랐을 터였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그녀의 전 연애에 대해 납득할 어떤 이유도 없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이미 마모된 그녀의 전 연애에 나는 객쩍은 질문만을 던졌던 것이다. 이게 화근이었다.

 

그래서 너는 그게 다 내 잘못이라는 거야? 몇 번의 질의응답이 오가는 중 M이 눈을 크게 뜨고 언성을 높여 나에게 물었다. 아니었다. 당연히 아니었다. 억울한 감정이 앞섰다. 물어도 못 봐? 네가 그 사람 사귀는 동안 우리가 연락을 잘 안 했으니, 나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잖아. 모르니까 물어본 거야. 친구의 사연도 위무 못하는 편협한 인간이 된 것 같은 겸연쩍음에 나도 질세라 언성을 높였다. 서로 소홀했던 6년을 핑계로 나의 부박한 질문을 상쇄해 보려는 시도였다. 

 

안타깝게 그 시도는 잘 들어먹히지 않았고, M은 내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며 이 싸움을 나의 탓으로 돌렸다. 화가 났다. 그래서 나도 그녀에게 지랄하지 말라며 응수한 거였다. 사실 잊고 싶은 다툼이라 어떤 대화가 오가다 싸움이 번졌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나와 M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를 힐난했고, 그것에 분개했으며, 나는 그 찝찌름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회피하려 밖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술집으로 돌아간 내가 자리에 앉자, M이 입을 열었다. 나 이런 얘기 다른 친구들한테는 잘 못해. 대학 친구들은 날 이상하게 볼 것 같고. 그래도 너희는 날 이해할 거라고 생각해서 말한 건데- 그녀의 문장이 울음에 점점 축축해지더니 이내 끊어졌다. 자존심이 센 M이 우는 걸 내 눈앞에서 본 적은 거의 없다. 아니, 정말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중학생 때부터 자존심 때문에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던 애가 바로 얘였으니까.

 

몸을 앞으로 쏟아 테이블에 의지한 채 고개를 숙이고 울던 그녀의 오른쪽 뒷 날갯죽지를 검지로 쿡 찔렀다. 야, 미안하다. 다른 어떤 말보다, 너희는 날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말이 매캐한 연기처럼 뒷골을 지나 코끝까지 알싸하게 맴돌았다. 눈물이 났다.

 

M의 말이 맞았다. 나는 그녀를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다. M이 자신의 속상함을 호소하며 우는 순간조차, 나는 궁핍한 내 성품이 한탄스러워 눈물이 났다. 그녀의 딱한 사정은 내 속으로 침윤하지도 못한 채 거죽에서 금세 휘발되어 날아갔다. 내 속에 흡수되어 텁텁한 불편을 남긴 것이 그저 ‘나의 부족한 인간 됨을 마주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스스로가 야속했다.

 

서운함에 우는 친구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오로지 자신의 결점이 슬퍼 눈물 흘리는 사람이 나다. 스스로를 고발하는 글을 쓰고, 이기적인 성정을 고쳐보려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가짐을 학습해 보려 아무리 애를 써도 끝내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 나인 거다. 어쩌면 나는 그녀를 포함한 타인을 평생 이해하지 못한 채, 내 협소한 궤도만을 맴돌지도 모른다는 절망스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푸하하하. M의 웃음소리가 중력을 잃고 헤매던 나를 깨웠다. 나는 상념에서 빠져나와 그녀와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자각했다. M은 눈물을 머금은 채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야, 뭐야. 넌 왜 울어. 그제야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물었다. 나는 거듭 사과했다. 말은 안 했지만 잠시 나에게 몰두하여 딴 생각을 한 것이 미안해서였다. 그런 내 생각을 알 리가 없는 그녀도 내게 사과했다. 그녀가 어떤 이유로 나에게 사과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이해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해 상대에게 일러주며 새삼스레 얼싸안고 울었다.

 

그날의 다툼은 그렇게 싱겁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게 곧 오랜 시간 퇴적된 우리 사이의 몰이해마저 완벽히 해결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학창 시절, 나는 야자를 째는 쪽이었고, M은 야자를 짼 적이 없었다. 나는 선생님들한테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 M은 선생님들에게 예쁨 받는 학생이었다. 나는 직함을 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다면, M은 직함을 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는 애였다. 14년간 친구라 일컬었지만 우리는 너무 달랐다. 중학생 때부터 하도 자주 싸우니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애저녁에 포기하고, 하루가 지나기 전에만 사과하자고 했던 게 이번 일로 얼핏 기억났다.

 

어릴 때부터 그래왔던 거다. 이해하지 못해 실망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웃고. 이 굴레의 무한 반복. 그러다 말로 내뱉기도 쪼잔한 서운함이 쌓여 6년간 연락을 단절했지만 무슨 오기인건지 우리는 기어이 다시 만나고 있다. 둘이 만나서 하는 짓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의 사소한 지점에 크게 감동해 울먹거리고, 또 그렇게 오바하는 서로가 웃겨서 웃고, 각자의 안타까운 연애사를 들어주며 경험도 많이 없는 녀석들끼리 조언이랍시고 핀잔을 주고, 어떻게 한번 웃겨볼까 시답지 않은 장난을 치고. 

 

저마다의 사정으로 울먹거리고 낄낄대는, 이해할 수 없는 서로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 주는 것. 우리의 우정은 그것으로 충분한 걸지도 모르겠다. 세상 둘도 없는 우정은 아닐지언정 그런 추억을 공유한 그녀가 내 삶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조금 허전할 것 같다.

 

M 과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면, 인색한 내 성품을 지르잡는 것보다 다른 방안을 마련하는 게 아무래도 빠르겠다는 판단이 들어서였을까. 다툼이 있고 며칠 후, 나는 그녀에게 단둘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번 여행은 옷을 비슷하게 맞춰 입는 ‘시밀러 룩’을 도전해 보자고 했다. 정말이지 간지럽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가 그렇게 다르다면 같은 장소, 같은 경험, 같은 옷 따위의 공통된 추억으로라도 용케 접점을 만들어보는 수밖에.

 

M은 날이 풀린 3월 즈음이 좋을 것 같다며, 그날은 싸우지 말자는 당부를 덧붙였다. 아차차… 그날도 싸울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구나. 혹시 모를 불상사는 대비하는 게 맞다. 우습게도 그녀의 마지막 당부에 나는 싸우지 않는 최선책보다, 이번처럼 싸우다가도 난데없는 웃음으로 바보같이 화해하는 차선책을 먼저 떠올렸다.

 

 

 

아트인사이트_권기선.jpg

 

 

[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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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김채영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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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시나몬슈가
    • 2023.01.05 1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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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영란감사합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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