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뉴욕에서 보내는 편지 (1) [여행]

글 입력 2022.11.2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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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뉴욕에서 시작되어...


 

모든 이들의 낭만, 뉴욕 뉴욕! 낭만과 기대로 가득 찬  그 거대한 공간을 오늘, 바로 지금 떠난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처음 가보는 도시, 낯설고 신선한 조합으로 떠나는 뉴욕은 나를 기대와 불안으로 채워지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날짜 변경선을 지나가 시차 적응을 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던데 나는 그 시차 적응이 왜 이리 새롭고 설레지는 지 모르겠다. 여행이 시작되기도 며칠 전부터 세계 시간에 뉴욕을 추가 해놓고 몇 번이고 뉴욕의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우리와 시간이 정반대네?', '우리가 잘 때 이들은 하루를 시작하네?' 지구가 크고 넓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는 건 이 시차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처음 뉴욕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항공사 측의 실수로 조원 몇 명의 캐리어가 도착하지 못해 매끄럽지 못한 시작이었다.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도착한 우리의 숙소는 브루클린의 끝자락이었다. 우리가 처음 본 뉴요커는 24시간 오픈하는 델리의 아랍인과 흑인 3명이었다. 이들은 동양인 여자 무리들을 아주 보란 듯이 무시했다. 지나가는 우리를 대놓고 쳐다보고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면서 피곤에 지친 우리를 더욱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가슴속에는 커다란 물 2병을 들고서 어두운 밤거리를 걸을 때 내가 뉴욕인지, 어디 다른 나라인지, 아니면 그냥 여전히 한국인 건지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짐 정리를 다하고 뜨거운 물속에 몸을 씻기니 어느덧 새벽 3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부엌에 모여 다음 날 계획을 부랴부랴 세웠다. 유명하다는 브런치 가게에 가기로 한 3명과 타임스퀘어를 걷기로 한 3명으로 나누어 첫 뉴욕을 시작하였다.


세 시간의 쪽잠으로 인한 피곤함은 뉴욕의 설렘으로 이겨냈다. 처음 지하철에서 나와 마주 본 맨해튼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이게 뉴욕이지! 저 멀리 보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나의 뉴욕 낭만에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힙하고 자유로운 직원 셋이 경쾌하게 움직이는 브런치 가게에서, 아침을 먹기 위해 바삐 움직인 뉴요커들 사이에서, 호기심으로 가득 찬 나는 그들의 일상을 훔쳐보았다. 친절한 듯 친절하지 않은 그들의 모습이 좋았다. 딱 적당히 그만큼만의 관심이 나에게 필요했을까.

 

작은 6개의 눈동자가 나의 영어를 기다릴 때는 '아 이래서 내가 영어를 배웠나' 싶을 만큼의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대한민국 조기교육, 사교육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그 현장에 들어갔을 때일 것이다.


91층의 전망대에서 세계의 대도시 뉴욕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1000대가 넘는다는 뉴욕의 노란 택시가 장난감처럼 뉴욕 길거리를 돌아다녔고 겁 없는 사람들은 신호를 무시하고 그냥 횡단보도를 건넜다. 발걸음을 돌리면 저 멀리 센트럴파크가 커다랗게 보였다. 저 멀리에서는 브루클린 브릿지와 맨해튼 브릿지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거대한 세상 속에서 나는 참으로 작았다. 한편으로는 이 넓은 도시에 내가 잠시나마 일부가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모든 일정 끝에 피곤에 지쳐 걸으면서 겁도 없이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면서 첫째 날 숙소에 도착했다. 여전히 낯설고 어색한, 그리고 긴장감 가득한 브루클린의 끝자락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이고 이곳은 뉴욕입니다.


 

이번 여행은 특별했다. 익숙한 사람들이 아닌 처음 보는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 알아서 여행 계획을 짜고 능동적으로 여행을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인솔자라는 말은 그저 허울뿐인 말. 인솔자는 여행 내내 보이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을 파악하는데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몹시 짧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여행 시간은 그저 일주일. 나는 단 하루 만에 그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누구는 무얼 좋아하고, 누구는 무얼 싫어하고, 누구는 무얼 즐겨 하고, 누구는... 오랜만에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건 배려와 이해의 연속이었다. 우린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배려해야 했고, 그 사람을 그 자체로 이해해야 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단체 생활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집중을 잘 해야 했다. 여행은 체력 소모가 빠르고 취향이 갈리는 취미 중 하나이다. '여행'이라는 카테고리를 두고 보았을 때 여행을 바라보는 시선과 여행 속 속도와 에너지가 각기 다를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여행을 할 때 에너지와 속도가 안정적이어야 했고, 적당한 쉼과 여유가 필수적이었으며 그 흐름에 잘 맞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다년간 엄마와 이모와의 여행으로 그들과의 에너지, 속도에 길들여진 나는 혈기왕성한 20대 초의 친구들과 걸음을 맞추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였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느끼는 건 노력하지 않으면 인연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두 손을 놓고 기다리고 있을 때 제 발로 나에게 다가오는 인연은 이젠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린 각자의 자리에서 부단히 애써야 한다.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옆에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길을 찾지 않는 친구를 위해 대신 길을 찾아주어야 한다. 작은 감정으로 신경을 곤두서기엔 일주일은 짧았고 뉴욕은 넓었다.

