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ature 04. '록산' 당신은 날 무너뜨릴 천사인가요, 구원해 줄 악마인가요?

글 입력 2022.12.2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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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TRO


 

천사와 악마를 생각하면 어떤 형상이 떠오르시나요?


천사라고 하면 순백의, 온화한 표정의, 남성보다는 여성의 느낌이 강하게 들고, 악마라고 하면 어둡고 칙칙하고, 왠지 색상 중에서도 붉은색과 검은색이 잘 떠오르는 것 같아요. 선/악에 대한 생각이 천사/악마에게도 형용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일부 미디어에서는 천사가 또 착하지만은 않게 표현될 때도 있긴 하지만요.


여기, 천사인 듯 천사 아닌 천사 같은 무언가를 사랑해버린 한 남자가 있습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정략결혼을 할 예정이었지만 결국 진실한 사랑을 찾아서 발걸음을 돌린 한 명의 로맨티스트죠. 그런데요, 상대도 과연 같은 마음일까요?


우리가 천사라고 알고 있던 무언가가 사실은 하얀 겉옷을 입은 악마라는 걸 알게 되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요?


한 화를 볼 때마다 아껴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던, 가상의 근현대 유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지 웹툰 <록산>입니다.


 


2. STORY


 

 

격동의 19세기 말, 귀족 셸 가문 남작 부부가 살해되고, 부모의 죽음으로 큰 충격과 실의에 빠진 아들 '막시밀리안'.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날 어머니가 고용한, 신비롭지만 수상한 가정교사 '록산'을 만나는데...


마법을 사용하여 자신을 위협에서 구한 그녀에게 점차 묘한 끌림을 느끼는 막시밀리안.


록산이 불멸자이며, '붉은 가슴'을 지닌 상대에게 영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 점점 더 빠져든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 속에서 집착하는 록산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천사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과 악마성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막시밀리안은 자신이 록산의 운명의 상대인 '붉은 가슴'임을 직감하고 그녀에게 향하는 마음을 멈추지 못하는데...!

 

 

막시밀리안(막스)에게는 여동생이자 장녀인 '그레타', 그 아래로 동생들이 셋 더 있습니다. 부모님이 불미스러운 사고로 모두 돌아가시고, 자신은 가문을 이끌어야 될 위치가 되었기에 어린 동생들을 돌봐줄 가정교사를 집으로 맞이하게 돼요. 백인들 사이에서 확연히 튀는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남자보다도 더 큰 몸체를 가지고 있는 '록산'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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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 년은 유행이 지난 것 같은 드레스,

별빛이 흐르는 듯한 옷감,

다른 여자들보다 한 뼘은 더 큰 키,

새카만 머리칼에 자수정을 박아 놓은 것 같은 눈동자,

그 이상한 억양은 또 어떻고? 그건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꼭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록산은 참 신비로운 사람입니다. 유행도 지났고 피부색과 정반대의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막스의 자택을 방문해요. 처음엔 좀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 들지만, 가정교사답게 동생들도 잘 가르치고, 그레타에게도 좋은 조언을 해줍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손짓 한 번으로 도시 전체를 정전시키거나, 흉기를 든 괴한을 손쉽게 제압하거나,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도 해요. 막스는 그런 록산에게 점차 매료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막스는 하트르만 공작가의 영애인 '요안나'와 약혼을 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록산을 두고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카르텐‘ 후작이 막스와 요안나 사이를 방해하면서 막스의 인생길이 가파르게 변합니다.


막스는 과연 현실에 안주할까요, 이상을 좇을까요?



 

3. POINT


 

저는 록산을 보면서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우리는 보편적으로 여자가 남자에게 안기고, 남자가 여자를 (신체 위협으로부터) 구해주고 구원해주는 서사들을 많이 접했을 거예요. 그런데 록산은 반대예요. 록산이 막스를 안고, 록산이 막스를 구해줍니다. 록산의 행동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걸크러쉬랑은 조금 다른 느낌을 줘요. 남성들이 자신보다 약한 여성을 구해주면서 어떤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들었는데, 그런 감각을 여자도 느껴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록산은 안타깝게도 사랑을 '집착'으로 배웁니다. 록산의 속마음과 정체를 알게 되어 떠나려 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 막스에게 집착하게 돼요. 그리고 막스가 '붉은 가슴'을 지닌 사람일 것이라고 200% 확신하게 됩니다. 영생을 살아가면서 인간에 대한 추악함 밖에 모르던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남자는 막스 너가 처음이야- 같은 걸까요. 내가 호감이 가고, 나를 맹목적으로 좋아해 주는 사람이 나와 평생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록산은 막스를 자신과 같은 영생의 존재로 만들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결과는 참혹했지만요.


