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가 악마인가? - 영화 '존 덴버 죽이기'

동영상 하나로 하루 아침에 악마로 낙인찍힌 소년의 실화
글 입력 2022.12.0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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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CGV 압구정점은 본관과 별관으로 나뉘어 있어 영화관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스낵 코너 직원분께 존 덴버 죽이기라는 영화를 보려면 어디에 가야 하냐고 물었는데 “앵무새 죽이기요?”라고 잘못 알아들으셨다. 마스크에 가려 우물거리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의 제목이 소설 ‘앵무새 죽이기’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원제목인 ‘John Denver Trending’을 ‘죽이기’라는 직설적 표현을 사용해서 번역한 건 단지 영화의 내용을 짐작하게 하기 위함뿐만이 아니라, 소설과 맞닿은 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앵무새 죽이기는 성폭행 혐의를 받는 한 남성을 변호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아이의 시각으로 바라본 내용이다. 이와 유사하게 본 영화에서도 아이패드를 훔치고 들키자 친구를 폭행했다는 누명을 쓴 주인공을 사람들이 오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오해가 마을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SNS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소설보다 상황은 더 심각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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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공터에서 시작된다. 지도자의 날을 위해 동아리 아이들이 모여 춤 연습하는 영상을 페이스북에 송출한다. 춤을 출 때 카를로스가 동작을 틀리더니 존 덴버를 걸고넘어진다. 너만 잘하면 된다고. 친구들은 이를 지켜본다. 다시 연습이 재개되지만, 갑자기 존 덴버의 바지를 내려버린다. 모두의 비웃음에 마음이 상한 존 덴버는 집에 간다. 교실에서 가방을 챙겨 나와 다른 친구 둘과 집에 가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전부 쫓아 나와서 존의 가방을 빼앗아 간다. 마코이의 아이패드를 훔쳤다는 이유다.


빼앗아 간 가방을 쫓아 옥상으로 올라간 존 덴버는 마코이를 때린다. 난 그런 적 없어, 왜 나한테 그러냐며 응징하고 내려가는데 다른 친구가 묻는다. “너 진짜 안 훔쳤어?” “난 훔친 적 없어” 하며 가방 안을 뒤집어 보여준다. 아이패드는 없다.

 

시장에서 엄마를 만나 같이 집에 간다. 마음이 좋지 않다.  그 무렵 피시방에 애들이 잔뜩 모여서 페이스북에 웬 동영상을 올리는데, 마코이의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힘들게 돈을 벌어서 사 준 아이패드를 존 덴버가 훔쳐 갔으며 걔는 악마라며 혼내달라고 대통령을 소환한다.


동영상은 페이스북에서 점점 퍼져나가고 온갖 사람들이 화력을 보탠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 이를 두고 볼 수 없다. 존 덴버는 반성하고 아이패드를 돌려줘라.’ 웬 유튜버가 영상을 올린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냅다 학교에 찾아와 존 덴버를 추궁하며 아이패드를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존 덴버는 졸지에 저지르지도 않은 절도 범죄의 피의자가 된 것이다. 속속들이 이전에 존 덴버로부터 피해를 봤던 아이들이 등장한다. 존 덴버가 돌을 던져서 이마가 깨졌다, 걔가 내 도시락을 훔쳐먹었다는 둥. 존 덴버가 과거에 저질렀던 온갖 부정적인 행적이 더해지면서 원래 그랬던 애, 나기를 악마 같은 애처럼 취급된다. 싹수가 노랗던 애가 결국 더 큰 범죄를 저질렀구나. 존 덴버의 사진에는 그를 우습게 만드는 문구가 쓰여서 인터넷에서 밈으로 쓰인다. 직설적인 비난과 부풀리기, 조롱이 뒤섞여 버린다. 이 악마 같은 애를 우리가 혼내줘야 한다. 정의의 편은 이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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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피해자 부모의 입장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내 자식이 한부모 가정의 가난하고 학교폭력 전적이 있는 아이로부터 고가의 물건을 도난당한 것 같다면, 선입견에 단정을 지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어르고 달래서 아이패드를 토해내게 하고 싶겠지. 그렇지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수준으로 일을 키운 건 자칭 피해자 측이었다. 수습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만큼 광역 저격을 함으로써 광활한 인터넷 세상에서 한 사람의 이름을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자신들도 더 이상 막을 방법이 없으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간 상태로 지금이라도 괜찮으니 돌려만 달라고 하는 껍데기뿐인 말이 우스웠다.


