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참사에 맞서 달리다 - 영화 '패닉 런'

글 입력 2022.12.2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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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닉 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연재해나 사회적 참사 앞에서 개인은 무력한 존재로 그려지곤 한다. 나와 주변 사람들의 안위를 그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상황, 인간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이기적으로 돌변하는 존재로 그려지곤 한다. 그런 모습을 과장해서 서스펜스를 이끌어내는 작품도 많다. 하지만 그것만이 인간의 모습은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내가 할 일이 있고, 많은 사람이 극한 상황에서도 그 일을 기꺼이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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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닉 런>은 미국의 심각한 사회문제인 학교 총격테러를 배경으로, 사건에 휘말린 아들과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며 우리가 재난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말하고자 한다.


모처럼 회사를 쉬는 날, 학교에 안 가겠다는 아들 노아를 깨워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고 에이미는 조깅을 나선다. 집에서 한참 멀어졌을 때, 갑자기 노아의 학교에서 총격테러가 일어났다는 긴급문자를 받는다. 지금까지 달려온 숲길의 아름다운 풍경이 순식간에 공포영화 속 풍경처럼 변한다. 바람은 스산하고 나무는 지나치게 울창하다.


사건이 일어난 학교 근처 학부모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당장 가야 한다. 하지만 교통통제 상황에 너무 멀리까지 조깅을 온 에이미가 그곳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스마트폰과 두 다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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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격테러 사건이 영화를 이끌어 가지만, 실제 사건이 일어난 학교의 모습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게 이 영화의 특징이다. 현장으로부터 고립된 에이미가 사건 정보를 얻을 곳이라고는 간헐적으로 업데이트되는 뉴스 속보와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밖에 없다. 사건 발생 전 평화롭게 조깅하며 통화했던 사람들이 이제 모두 총격테러 소식을 전해 온다. 말 하나하나가 단서가 된다.


그러나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에이미도 관객도 모자이크처럼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소식을 끼워 맞춰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영화는 정보가 극도로 차단된 상태에서 곤란에 빠진 에이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긴장감을 더하고, 사건을 직접 보여주는 것보다 오히려 관객을 더 집중하게 만든다.


영화는 또한 혼란스럽고 두려워 ‘패닉’ 그 자체인 에이미의 심리를 그가 달리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담는 카메라 워킹으로 전달한다. 카메라는 관객이 계속 스크린을 보고 있기 어려울 만큼 흔들리기도 하고, 초점을 한 군데 맞추지 못한 채 상을 여러 개로 겹쳐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인물의 말이나 표정이 아니더라도 그 마음이 직관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되는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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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노아가 사건의 범인인 게 드러나며 한 차례, 노아는 피해자 중 한 명이며 진범이 따로 있음이 드러나며 또 한 차례 분위기가 변한다. 이야기가 큰 전환점을 맞을 때마다 에이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휴대폰 너머의 사람들이다. 노아 친구의 어머니, 부모님의 단골 카센터 직원, 직장 동료, 911 직원, 형사, 그리고 통화하는 상대는 아니지만 후반부에 타게 된 택시 기사까지.


노아 친구의 어머니는 에이미를 안심시키고 정확히 어디로 와야 하는지 알려준다. 단골 카센터 직원은 자신 역시 테러가 일어난 학교와 가까이에 있는 상황인데도 노아의 차가 학교 주차장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 에이미가 노아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돕는다. 911 직원은 신고가 밀려드는 상황에서도 처음에 통화했던 에이미를 잊지 않고 패닉에 빠진 그를 보듬는다. 결정적으로 택시 기사는 에이미가 형사와의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휴대폰이 하나 더 필요한 상황에서 선뜻 자신의 것을 내민다.


이들이라고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갑작스러워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에이미의 절박한 목소리에 기꺼이 그를 돕고자 한다. 망설이고 주저하면서도 전화를 매몰차게 끊는 대신 자신이 알려줄 수 있는 것을 전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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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면 대부분에서 에이미는 홀로 달린다. 광활한 숲을 혼자 달려 나가는 장면의 연속은 우리에게 거대한 재난 앞에서 위기를 헤쳐 나가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몫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에이미가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려 마침내 노아가 있는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달리면서 도움받았던 여러 사람의 목소리 덕분이다. 에이미는 혼자였지만 동시에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행히 에이미는 건강하게 살아 있는 노아와 재회한다. 그리고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을 맞는다. 시놉시스를 보고 처음에는 재난 상황 속 가족애와 어머니의 힘에 대한 영화일 거라고 예상했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평범한 한 사람이 한 사람이 재난 상황에 맞서는 태도에 대해 말하는 영화라고 느꼈다. 에이미와 노아가 재회할 수 있었던 건 ‘어머니의 힘’ 덕분만은 아니다. 그것은 마을 사람 모두가 침착하게 대처하고 자신의 몫을 다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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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모자에게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사건의 이름 모를 희생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으리라. 노아는 살아 돌아왔지만 누군가는 끝내 죽고 말았다. 영화는 이대로 침묵할 수 없다며 이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100일 영상 챌린지를 하는 노아의 영상으로 마무리된다. 공익 광고 같아 다소 당황스러웠던 이 엔딩은 실제 미국에서 올 한 해에만 총기사고로 미성년자 6천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것을 알고 나면 조금 더 진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패닉 런>은 홍보 문구처럼 ‘리얼 타임 서스펜스’이기도 하지만 재난 상황 속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묻는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 해 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재난이 떠오른다. 우리는 그 앞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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