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연을 통해 과거를 마주하는 순간, 상상을 통해 일으키는 아름다운 삶의 기적 [영화]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우연과 상상>
글 입력 2022.12.2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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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꽤 많은 일들은 우연적으로 발생한다. 필연적인 인과 관계가 아닌 우연이 작용하며 우리는 일상 속에서 예기치 못한 일을 맞닥뜨리게 된다.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삶에 서로가 들어올 때 우연이 개입하는 경우가 파다하다. 사람들은 마법 같은 우연으로 타인을 만나 인연을 맺고 관계를 이어가곤 한다.


우리는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 우연적인 사건 혹은 관계에 어떻게 대처하게 되는가. 의도하지 않았던 일에는 설렘, 불확실함, 불안감 등 여러 생각과 감정이 따라붙기 마련이기에 저마다 우연에 대처하는 자세는 매우 다르다.


영화 <우연과 상상> 속의 인물들은 삶에서 우연의 일치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에 ‘상상’이라는 선택으로 대응한다. 이 영화는 우연히 만나게 된 인연을 통해 마주하게 된 삶의 비극 혹은 희극 같은 순간을 상상으로 타개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평범한 일상에 우연히 찾아온 마법보다 더 특별한 삶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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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화 ‘우연과 상상’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연과 상상>은 <드라이브 마이 카>, <아사코> 등의 전작으로 각광받고 있는 일본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옴니버스 형식 영화다. 1부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2부 ‘문은 열어둔 채로’, 3부 ‘다시 한번’. 이렇게 총 세 개의 단편 에피소드가 우연과 상상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묶인 채 등장한다.


세 단편의 내용은 각자로부터 자유롭다. 다수의 옴니버스 형식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각 에피소드가 서로 세계관과 배경을 공유하고 있거나 등장인물들 중 공통된 이가 존재하지만, 이 영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편은 유기적으로 엮여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영어 원제(Wheel of Fortune and Fantasy)에서 알 수 있듯이 우연과 상상이 마치 수레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비추며, 평범한 순간들에 돌연히 찾아온 불확실한 우연이 상상만 해왔던 특별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마법 같은 존재임을 그린다.


세 에피소드 중 특히 마음 깊이 자리하게 된 1부와 3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부의 기막힌 우연으로 시작해 3부의 따뜻한 연대로 막을 내린 이 영화가 그리는 마법보다 더 특별한 삶의 순간들을 소개한다.

 

 

 

우연에 상상으로 대처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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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은 세 남녀의 이야기다. ‘메이코’는 친구 ‘츠구미’에게 새로운 남자를 만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서로 관심을 갖고 알아가는 단계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던 중, 우연히도 그 남자가 자신의 전 애인이었던 ‘카즈’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카즈가 전 애인이 바람이 나서 입은 상처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듣고, 메이코는 2년 만에 그를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 이후 또 우연히도 츠구미와 있던 카페에서 카즈를 다시 만나게 된 메이코는 그들의 앞에서 두 사람이 만난 건 자신을 위한 마법 같은 우연이었다고 말하며 모든 것을 실토하는 상상을 펼친다.


연속적으로 찾아온 우연은 메이코가 상상만으로 그려오던 기적 같은 일을 데려왔다. 카즈와의 대화 그리고 재회. 메이코는 대화를 통해 자신과 카즈 사이의 관계가 지금은 마법보다 더 불확실할지라도 과거에는 무엇보다 깊었으며 여전히 서로에 대한 감정이 잔존한다고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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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의 상상은 그 확신의 결과물이다. 카즈를 마주 보고 그만을 깊이 원한다고 고백하는 상상은 메이코가 떠올리던 마법 같은 일이다. 그러나 상상 속에서의 카즈는 메이코의 고백에 응하지 않고 화난 듯 자리를 뜨는 츠구미를 쫓아 나간다.


상상 속 카즈의 행동이 말하는 것은 메이코의 깨달음이자 단념의 선택이다. 그녀는 선택에 따르는 결과에 대한 상상을 통해 자신이 순간에 품고 있는 감정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고, 현실에서 관계의 맺음을 결심하게 된다.


