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거짓말쟁이의 편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나의 첫 번째 친구에게
글 입력 2022.12.2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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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태어날 때 거짓말하며 태어났습니다.

 

가지고 태어나지 않으면 가지질 못할 것이 부러웠던 걸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길 바라는 걸 들어서일까요? 저는 누구보다 가진 척 행동을 했습니다. 가족들의 기대가 의사의 한 마디의 한순간에 실망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태어날 적이라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저였으니까요.

 

공장지대 근처의 주택가인 동네에는 아이들이 적었습니다. 언니만이 유일한 또래 친구였지만 그마저도 유치원에 가버리고 나면 저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가족은 누구보다 많았지만, 친구는 없었습니다. 제 세상은 오직 집과 티브이가 다였습니다. 그런 저를 데리고 나간 것이 당신이었습니다. 슈퍼에서 음료 하나 과자 하나를 들려 같이 지하철을 타러 갔습니다. 그저 지하철을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게 다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즐거웠습니다.

 

가끔은 오래된 유원지에 가기도 하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멀리 나가 별걸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좋았습니다. 그저 당신과 단둘이 나온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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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래서 당신이 저에게 만족하신 줄 알았습니다. 가족 중에 날 제일 좋아해 주는 것 같아 그 애정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저는 그 애정에 보답하기 위해 항상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원했나 봅니다. 동생이 생겼습니다. 오랜 기다림 덕이었을까요? 동생은 언니와 제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기다렸는지 동생이 태어나자 당신의 관심은 모두 동생에게로 가버렸습니다.

 

당신이 가진 좋은 것들을 모두 동생에게 주려 했고 어느 상황에서든 동생을 생각하고 동생을 챙기라 하셨습니다.

 

 

당신은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될 수 없었나 봅니다.

 

다른 친척들은 내가 당신을 챙기는 걸 보고 모두 나를 가장 좋아할 거로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최고가 아니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끔은 감정이 상할 때도 있고 속상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의 부정적인 감정은 당신을 향한 애정을 깎기에는 한없이 작았습니다.

 

저의 정성이 닿았을까요. 당신과의 추억 속에서 당신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저에게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같이 있으면 항상 웃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나날이 나이를 먹어갔지만, 당신께 어른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 앞에서는 항상 아이처럼 행동하고 말했습니다. 항상 아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다리가 불편해져도 밤늦게 마치는 저를 데리러 오셨습니다. 때로는 지하철역으로 때로는 학원까지. 다른 형제를 데리러 가시지 않았지만 제가 늦을 때면 매번 데리러 오셨습니다. 3분이면 가는 길을 30분이 되어 도착해도 그저 좋았습니다.

 

그 짧은 길을 함께 걷는 것이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소중한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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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은 먼 길을 떠나갔습니다.

 

당신을 보내드릴 때 많은 가족들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붙잡고 다들 말씀하셨습니다. 이 중에 당신과 지낸 시간이 가장 길었던 네가 가장 슬프겠다고, 잘 추스르라고. 물론 슬펐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저는 빠르게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당신이 마지막 1년을 병원에서 보내면서 면회를 갈 때마다 저를 알아보지 못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조금씩 마음을 정리했나 봅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애정을 모두 꺼내 당신께 드렸으니 후회하지 않습니다. 후회하는 게 있다면 빨리 면허를 따 다리가 불편해진 당신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녀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저는 사실 눈이 많이 나빠져 이제는 안경이 없으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안경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당신께 갈 때면 안경을 벗고 가기도 했습니다. 사실 공부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이야기가 좋아 책을 읽어서 공부를 하는 것 처럼 보였던 것이지 사실 소설책이었습니다.

 

저는 공부보다 다른 것들을 더 좋아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동생이 미워보여 투닥거리기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있고 싶어 그럴 듯하게 행동 했었습니다. 저는 당신께 한 거짓말이 많습니다. 거짓말쟁이라도 좋습니다. 당신께 좋은 모습으로 남을 수 있다면 언제든 거짓말쟁이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저는 항상 당신을 좋아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제는 원하시는 곳으로 맘껏 걸어 나가시길. 저는 웃는 모습으로 잘 지낼터이니 조심해서 가세요. 항상 감사했습니다. 할아버지.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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