 

또한 나의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는 건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 굉장한 실례임을 알아야 한다. 만일 현재 나의 감정이 '지루함' 혹은 '피곤함'이라면, 나는 단체 생활 속에서 그 감정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감정으로 인해 누군가가 눈치를 보거나 신경을 쓰이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속도가 각기 다른 낯선 이들이 모여 여행을 가게 된다면 모두가 이 점을 명심하면 좋겠다.

 

혹시나, 정말 체력이 떨어지고 못 참겠을 때에는 미리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 오늘 조금 힘드니까 너희들이 A를 할 동안 근처 카페에서 기다릴게. 연락해!'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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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여행은?


 

인간이 여행을 가는 이유는 뭘까? 내가 여행을 가는 이유는 뭘까?

 

이모에게 여행은 해방감이었고 엄마에게 여행은 꿈의 실현이었다. '여행은 식견을 넓힌다'라고 믿는 엄마와 이모를 운 좋게 만나 나름 어린 나이부터 비행을 즐겨 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적금을 모은 돈으로 엄마와 이모 그리고 나는 세계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인사를 배웠으며 많은 문화를 경험했다.


20대 초반에는 엄마와 이모 덕분에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자체로 정말 행운이었다. 나를 앞세워 낯선 외국인들과 대화를 시킬 때에는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낯간지럽기도 했다. 여행을 많이 하면 식견이 넓어진다는데, 그 당시엔 그저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고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처음 비행을 하고 4년이 지나 생각해 보면 나의 식견은 참으로 넓어졌다. 세상을 볼 줄 알고 사람을 접할 줄 알게 되었다. 한국만이 나의 무대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른 곳에도 나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루하다고 남들이 피하는 미술관도 찾아가며 명화라고 불리는 작품을 눈에 담아볼 줄 알게 되었다. 부끄럽다고 피하던 영어 주문도 미국 드라마 '프렌즈' 속 주인공들의 대사 일부라고 생각하며 자신감 있게 내뱉을 수 있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잠시나마 느껴보며 그들의 생활 속 매너를 마음속에 새길 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매너는 아주 작은 것이다. 이를테면 뒤 사람이 들어올 때까지 문을 잡고 있는 것과 같은. 뉴욕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모든 일행이 다 들어올 때까지 뒤 사람을 생각해 문을 잡고 있는 그 매너는 성격 급한 나에게 정말 충격이었다.

 

'Thank you' 말을 건네면 그들은 'You're welcome'이라며 웃어 보였다. 첫째날 내가 느낀 그들의 매너는 나로 하여금 그것을 실천하게 만들었다. 여행 내내 뒤에 사람이 들어오나 살피고 그들을 위해 문을 잡아주었다. 그들은 동양인 소녀의 친절함에 웃음으로 화답하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

 

'여행'이라는 두 글자는 참으로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그러나 이젠 마음 한편엔 돌덩이가 가라앉는 것처럼 무겁다. 떠나고 싶다, 그러나 도피는 싫다. 떠나기엔 시간이 없고 돈이 없으며 사회적 위치가 없었다. 지금 나에게 계속되는 여행은 그저 도피일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취준생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가라앉고 부정적인 생각은 되려 나를 차분하게 만든다. 계속 바라보던 여행 사진과 일기를 접고 취업 사이트를 켜 일자리를 알아본다.

 

마음이 가볍지 않은 여행은 떠나기보단 도피가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여행이 도피가 되지 않기 위해 나의 현실에 시간을 할애한다. 20살의 유로스타를 예약하던, 떨리는 마음으로 여권을 발급하던 이전의 내가 조금은 그리워진다.


나의 위치가 조금 더 안정적이여지면 내가 사랑하는 여행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조금 더 성장한다면 내가 사랑했던 여행이 여행 그 자체가 될 수 있을까?


여행은 나를 기대하게 한다. 20대의 나를, 30대의 나를 꿈꾸게 만든다.


당신에게 있어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

 

도피? 해방? 즐거움? 그저 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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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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