아무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 만약 절도가 일어났다면 어떤 방식으로 저질렀는지 그리고 범죄 후의 행선지는 어디였는지, 누가 훔치는 일을 도왔는지. 무엇 하나 객관적으로 파악한 것 없이 일방적인 주장과 정황으로 대신하고 말았다. 이는 피해자가 아이패드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피의자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방법을 빼앗았다. 존 덴버 어머니의 비명 같은 말이 떠오른다. “그럼 내 아들의 명예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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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적 믿음이 지배하는 사회는 근거 없는 절도 사건을 더욱 악화시킨다. 돌로레스의 저주 때문에 옆집의 조니가 죽었다. 따라서 비닝영감에게 이야기해서 마녀의 저주를 풀어야 한다며 듣도보도 못한 제사를 지낸다. 횃불을 들고 빙빙 집터를 돌아다니다가 절굿공이를 바닥에 두드리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식이다. 마코이의 어머니는 사건 이후에 비닝 영감을 찾아간다. “아이패드를 존 덴버가 팔았을까요?” 그는 가위와 실로 점을 치며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다. 온갖 기독교와 민간 신앙이 뒤섞인 이상한 사회이다. 비과학이 힘을 얻는 사회에서 이미 눈엣가시로 찍힌 아이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공권력 또한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사건 다음 날 경찰이 학교에 찾아온 건 적법한 절차를 거쳐 피해자가 신고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연히 피해자 부모가 경찰의 옆집에 살았고 자신에게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직접 말한다. 공권력이 사적 제재에 동참했음을 숨기려는 부끄러움조차 없다. 학교 또한 온갖 소셜 미디어에서 비난받는 학생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저 상황을 파악 중이니 일단 자중하기를 바란다는 입장문을 띄울 뿐이다. 일이 커지고 시장님과 함께 만들어진 자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간다. 대놓고 추궁하지는 않으나 그냥 아이패드를 돌려주고 끝내라는 식으로 회유하는 것이다. 결국 입장을 조정하지 못한 시장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피해자에게 준다. 아이패드 가격의 절반이나마 보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게다. 해결된 건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시장으로부터 피해보상비를 받음으로써 오히려 범죄는 비공식적이나마 공인되었고 없어진 아이패드가 돌아오지도 않을뿐더러 온라인에서 조롱당하고 비난받는 존 덴버의 상황 또한 나아지지 않았다.


덴버의 옆집 아저씨가 가짜 뉴스를 만드는 채널과 인터뷰를 하면서 혐의는 정점을 찍는다. 이전까지 의혹만 있고 사건과 관련된 증거가 없었다면 이제는 생긴 것이다. 존 덴버가 자기 물소를 죽였는데 보상할 돈이 없어서 어머니가 일을 도와주고 하루에 200페소씩 갚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아이패드와 관련해 짧은 생각을 말했는데, 렉카 채널이 말의 중간을 잘라 “존 덴버가 아이패드를 판매하는 걸 봤다.”며 목격자 증언처럼 인터뷰를 보도한다. 역시나 SNS에 해당 동영상이 퍼져나가고 존 덴버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까지 누명을 썼다고 생각해 저항의 의지를 잃어간다.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얘기에 따라간 사회 복지 사무실에는 총을 책상에 꺼내놓고 협박과 회유를 반복하는 경찰관이 있다. 존 덴버를 내버려 두고 나가서는 대걸레가 어디 있냐며 동료에게 소리를 지른다. 공포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에 존은 기회를 틈타 도망친다. 밖으로 나가 정신없이 차를 잡아타고 집으로 간다. 집에 갔으나 아무도 없다. 엄마는 학교에 불려갔을 테다. 궁지에 몰린 덴버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그동안 아무리 아니라고 소리 질러도 듣지 않았으니 이젠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

