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악마로 낙인찍힌 소년의 이야기가 주는 날카로운 경각심 - 존 덴버 죽이기 [영화]

글 입력 2022.12.0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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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학창시절에 나를 지나쳐 간 많은 이들에게 나의 이름 석 자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릴 때는 순간적으로 어떤 감정 혹은 이미지가 늘 함께 따라오기 때문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구체화 되지 않고 사라지는 순간적인 느낌일 뿐이지만, 내가 그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인식의 결이 어떠한지는 뚜렷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름은, 그 사람에게 내가 내린 총체적인 평가 –점수를 매기는 식의 평가가 아니라, 인식의 방향성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 를 상기시킨다. 그냥 스쳐 지나가듯 이름을 듣거나, 읽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나에게 이름이란 어떤 존재를 인식하고 기억하는 데 있어서 아주 강력한 상징이다.


영화 <존 덴버 죽이기>는 제목에서부터 주인공인 소년의 이름을 등장시킨다. 원래 이 소년은 가난하지만 평범한 삶을 살던 학생이다. 시골 마을에 살며 학교에 다니고, 하교 후에는 가방을 만들어 파는 어머니의 일을 돕는다.


그러나 어느 사건으로 인해 ‘존 덴버’라는 이름은 하루아침에 ‘악마’로 낙인찍힌 채 학교, 마을, 필리핀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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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급생이 자신의 아이패드를 존 덴버가 훔쳤다고 의심하여 그의 가방 안을 확인하겠다며 억지로 뺏어 달아났고, 그 과정에서 화가 난 존 덴버는 친구와 몸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후 동급생이 앙심을 품고 몸싸움 영상을 SNS에 올리면서 존 덴버는 ‘친구의 아이패드를 훔친 것으로 모자라 폭행까지 저지른 뻔뻔한 악마’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SNS의 강한 전파성 때문에 학교, 마을을 넘어 필리핀 전역에 존 덴버의 영상이 퍼지며 그에 대한 처벌 요구와 비난이 빗발친다.


존 덴버는 절대 자신이 아이패드를 훔친 범인이 아니며, 동급생 무리가 자신의 가방을 뺏고 밀치며 먼저 싸움을 걸어서 맞대응한 것뿐이라고 주장하지만, 누구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존 덴버의 어머니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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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먼저 시비를 걸고 밀쳤다 해서 존 덴버의 폭력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있지도 않은 아이패드 절도 혐의까지 씌워진 상태에서 일방적인 폭력을 저지른 것처럼 영상이 퍼져나가며 비난의 화살이 오직 존 덴버에게만 향하게 된 데에 있다.


“그냥 사실대로 얘기해.”, “그러게 왜 가방 안을 보여주지 않았어?”, “일 크게 만들기 싫으니 그냥 아이패드만 돌려줘.”


진상 규명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도 존 덴버는 이미 범인으로 취급되는 듯한 말만 듣는다. 심지어 시의원은 일을 크게 키우기 싫은 나머지 본인이 직접 아이패드 주인이었던 학생의 학부모에게 아이패드 가격의 반을 지급하겠다고 말한다. 이걸로 그냥 서로 합의한 것으로 마무리하자면서.


사실 어차피 존 덴버가 본인의 입장과 사실에 대해 계속 말해봤자,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더 큰 비난을 받을 뿐인 상황이었다. 또한, 존 덴버 모자에게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억울하고 괴로워 보였기 때문에, 나는 시의원의 제안을 들으며 잠시간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라도 이 상황이 빨리 마무리가 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그때 존 덴버의 어머니가 억울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럼 우리는요? 범인이 아니었다고 진실을 표명해야죠! 우리 아들의 명예가 완전히 더럽혀졌다고요.“


마치, 화면 너머에 앉아서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소리치듯이 말이다.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나조차도 어느새 상황의 마무리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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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존 덴버라는 이름의 소년은 파렴치한 악마로 낙인찍혔다. 특히나 학교라는 폐쇄적이고 집단적인 사회에서 악마로 알려진 어린 학생이 숨을 방법이란 없다. 그는 앞으로도 불특정 다수에게 의심과 비난의 눈초리를 받게 될 것이다. 끝없이 퍼져나가는 SNS의 영상처럼, 그 비난은 언제 끝날지도 확실치 않다.


학교와 경찰, 공무원, 그 누구도 이 학생이 지금 겪고 있는 사이버 불링과 이후에도 겪게 될 일들에는 관심이 없다. 일을 크게 키우기 싫어 문제를 적당히 수습하는 데만 급급한 모습이다. 그냥 존 덴버가 (사실은 존재하지도 않은) 혐의를 인정하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존 덴버는 말수가 적은 아이여서,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표현되는 장면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신과 함께 외출하다가 어디서 날아온 지 모를 돌멩이를 맞고, 계속되는 비난에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본 후 존 덴버 역시 빨랫감에 얼굴을 묻고 소리 죽여 울게 된다. 좀처럼 감정 표현이 없던 아이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서럽게 우는 장면은 더 큰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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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를 통해 불거졌던 여러 실화 사건들을 바탕으로 짜인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충격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무차별적인 비난을 들은 존 덴버의 이야기는 전 세계 어디서나, 심지어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날 법한 일이다.


특히나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생활하는 학생에게 이러한 상황은 그야말로 사회적 매장이나 다름없다. 학창시절 동안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대신, 우선은 그 울타리 안에서 학생을 보호할 적절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고등학생일 적에 내가 보고 들으며 느낀 세상 어른들의 모습은 실망스러울 때도 많았다.


나 역시 학창시절을 지나, 이제는 대학교에서의 졸업까지 앞두고 있다. 완전히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어 가야 할 때가 온 나에게, <존 덴버 죽이기>는 경각심을 심어 주는 영화였다. 너무나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이 정보화 시대에서 더 신중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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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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