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슈베르트, 겨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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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 손이 떨어져나갈 것 같은 추위를 뚫고 들어간 공연장. 그 내부는 따뜻했지만 극을 관람하는 내내 마음 한켠이 겨울보다 더 시리게 아려온다.
차가운 겨울보다 더 쓸쓸했던, 음악가의 이야기.
<슈베르트의 겨울 여행>
공연의 시작은 감미로운 연주가 장식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두 악기만으로 이미 공연장은 슈베르트가 살아가던 시대에 와있는 것만 같았다.
특히 슈베르트의 음악 중 가장 저명하게 알려진 '마왕'이라는 곡을 기대하고 갔었는데, 그 기대가 아깝지 않을만큼 멋있는 무대를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가사에서 처럼 마차를 타고 급박하게 달리는 아버지가 된 것 같은 조급하고 두려운 기분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눈치챘겠지만 나는 본래 클래식과 오케스트라를 좋아하는 사람다. 때문에 공연을 즐기는데에 큰 무리가 없었지만, 혹여나 같이 간 지인이 클래식을 지루하게 느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객석 뒤에서 슈베르트가 걸어나오기 시작할 때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바로 코 앞에서 관객과 눈을 마주치며 이뤄내는 연기는 마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 실제하는 슈베르트를 보고있는 것만 같았다.
처음 몇번 눈을 마주쳤을 때는 부담스러움에 눈을 먼저 피했었다. 하지만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부터는 극에 푹 빠져버려 도무지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슈베르트의 눈에 담긴 순수한 열정이 마음 깊게 박혔고, 이 때문에 이후에 벌어질 슬픈 현실들이 더 아프게 다가온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왜 클래식이라는 장르를 어려워할까? 가장 큰 이유는 '지루함' 때문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클래식은 흔히 듣는 대중가요보다 몇 배는 길고, 가사가 없어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공감하기가 힘들다.
더해 클래식 공연은 그 지루한 노래가 몇개씩 특별한 설명 없이 연달아 나오곤 한다. 조용하고 정숙한 공연장의 분위기와 가사 하나 없이 악기들로만 연주되는 곡. 이러한 특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재미없고 지루한 장르라고 여기지 않나 싶다.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선율의 아름다움을 사랑할지언정 그 뒤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알거나 사랑하지는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음악 속에 들어있는 배경과 이야기를 듣고 보면 그 노래가 더 깊게 와닿는 것은 물론, 전달하고 싶어하는 메세지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기쁨 슬픔 따위의 감정들이 더 강렬하게 와닿는 것을 몇번 경험했다.
하지만 이런 대단한 것을 느끼고도 뒷 이야기를 직접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찾아내는 것이 어려웠기도 했고, 대부분의 자료가 줄글의 형태였기 때문에 긴 글에 정을 붙이고 누군가의 인생을 읽는 것은 지루할 수 밖에 없었다.
[슈베르트, 겨울여행]은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공연이다. 아름다운 슈베르트의 음악, 음악에 담겨있는 배경과 사황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던지는 그의 형이자 공연의 나레이터. 마지막으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설명을 생동감있게 해주는 슈베르트의 독백 연기까지. 이 셋이 완벽한 삼각형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1시간 반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극에만 집중해서 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특히, 눈 안에 열정과 꿈을 가득 담고 연기하는 순수한 슈베르트의 모습을 볼 때는 정말 그 장소, 그 자리에 와있는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능력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적절한 조명과 그 시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다양한 소품들. 연주자들의 열정적인 연주와 매 곡 마다 제목, 한국어로 번역된 가사와 같은 정보를 던져주는 친절함까지 더해진 공연은 관객을 슈베르트의 세계로 안내하는 하나의 타임머신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클래식이 지루하다는 편견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 했던 사람도, 아름다운 음악 그 뒤에 있던 배경 이야기를 알고 싶었지만 줄글을 읽는 건 힘들었던 사람도 모두 즐겁고 몰입감 있게 슈베르트의 음악과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조은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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