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500원으로 가능한 게 많았던 시절.

글 입력 2022.12.2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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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오랜만’인 순간들을 많이 만났다. ‘오랜만’은 그 시절 나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씁쓸함,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되어 고마움과 반가움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오랜만의 순간들을 만나면, 말랑한 감성에 젖게 된다.


그날의 ‘오랜만’은 홍대거리를 걷고, 밥도 먹고, 버스킹을 본 순간들이었다. 오래전, 홍대거리에서 버스킹을 자주 보면서 마음에 드는 공연이 몇몇 있었다. 그중 하나가 분리수거밴드의 공연이었다.

 

예전처럼 홍대거리에서 그 밴드의 공연을 다시 보게 됐다. 공연을 보는 내내 반가움의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분리수거밴드의 곡들을 찾아서 들었다. 그러다 가사 한 구절이 귀에 꽂혔다.


 

학교 앞에서 팔던 장난감 500원에 가능한 세상들

점점 멀어진 시간만큼 잊혀져가는 그 기억들

 

- 분리수거밴드 ‘아폴로88’ 가사

 

 

그 가사를 들으니 장난감 500원은 아니지만, 500원으로 가능한 것들이 많았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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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정문 앞에 두 곳, 후문 옆에 한 곳 이렇게 총 세 곳의 문방구가 있었다. 우리 모두의 초등학교 앞 문방구가 그랬듯 단순히 학용품만 파는 곳이 아니었다. 아폴로, 꾀돌이, 옥수수 브이콘, 차카니 등 여러 불량식품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쥐포나 쫀디기를 사면 구워서 주고, 종이컵 국물떡볶이, 피카츄돈까스, 떡꼬치 등 다양한 음식도 팔았다. 춥거나 더울 때는 문방구 안에서 친구들을 기다리기도 했다.

 

문방구 주인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힘들어 보이는 아이가 있으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고, 심심해 보이면 말벗이 되어주기도 했다. 불량식품을 파는 주인이었지만, 그것들을 너무 많이 먹는 아이에게는 엄마처럼 걱정하고 잔소리 했다. 초등학교 문방구는 초등학생용 하숙집 같은 곳이었다. 무엇보다 그곳은 500원만 있어도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나는 후문 옆 문방구만 갔었다. 그 문방구 주인분이 가장 따뜻한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의 떡볶이가 참 맛있었다. 떡볶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 문방구 떡볶이는 늘 먹고 싶었다.


밀떡과 어묵, 대파, 떡볶이 국물을 아낌없이 담아주시곤 했다. 그래도 300원짜리는 일반 종이컵에, 500원짜리는 더 길쭉한 종이컵에 담는 만큼 가격에 따라 양의 차이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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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원 하나로 가능한 것이 많은 세상이었지만, 500원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용돈을 받으며 생활했기 때문에 다음 용돈을 받을 때까지 버텨야 했기 때문이다. 6학년으로 올라가고 나서부터는 동생도 챙겨야 해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했다.


서툰 계산법으로 나름 이번에는 좀 여유가 있다고 생각될 때는 500원짜리 떡볶이를 사서 먹곤 했다. 300원짜리 떡볶이를 먹다가 500원짜리 떡볶이를 먹었다는 자체만으로 큰 행복을 느꼈다. 동생에게도 300원짜리 떡볶이만 사주다가 500원짜리 떡볶이를 사줬을 때는 매우 뿌듯했다. 그거 하나로 어깨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


떡볶이뿐만 아니라 평소 궁금했던 새로운 불량식품도 먹을 수 있었다. 500원만 있어도 살 수 있는 불량식품이 많아서 배가 빵빵해지도록 먹을 수 있었다. 500원을 주인에게 내밀 때마다 부자가 된 것 같았다.


500원을 내면 안 좋았던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포기할 때마다 500원 소비로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500원은 물질적인 것 외에도 뿌듯함, 대리만족, 위로, 기분전환 등 많은 것을 가능케 했다.


그 가사를 듣고 되돌아보니 500원짜리로 얻은 행복이었지만, 가치는 500원짜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 잠깐이라도 행복해할 줄 아는 아이였다. 지금도 그런 성향이 남아 있다. 작은 것에 위안을 얻고, 기뻐하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아니다. 그때와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고, 아이와 어른이 느끼는 소확행은 다르다.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때 그 시절의 세상과 내 순수함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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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있을 거야 그런 날, 마냥 걷는 게 좋은 그런 날

왠지 나 맘이 두근거려, 어릴 적 살던 그 동네로

익숙하게 걷던 그 골목에, 반갑게 인사하던 친구들은, 모두 떠나


아무것도 몰라도 아무런 걱정도 없었던, 어린 시절 그때가 그리워

학교 앞에서 팔던 장난감 500원에 가능한 세상들

점점 멀어진 시간만큼 잊혀져가는 그 기억들

 

- 분리수거밴드 ‘아폴로88’ 가사

 

 

문득 크리스마스에는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사실 크리스마스를 핑계 삼아 용기내고 싶었다.


존재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는 크리스마스니까,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해맑게 맘껏 웃고 행복해해도 될 것 같다. 현재의 나의 상황, 나이, 걱정, 근심은 안 보이는 곳에 넣어둔 채 말이다.


작은 것에도 큰 가치를 느끼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에 행복해하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을 오랜만에 꺼내어 22년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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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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