그렇게 메이코는 우연이 불러온 일상의 작지만 큰 파동에 상상으로 대응하면서 특별했던 인연을 떠나보낸다. 그녀에게 운명처럼 나타난 우연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이었던 순간들을 흘려보내고 상실을 마땅히 받아들이며, 새로운 인연에 닿을 준비를 하게 만들어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우연의 일치, 아름다운 연대, 그리고 비로소 상처의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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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다시 한번’은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여자의 이야기다. 20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회를 위해 고향을 찾은 ‘나츠코’는 지하철역에서 내내 만나고 싶어 하던 동창생 ‘미카’와 우연히 재회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곧 서로가 자신의 동창생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나츠코가 미카로 오해한 이는 ‘아야’였다. 둘은 다녔던 고등학교도 다르고, 심지어는 상대의 이름조차도 모르는 사이였던 것.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기에 둘 다 서로를 자신의 동창생이라고 착각한 우연의 일치가 발생할 수 있었던 듯하다.


둘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한 우연에 대응이라도 하듯, 짧은 대화로 서로를 알아간다. 그러다 서로가 착각한 상대에 대한 그리움이 깊고 간절하다는 것을 느끼고, 이내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던 상대가 되어주는 역할극을 하기에 이른다. 각자가 만나지 못한 상대에게 전하지 못했던 말을 상상으로 뱉어내는 과정을 통해 마음 깊이 있던 상처와 진심을 꺼내본다.


나츠코는 학창 시절부터 미카를 사랑했지만, 동성인 자신이 사랑을 말하는 것이 그녀에게 상처가 될까 봐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진심을 전하지 못했다. ‘나와 함께 하면 네 인생이 복잡해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날 선택해 줬으면 좋겠다’고 수도 없이 말하고 싶었으나, 고통을 피하기 위해 꼭 해야 했던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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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코가 20년이 지난 후에야 진심을 전하려고 한 이유는 뒤늦게나마 고통이 인생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작 두려움이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인생에 꼭 필요한 과정 중 하나인 진심과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뱉어냄으로써, 과거를 마주하고 마음 한구석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냈다.


아야는 과거에 동경했던 동창 ‘노조미’에게 진심을 전한다. 학창 시절과 달리 가슴속에 불타는 열정이 모두 사라지고 흐르는 시간이 서서히 자신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야는 자신을 괴롭히는 현재의 권태로움 대신 과거에 있었던 꿈과 열망이 그리운 듯했다.


노조미가 된 나츠코는 그런 아야에게 상상을 통해 응원을 전한다. 과거의 아야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능력이 있었고 모두가 동경하는 존재였다고. 빛났던 네 존재 덕분에 나도 힘을 얻었다고. 그러니 당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절대 잊지 말고 다시 일어나서 살아가라고 위로를 말한다.


둘은 그렇게 과거를 다시 한번 마주하며 서로 응원과 위로를 건네받았다. 우연으로 시작된 만남과 관계가 불러온 실로 마법 같은 인생의 순간이 아닐까. 비록 상상이지만 상대에게 진심을 꺼내 보임으로써 상처를 치유한 두 여자의 아름다운 연대가 마음 깊이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삶에 피어나는 기적 같은 우연과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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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대부분의 순간이 평범하지만, 그 평범함으로 점철된 순간들 속 우연 같은 기적이 종종 찾아온다. 헤어진 연인과 두 번이나 우연히 마주침으로써 상상을 통해 마침내 상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메이코, 그리고 서로를 우연히 동창으로 착각한 덕분에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나츠코와 아야의 삶처럼 말이다.


우연은 예상치 못한 일이기에 삶을 변화시키는 건 결국 우연일지도 모른다. 사소하고 평범한 삶에 찾아온 특별한 우연은 불확실에 대처하는 경험과 힘을 선물함으로써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우연에 대한 결과가 바라던 결말이든, 그렇지 않든 우연은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매번 같은 일상 속, 인과율을 깨고 뜻하지 않게 일어난 사건과 관계들이 인생에 길이 남는 특별한 순간으로 자리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


예상치 못한 일이 두려워 우연을 최대한 피하려고 항상 가던 길로만 가려 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속는 셈 치고 우연의 불확실함을 믿어보려고 한다. 때때로 운명처럼 찾아오는 우연이 나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 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려 한다. <우연과 상상>은 삶에 피어나는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을 기대하게 만들어 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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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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