 

*


사실 덴버에게 내내 마음이 쓰이고 안타까웠던 건 소극적이고 자기표현에 약하며 괴롭힘에 쉽게 저항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점이다. 친구가 자기 바지를 내리고 그 장면이 실시간으로 송출되어도 밀치고 엄마를 도와주러 가야겠다고 상황을 피하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존 덴버. 약 올리고 야금야금 괴롭히는 친구에게 대응하려다 과하게 행동해서 돌까지 던졌던 덴버. 아빠가 돌아가시고 자신이 물소를 죽이는 바람에 가뜩이나 힘든 엄마가 옆집의 일까지 도와줘야 하는 상황에서, 존에게 엄마는 고민을 상의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 테다. 그저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악화하는 상황을 혼자 해결해보려 발버둥 쳤다.


존은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그건 존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내 아들이 아니다, 증거가 없다, 제발 수사해달라. 맞는 말을 해도 듣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 앞에서 벽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처음에는 답답함과 억울함이었으나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작아지고 쪼그라들어 어느 순간 비명처럼 들렸다가 한탄에 가까워졌다. 점점 수그러들었다. 자기방어를 못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그저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존 덴버의 마지막 선택은 그가 했던 몇몇 저항 중에 가장 강력해 보였다. 단 하나의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을 때 모든 기력을 다 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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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알아줄까? 두려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쫓기듯 달리던 덴버의 심정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함께 여실 없이 전달되었다. 자칭 피해자 측과 교장 선생님을 가운데 두고 대치하던 상황에서는 유독 씬의 변화를 제한하여 양쪽의 갈등과 기울어진 힘의 균형이 느껴지게 했다. 일부러 주변 소리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녹음한 몇몇 장면에는 현실적인 필리핀 시장과 저잣거리를 그대로 담기어 있었고 영화의 사실성을 높여 이 모든 이야기가 진짜 있었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했다.


사실 아주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순간에도 조롱처럼 돌아다니는 밈이 있고, 인터넷에서 더 자주 연결될수록 우리는, 더 쉽게 마녀사냥을 한다. 반쪽짜리 진실이 여론을 등에 입고 쉬이 진실로 둔갑할 수 있게 되었다. 존 덴버의 일이 더 급속도로 퍼진 데에는 타국에서 열심히 일한 아버지가 겨우 사준 아이패드를 저놈이 훔쳐 가고 발뺌한다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이야기를 함께 붙인 탓도 있었다. 쉽게 분노하게 만드는 자극적인 스토리를 담아 격양된 말투로 올린 글은 가해자를 혼내주려는 가벼운 정의감에 의해 정당화되고 힘을 얻었다.


면밀히 상황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고 ‘중립 기어’에 놓아야 한다. 그렇지만 어떤 일은 중립을 지키는 게 오히려 가해자의 편을 드는 꼴이 되기에 애써 중도를 지키는 것이 능사는 아님을 안다. 그렇기에 더 어렵고 손쉽게 비난하게 되는 것 같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가능한 뾰족하게 판단할 것. 이 말을 할까 말까 고민된다면 하지 말 것. 네티즌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항상 새겨야 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손쉽게 정의로워지려 하지 말자. 최소한의 다짐이다.


나 또한 쉽게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음이 실감나는 영화였다. 무겁고 사실적이지만 마냥 피하고 싶지는 않다. 울림 있는 사회적인 영화를 보고 싶다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꼭 추천한다. 엄마에게 꽃을 먹이며 보았던 존 덴버의 짧은 미소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 그리고 그 미소를 지켜주고 싶다.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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