스토리를 보면 웹툰 <록산>의 주인공은 막시밀리안으로 보입니다(도라에몽 제목 주인공 진구). 이야기의 시작을 막스가 열고, 막스의 인생에 록산이 참여하게 됨으로써 순탄할 것만 같았던 그의 인생이 변곡점을 그리게 되니까요. 독백도 주로 막스 시점으로 진행되고요. 막스가 록산을 바라보는 시점이 많이 보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이 웹툰은 록산을 위한 이야기라 생각해요. 록산과 막스 두 사람의 절절한 러브 스토리라기 보단 록산이란 캐릭터가 막스를 통해 냉소·허무주의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을 뜨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인간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 같아요. 록산이 새로운 감정에 눈을 뜨기 위해선 막시밀리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둘이 함께하지는 못 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오로지 록산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록산과 막스의 붉은 심장 찾아라 우당탕탕 대소동(..) 덕분에? 때문에? 또 다른 캐릭터, 막스의 동생 그레타와 약혼자 요안나가 도리어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레타는 작중 시대상과는 다른,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여자아이'의 모습과는 반대되는,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어 하는 아이입니다. 다소곳이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신부 수업을 듣는 것보다, 말을 타고 사격을 연습하고, 수학 과학을 배우는 것에 더 흥미가 있거든요.


 
그레타 : ...네. 전 박람회를 좋아해요. 아버지는 항상 좀 더 장래에 도움이 될 만한 취미를 찾으라고 했지만... 막을 수 없는 것도 있으니까요.
 


요안나도 비슷해요. 부모님이 정해준 정략결혼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거든요. 하지만 여자가 부모에게 대들고 집 밖을 뛰쳐나가서 해결되는 일이 거의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막스를 결혼 상대로 '선택'합니다. 막스와 결혼하면, 그래도 그를 자신의 휘하로 두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요. 또한 당대에는 남자가 가문을 이어받는 것이 전통이겠지만, 요안나에겐 해당되지 않습니다. 다른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본인이 더 잘 가문을 이끌 자신이 있거든요.


그레타와 요안나 두 사람 모두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싶어 합니다. 참 슬프고 아이러니하게도 막스가 희생양으로 바쳐지면서 록산이 이를 해결해주네요. 이렇듯 모든 캐릭터들의 중심에는 록산이 자리 잡고 있어요. 록산은 막스를 잃었지만, 막스가 소중하게 여겼던 그레타와 요안나가 원하는 바를 얻게 돼요.


막스는 처음에 록산이 천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악마였다-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만을 위한' 천사로 결론지어요. 록산은 과연 천사인 걸까요, 악마인 걸까요? 그전에 과연 록산을 단순히 천사와 악마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요? 저는 록산이 천사나 악마와 같은 어떤 영적인 존재라기보단, 인간들에게 내려지는 하나의 시험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록산은 영생을 살면서 여러 사람의 인생에 개입했을 것이고, 숱한 죽음도 만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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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록산 웹툰에서 보이는 작가님의 표현력은 정말 대단해요. 웹툰 초반부에 살해 용의자를 찾는 과정에서 부서진 벽을 사이에 두고 막스와 막스의 동생, 그리고 록산이 마주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가 정말 인상 깊더라고요. 마치 막스와 동생이 록산이라는 그림을 보는 느낌이 들었고, 대비되는 명암과 록산의 표정을 통해 두 사람이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느낌도 들었어요.


영화라고 치면, 엄청만 미장센들이 곳곳에 숨어있다고나 할까요. 웹툰 속 보이는 이런 표현력들 덕분에 웹툰에 더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4. OUTRO


 

<록산>의 작가님이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1주에 60~70개 정도의 웹툰을 볼 정도로 꽤 많이 보는 편인데, 이렇게까지 스토리를 군더더기 없이 매혹적으로 풀어낸 웹툰은 정말 흔하지 않거든요. 작가님의 차기작을 학수고대 중입니다.


왠지 오늘 하루 웹툰 정주행이 하고 싶다면, 계속 다음화를 보게 만들 정도의 흡입력 강한 스토리와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모여있는 웹툰 <록산>을 추천합니다. 저는 너무 좋아서 전편 구매해버렸어요. 이미 이전에 다 본 웹툰이었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보는데도 너무 재밌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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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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