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크리스마스, 신나지 않아도 괜찮아 [음악]

잔잔한 크리스마스 노래 3선
글 입력 2022.12.1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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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소원을 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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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독 따뜻했던 10월 중순까지만 해도 겨울이 오긴 할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이제 코앞까지 훌쩍 다가온 겨울이다. 아마 그래서 코감기에 걸렸나 보다.


우리는 종종 계절에 낭만적 수사를 투영하는데, 겨울이 지닌 그것은 더 특별하다. 급격히 추워진 날씨 탓에 실내에 머물며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의 겨울은 견딜 수 없이 낭만적인 인간상을 빚어낸다.

 

며칠 전 지하철역에서 소원 트리를 발견했다. 겨울이 설레는 계절이 된 이유, 바로 크리스마스다. 달력에 더 이상 12월 25일은 없다. 대신, '크리스마스'라는 다섯 글자뿐이다. 누군가는 여름철부터 캐럴을 들으며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특별한 하루에 대한 우리의 큰 기대는 추위를 모두 녹일 만큼이나 따뜻하다. 그러니까, 어떤 소원이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면, 그건 크리스마스여야 마땅하다.

 

이러면 안 되려나 싶었지만, 트리에 달린 소원 쪽지를 읽어 보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기도해야 할 순간이 찾아올 때면, 한껏 집중해서 내 소원을 빌다가도, 다른 사람들은 어떤 소원을 빌까 궁금해지곤 했다. '사람 생각이야 다 똑같지' 싶었지만, 트리에 달린 다양한 소원들은 각양각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월드컵 시즌이기 때문이었을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소원은 '포르투갈 이기고 16강 가자'였다. 벌써 소원 하나가 이루어졌구나 싶으면서도, 바로 옆에 붙은 '브라질 이기고 8강 가자'처럼 몇 년 간은 아쉽게도 이루지 못할 소원이 나를 웃음 짓게 했다.

 

'고양이 키우고 싶다'나 '수강 신청 잘되게 해주세요'같은 소박한 소원도 발견했다. 그동안 나는 소원을 빌 때마다 기왕 빌 거면 제일 거창한 걸로 골라야지 생각하곤 했는데, 조금은 욕심쟁이처럼 굴었나 싶었다. 작은 기쁨 하나로 충분하다는 듯한, 얼굴 모를 이웃들이 오늘도 행복했으면.


한쪽에는 10·29 참사를 추모하거나 돌아가신 가족 구성원에게 사랑을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가, 다른 한쪽에는 가족의 시험을 응원하는 간절한 기도가 마음을 울렸다. 또, '그 애랑 사귀게 해주세요'나 '너무 추워요'처럼 왠지 모르게 응원하게 되는 짧고 강렬한 진심의 조각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소원은 거울 같다. 바라는 이상적 미래를 비추는 거울. 그런데도, 이들의 소원을 읽다 보면, 어쩐지 그가 올 한 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 주는 과거의 거울 같기도 했다.

 

내 소원을 트리에 매달면서, 구석에는 허락받지 않고 남들의 소원을 읽어 봐서 죄송하다며, 어디선가 날 지켜보고 있을 산타 할아버지께 소심한 반성문도 썼다. 그리고 덧붙였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트리의 모든 소원이 꼭 이루어졌으면.

 

 

 

늘 따뜻하지만은 않은, '홀리데이 블루스(Holiday Blues)'



그런가 하면, 크리스마스가 모두에게 늘 따스하고 포근한 맛은 아니다. 유독 연말이 다가오면 알 수 없는 우울감에 휩싸이곤 하는데, 그럴 때 만큼은 거리의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캐럴이 마치 소음처럼 머릿속을 마구 때린다. 2023년에 대한 기대보다도, 벌써 2022년이 끝나 버렸다는 상실감이 마음속 큰 자리를 차지하고 도무지 움직이질 않아서일까.

 

전문가들은 이처럼 연말연시에 한정적으로 나타나는 슬픔, 불안, 우울 증세를 두고 '홀리데이 블루스'라는 전문 용어를 지정하였다. 특히 취업 준비생이나 직장인이 자주 겪는다는 홀리데이 블루스, 화려한 연말 분위기 속에서 나만 왠지 모를 허무감과 박탈감이 느껴진다면, 연말 우울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이 같은 홀리데이 블루스의 극복법 중 하나는, 연말이 즐거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미디어와 SNS는 크리스마스를 화려하고 반짝이는 이미지로만 소개하는데, 이를 접하며 타인과 나를 비교한다면 쉽게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남들이 모두 그러하다고 해서 꼭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필요는 없다. 온전히 나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단란한 연휴로부터, 역시 나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대형 백화점이나 왁자지껄한 거리(통신사 대리점의 실외 스피커)에서는 주로 신나는 캐럴이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거리의 발랄함보다 따뜻한 방의 '단란함'에 더 어울리는, 잔잔한 크리스마스 노래도 있을까? 자작자작 불타는 따뜻한 난로 앞에서, 포근한 극세사 담요로 몸을 덮고, 마시멜로 퐁당 빠뜨린 코코아 한 잔 마시며 듣는, 조용하지만 아늑한 새로운 매력의 세 곡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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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조용한 크리스마스 노래 3선


