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갓생살기 실패담

실패의 씨앗 모으기
글 입력 2022.12.2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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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발표한 2022년을 주도한 키워드는 바로 “갓생”이다. 갓생은 신을 뜻하는 ‘God’과 인생을 뜻하는 생의 합성어다. 신 같은 인생이라니. 무신론이 퍼져서 인간이 하나님, 부처님의 품에서 벗어나 스스로 신이 되기로 결심한 것일까? 저 머나먼 존재가 되기 위해 사람들은 미라클모닝을 하고 퇴근 후에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오운완(오늘운동완료의 줄임말)’을 인증한다.

 

 


나도 갓생을 꿈꾸던 사람이다.


 

그래. 나도 ‘신 같은 인생을 살아보겠어!’ 허공을 향해 다짐했다. 다짐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 (많은 구루는 다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했다.) 오전 6시 알람을 맞추고, 불안해서 오전 5시 55분과 오전 6시 5분 알람을 더 맞췄다. 오전 6시 10분을 하나 더 추가할까 고민했지만 그만뒀다. 그 정도로 나에 대한 신뢰가 빈약하지 않으니까.


미라클모닝의 루틴은 사람마다 다르다. 요가를 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공부를 하는 사람. 무엇이든 몇 분이든 자기가 원하는 행동을 하면 된다. 나의 계획은 이랬다. 오전 6시에 일어나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모닝 페이지를 쓰고 명상하기. 월요일은 호기롭게 시작하고 성공했다. 하지만 일주일, 한 달이 지나면서 특이점이 나타났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가 다시 잤다. 모닝이지만 모닝이 아닌 요령을 피웠다 개선하기 위해 갸륵한 노력을 하게 되는데... 


 

첫 번째 방법. 인증하기 – 기상, 취침 스터디

아침 기상 인증은 물론 취침 인증까지 했다. 앱 <포커스 타이머>로 자기 전에 핸드폰을 뒤집어 두고 핸드폰 사용 시간을 인증하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나는 핸드폰을 뒤집고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봤다.


두 번째 방법, 랜선으로 만나기 – 줌으로 경신스

친구랑 줌으로 아침에 만나 경제신문 스크랩을 했다. (50일까지 유지하다 조용한 잠수에 빠져 있다.) 벌금을 내고 나름의 규칙을 만들었다. 하지만 슬그머니 잠수를 타고 지금까지 지속되지 못했다.


세 번째 방법, 밖으로 나가기 – 새벽 수영

최후의 수단으로 새벽 6시 수영을 신청했다. 당연히 내가 5시 30분에 일어나야 하니까 일찍 잘 줄 알았다. 하지만 새벽 5시쯤 잠을 자고 20분 만에 일어났다. 핑계를 대보자면 수영은 일련의 과정이 너무 길었다. 가지 않아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수준으로 수영강습비는 저렴했다. 나는 자주 침대 속에서 머무르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3개월의 간헐적 도전 덕분에 물에 못 뜨는 사람에서 물에 뜨는 사람으로 진화했다.

 

 

결국 나는 모든 방법을 철저하게 실패했다.


갓생, 신 같은 인생은 애초에 이룰 수 없는 말 아닌가? 이루지 못할 만큼 큰 목표를 가져야 근처라도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꿈이 커야 파편도 크니까. 하지만 파편으로 쪼개질 때 내가 받는 상처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의 비수로 나를 찌른다.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미라클모닝 #갓생의 팔로우를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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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갓생을 살아야 하지?


 

갓생 행동보다 갓생 이유를 고민하지 않았다. ‘남들이 다 하길래 나도 해야 할 것 같아서’가 이유였다. 백수인 나에게 갓생을 살면 인생이 변화할 것 같다는 환상 한 스푼도 필요했다.


보통 사람이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이유는 직장에서 빼앗긴 자기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퇴근 후 자기만을 위한 온전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사람에 치이는 퇴근길에서 집에서 돌아오면 저녁 먹고 약간의 운동이나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다 보면 어느새 잠잘 시간이 온다. 오늘 또 하루가 흘러갔고 내일 또 출근하기 위해 자야 한다.


그에 비해 백수인 나는 눈을 뜨자마자 모두 자기만의 시간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원하는 만큼 침대에서 뒹굴뒹굴할 수 있고,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고, 원하는 밥을 먹을 수 있다. 백수의 장점은 시간이 많다는 것이고 단점은 돈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닫자마자 미라클 모닝을 때려치웠다.

 

 


이렇게 나에게 갓생 중에 생(生)만 남았다.


 

실패했지만 썩 나쁘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히려 좋다. 도전은 실패든 성공이든 잔상을 남긴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제대로 깨달았다. 일찍 일어나는 걸 힘들어하지만 재미있고 약간의 생산성만 있다면 꾸준히 하는 사람이다.


아침에 썼던 모닝 페이지는 226일째 꾸준히 쓰고 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5번 정도 빼먹었다. 가끔 애프터눈 페이지나 나이트 페이지로 변할 때도 있다. 어떤 이유로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날에도 모닝 페이지는 썼다. 어디에도 할 수 없는 말을 노트에 한가득 채우면 기분이 나아졌다. 내가 나를 보듬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다.


이 글은 거대한 정신승리다. 갓생에 실패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의미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처절한 몸부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것도 맞다.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했다. 우리는 성공을 과대포장하고 실패를 과소포장한다. 실패는 어딜 내놓아도 부끄럽고 숨기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못난 모습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감정이입을 하면서 보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 속 주인공 스토리는 살면서 승승장구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나 좌절 속에서도 도전하는 사람이다. 해리가 볼드모트와 처음부터 대적할 수 있었을까? 프로도가 절대 반지를 찾을 수 있었을까? 영화는 2시간 만에 끝나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지겹게 하루를 반복하고 살아야 한다. 그 속에 당연히 성공과 실패, 아무것도 아닌 날이 뒤죽박죽 섞였다.


언젠가 성공될, 혹은 성공되지 않더라도 지금의 실패를 정성스럽게 기록한다. 실패는 하나의 씨앗이기도 하니까. 2023년에도 씨앗을 여러 개를 모으고, 어떤 씨앗은 움트는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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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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