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생각은 많지만,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 권기선입니다.

누군가의 가면 속 얼굴, 누군가의 고질적 문제, 누군가의 은밀한 즐거움이 궁금하지 않나요?
글 입력 2022.11.2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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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이면을 인터뷰하다

비공식 인터뷰, Side B

[크기변환]cassette-tape-g158362fb9_1280.jpg

 

Side B에서는 Side A, 아트인사이트에서 볼 수 없었던

권기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artist info. 


[크기변환]side_B_썸네일_700px.jpg

 

 

권기선

1995.12

생각은 많지만,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

 

 

▶ Now playing, Side B ◀

 

 

 

 Track 1  PERSONA


 

타인이 보는 나는

 

이번 기회에 주변인들에게 물어보았어요. 나온 답변으로는 생각이 많다, 귀엽고 허술한 사람, 자유롭게 산다, 사람으로부터 고통받는다, 유행에 민감하지 않다, 잘 속는다, 끊임없이 성장하려 노력한다 등이었어요. 저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본 거라 대부분 저를 간파한 표현이었어요. 가장 의외였지만 마음에 들었던 답변은 ‘봄날의 햇살’ 같다는 말. (언제나 칭찬은 기억에 남는 법이죠)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대사래요.

 

 

나만 아는 나는

 

염세적인데 낭만주의자예요. 이상적인 것을 꿈꿔서인지, 쉽게 외로워지고 우울해지는 편이에요. 어떨 때는 세상에 정이 뚝 떨어지고 마음이 확 얼어붙죠. 하지만 낭만적인 것을 발견하면 금세 마음이 녹으면서 ‘아, 이게 사는 재미지.’ 생각해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시와 아름다움,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라는 대사에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있어요. 제 생각도 비슷해요.

 

그리고 정이 많아요. 절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와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에요. 저는 생각보다 사람을 좋아하고, 마음을 열어두거든요. 소심해서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것뿐. 여러 계절이 지나도 서로의 곁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선호해요. 인간관계를 쉽게 끊는 성격은 못돼요.

 

눈물도 많아요. 제게 눈물은 어떤 감정의 극단에서 터지는 신호 같아요. 너무 행복하거나 좋아서 혹은 너무 힘들고 지칠 때 터지는. 대부분 주변 사람들은 제가 우는 모습을 못 봤을 거예요. 오히려 제가 냉정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혼자 있을 때 잘 우는 편이랍니다.

 

 


 Track 2  PROS & CONS


 

내 장점이 있다면

 

밝고, 잘 웃는 거요. 저는 진짜 잘 웃어요. 세상에 웃긴 일이 정말 많거든요. 만약 웃긴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웃을 일을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웃어요. 인스타그램에서 귀여운 동물을 보든, 웃긴 밈을 보든, 친구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면서 수다를 떨든. 그렇게 웃을 일을 만들어서라도 실없이 웃다 보면 기분도 덩달아 좋아져요. 심각했던 일도 별거 아닌 일로 느껴지고요.

 

 

내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면

 

자기 연민하기. 자기 연민은 ‘과거의 상처’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 나를 묶어두고, 현재를 즐기지 못하게 해요. 그래서 전 지금까지 꽤 많은 시간을 즐기지 못해온 것 같아요. 이제 와선 그 점이 아쉬워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불행이 가장 심각하죠. 그래서 자기 연민 역시 피하기 어려운 사고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기 연민은 현재를 충실히 사는 데에 방해만 될 뿐이에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니까요.

 

만약 내가 계속 자기 연민을 하고 있다면, 진정으로 그 불행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한 것인지 스스로 반문해 볼 필요가 있어요. 그 불행을 핑계 삼아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위안을 얻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모순적으로 그 불행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보면 저는 제 불행을 은근히 즐겼던 것 같아요, 변태처럼. 힘든 상황에서 불행을 과장했고, 자기 연민을 현실의 도피처로 활용했던 거죠. 어쩌면 자기 연민과 불행에 빠져있는 건, 그것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거쳐야하는 단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불행을 즐기는 것 또한 인생의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기간을 정해 한껏 저를 연민하다가 기간이 끝나면 빠져나와요. (그 기간이 너무 길어지지만 않으면 괜찮은 것 아닐까요)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면 자기 연민은 금방 힘을 잃더라고요. 깊이 생각했던 키워드 중 하나라 말이 길어졌네요.

 

 

 

 Track 3  LOVE & HATE


 

관심사를 알려주세요

 

다양한 경험하기, 나다운 것 찾기, 운이 좋다면 나를 설레게 하는 사람 만나기. 요즘 이 3가지에 가장 관심이 많아요. 자의식 때문에 나를 단정 짓고 그 안에서만 살았던 폐쇄적인 날들도 있었어요. 20대 중반부터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나름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 또한 그중 하나고요.

 

궁극적으로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나다운 삶을 살고 싶어요. 세상의 기준과 달라도 신념대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와 뚝심이 저에게 있었으면 해요. 그리고 마지막, ‘설레게 하는 사람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지금이 딱 연말 시즌이라 그런지 좀 설레고 싶네요. 과연 조만간 재밌는 일이 제 인생에 들이닥칠지 두고 보자고요.

 

 

싫어하는 것들을 말해주세요

 

제 마음속 ‘오만함’과 가끔 수면 위로 올라오는 ‘살에 대한 강박’을 싫어해요. 안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가끔 내가 뭐라도 되는 양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할 때가 있어요. 이러고 나면 스스로 한 생각이 구리다는 것을 알기에 자존감도 떨어지더라고요. 그럴 때 제 자신이 참 못나 보여요.