 

 

1. Love you on Christmas (백예린)

 


 

 

특별한 날이라서 행복한 게 아냐

그저 그대와 함께라서

 

고요함이 깃드는 밤

몰아치는 한 겨울의

파도 같은 그대

그댄 나만의 크리스마스

나의 따뜻한 촛불 빛나는 별빛

Love you on Christmas

 

 

잔잔한 멜로디에 따뜻한 가사가 마음 한켠을 데워 주는 곡이다. 특히 좋아하는 노랫말을 고르라면, '특별한 날이라서 행복한 게 아냐 / 그저 그대와 함께라서'라는 부분이다.

 

매사 솔직하지 못한 우리에게 각종 기념일은 꼭 필요하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가 없는 이들이 마침내 진심을 꺼내 보일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만큼 크리스마스가 특별한 이유는, 12월 25일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함께하는 당신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음악도, 화려한 장식도, 비싼 선물도, 결코 크리스마스를 온전히 정의할 수 없다. '그댄 나만의 크리스마스'라는 가사처럼, 크리스마스는 종종 누군가의 이름으로 치환된다. 가족 친구 연인 등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크리스마스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잔잔한 이 노래를 들으면서, 소중한 사람에게 쑥스러워서 미처 전하지 못했던 감사와 사랑의 인사말을 건네 보는 건 어떨까?

 

 

2. My Christmas day's for you (Summer Soul)

 


 

 

내가 항상 네 곁에 있어 줄 순 없지만

늘 내 생각을 해 주길 바래

눈을 감고 잘 들어 봐

약속해

늘 여기 있을게

 

널 위한 선물 하날 준비했어

비록 남들처럼 근사한 건 아니지만

서툴지만 빼곡한 편지와 스노우볼

이 크리스마스를 기억해 줘

 

 

아기자기한 뮤직비디오가 감상의 재미를 더하는 곡이다. 아이가 전날 만든 눈사람이 살아 움직이자, 그런 눈사람이 추워 보였던지 난로 앞에서 쉬라며 잡아 이끄는 아이의 순수하고 따뜻한 동심. 눈사람의 운명은 어쩐지 안 봐도 비디오 같지만, 때로는 무엇도 내다보지 않는 선의가 누군가를 구원할 것이다.

 

가사에 선물 얘기가 나와서 적자면,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친동생이 손수 만들어 준 가족 앨범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내게 가족이 그리울 때마다 열어 보라며, 가족사진을 프린트해 풀로 붙이고 12색 사인펜으로 삐뚤빼뚤 꾸민 작은 공책. 아직도 서랍 한 칸에 보관해 놓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 앨범을 받고서 나도 모르게 와르르 쏟아지는 눈물에 당황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처럼, 근사하거나 반짝이지 않아도, 진심을 담은 선물은 잊지 못할 추억이라는 커다란 포장지에 담겨 오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런 서툴고 소소한 모습이 오히려 기억하고픈 유일한 하루를 만들기도 한다.

 

 

3. 그래도, Merry Christmas (장필순)

 

 

 

다 사랑받는 건 아냐

행복한 것도 아냐

사람들 웃음에 서글퍼져

 

다 선물 받는 건 아냐

다 웃을 수 있진 않아

내 마음은 so blue, blue Christmas

 

차가운 바람 불어

가슴이 많이 시려와

따듯한 마음으로

나를 안아주길 바랄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슬프고 외로운 당신에게. 지금 느끼는 감정에 어떤 이유도 부여할 필요 없다며, 옆자리에 툭 걸터앉아서 불러주는 듯한 곡이다. 가사만 읽는다면 울적한 내용이지만, 슬플 때 슬픈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듯이, 홀리데이 블루스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곡은 왠지 모르게 힘이 된다. 억지로 화려함을 꾸며내지 않아서일까.

 

이 노래는 반짝이는 연말에 가려 저편으로 밀려난 울적함을 조명하고, 그런 울적함에게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꼭 신나지 않아도, 호화롭지 않아도, 오늘만큼은 어제보다 더 따스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며.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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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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