 

또한, 살찌는 것을 두려워하는 제 마음도 싫어요. 한창 심할 때보단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저는 살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거든요. 매일 몸무게와 눈바디를 체크하니까요. 그렇다고 일상의 모든 초점이 다 다이어트에만 맞춰져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살이 찐다면 우울하지 않을 자신은 없는 거죠. 좋게 말하면 관리고, 나쁘게 말하면 강박이기도 한 것 같아요.

 

 

 

 Track 4  GREAT TASTE & GUILTY PLEASURE



당신의 멋진 취향을 자랑해 주세요

 

쳇 베이커의 재즈, 밀란 쿤데라의 소설 같은 것.

 

쳇 베이커의 재즈 - 사실 쳇 베이커 음악을 다 좋아하긴 해요. 혼자 있는 방, 우울하고 센치한 감성을 장착하고 스피커로 그의 음악을 들으면 독립영화 속 분위기 있는 여주인공이 된 것 같은 황량한 기분이 들거든요? 세상의 온갖 사연을 다 가진 그런 사람. 좀 부끄럽지만 그런 쓸쓸하고 고독한 기분을 즐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디 자랑하기에도 멋있어 보여서 좋고요. 인생의 쓴맛을 아는 사람 같달까요.

 

밀란 쿤데라의 소설 - 이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에요. 밀란 쿤데라 책을 읽는 사람을 상상하면, 감성적이고 우아하며 지적이지 않나요. 천천히 와인 향을 음미하고, 배도 안 차는 매트한 안주를 곁들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사람이 떠올라요. 작가 이름도 밀란 쿤데라, 얼마나 멋들어지나요. 저는 있어 보이는 것들을 자랑하고 전시하고 싶어 해요. 사실은 허영심이겠죠.

 

 

어디서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즐기는, 은밀한 취향을 알려주세요

 

정가영 감독님의 작품들, 바퀴 달린 입, 다나카 상이요.

 

정가영 감독님의 작품들 - '남미새', '여미새'라는 단어가 있어요. 남자 혹은 여자에 미친 새끼라는 뜻으로, 보통 이성 관계에 목매는 사람들을 조롱할 때 쓰이는 말이죠. 그런데 정가영 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들이야말로 '제대로 이성에 미친 사람들'이거든요. 그 주인공들이 결국 제 모습과 비슷하더라고요. 그들도 단지 관계가 간절한 외로운 사람일 뿐이었던 거죠.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의 대사를 하나 읊어드릴게요. 이 대사를 듣고 정가영 감독님의 다른 작품을 검색해 볼 분들, 분명 있으실 거예요.

 

 

오늘 나한테 이상한 거 많이 물어봐 줘서 고마워.

나 솔직히 얘기가 너무 하고 싶었거든.

친구들을 만나도 다 솔직하진 못하더라.

대화도 하고, 섹스도 하고 그러려고 사랑하는 거 아니냐.

근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렵냐. 우리 센 척 작작하자. 사실 다들 외롭잖아.

 

- 연애 빠진 로맨스

 

 

바퀴 달린 입 - 전 이런 B급 감성을 너무 사랑합니다. 정돈되지 않은 세트, 시답지 않은 소재로 목에 핏대 세우고 갑론을박하며 오가는 농담과 드립, 그 와중에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 제가 좋아하는 모든 구색을 갖춘 프로그램이에요.

 

다나카 상 - 신박한 컨셉과 센스 있는 편집, 개그맨 김경욱 님의 연기력이 더해져 나날이 인기가 늘어가는 부캐죠. 요즘 잘 챙겨 보는 캐릭터에요. 제 웃음 버튼.

 

 

 

 Track 5  MUMBLE


 

TMI를 알려주세요

 

전 불빛이 전혀 없는 암흑 속에서 자야 해요. 낮은 베개를 선호하고요. 호기심은 많은데 겁도 많아요, 그래서 잘 놀라고요. 몰랐는데 멍을 자주 때린다고 하더라고요. 김밥과 샐러드를 좋아하고, 키우는 고양이와 강아지 앞에서 콘서트를 자주 해요. 그리고 정리를 잘 못해서 다 쑤셔 넣어두다가 날 잡고 정리한답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즐기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니체는 자기 자신대로 살기 위해서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즐기는 '어린아이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요.

 

 

낙타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며 ‘You Should’라고 한다.

사자는 그렇게 결코 안 산다며 ‘I will’이라고 한다.

어린아이는 그저 ‘I am’이라고 한다.

 

- 니체의 인생 강의

 

 

언젠가 이 문장을 읽는데 미간이 팍 찌푸려졌어요. 권기선이 또 감동을 한 거죠. 원래 뜻대로 안 되면 스트레스받고 자책도 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도 일종의 자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니체의 말대로 '좀 즐기며' 살고 싶어요. 상황을 외면하며 낙관하지도, 과장해서 비관하지도 않고 딱 그만큼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 그게 곧 니체가 말한 삶을 즐기는 '어린아이의 정신'아닐까요? 가장 왜곡 없이 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인 것 같기도 하고요.

 

 

나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설렘 중독이요. 설렐 때 살아있다고 느끼거든요. 생각해 보면 제 마음을 벅차고 설레게 하는 것들을 좇았던 것 같아요. 공간이든, 취미든, 사람이든, 일이든. 아직까지 설레는 일은 항상 흥미진진하고 기대가 돼요. 누가 뭐래도 전 제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하는 것들이 제 삶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많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정말 감사드려요. 사실 타인에게 관심을 두고, 남 얘기만 듣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시간 내어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트인사이트_권기선.jpg

 

 

[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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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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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니
    • <살아있다는 감각> 글을 보고 매료되어 이 글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마주하고 드러낼 수 있는 능력과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언어를 즐기는 존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참 재밌다고 느낍니다. 기선 님의 목소리를 느슨하게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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