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소중한 낡은 것들 [음악]

유재하의 앨범을 <사랑하기 때문에>
글 입력 2022.11.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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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하지만 상대를 향한 정성을 담아 꾹꾹 눌러 쓴 손 편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한 기억이 될 오늘의 나를 기억할 일기장. 세월의 흔적이 묻은 도서관 모퉁이에 낡은 고전 책.

 

한 때는 마냥 새롭고 빛이 바래지 않은 것들 만을 선호했던 내가, 조금은 더 낡아진 스물다섯이 되어 문득 내 마음 속에 자리한 존재감을 인식한 것들이다.

 

낭만도 감성도 효율과 편리라는 이름 앞에 자취를 감추는 시대이지만, 불편과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지켜내고 싶은 취향이 생겼다는 걸 자각한 순간이기도 했다.

 

군더더기 없이 새하얀 창과 손가락 몇 번의 움직임만으로도 다시 공백이 될 화면 속 너머의 세상보다, 작은 충격에도 구겨지고 깔끔히 지워낸다 한들 본래의 상태로는 완벽히 되돌아갈 수 없는 종이를 더 좋아한다.


정형화된 글꼴에서 개성이 담긴 글씨체로 넘어오는 순간 그 위에 펼쳐지는 세계는 온전히 나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손 글씨로 나의 감정과 고민, 생각 등을 담아내는 것만큼 가장 ‘나’다운 것은 없을 듯하다. 꾸밈없고 다듬어지지 않은 솔직한 모습에 누군가는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을 무엇보다 사랑한다.

 

아마도 나는 ‘진솔함’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다.

 

 

 

진솔함이 감동이 되는 순간, 내가 싱어송라이터를 사랑하는 이유


 

때마다 듣고 싶은 음악들로 채워져 정리되지 않은 플레이리스트는 나의 취향을 대변한다고 말하기에는 다소 두서 없고 난잡한 구석이 있다.

 

음원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1000곡을 넘겨 기존에 담았던 음악들이 지워질 때가 되어서야 급하게 정리를 시작하는, 무질서하고 게으른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음악들로 채워진 플레이리스트라고 하더라도, 그 중에 꾸준히 즐겨 듣는 곡들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공간이 모자라 꽤 많은 곡들이 삭제되는 순간에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음악들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것들 역시 하나의 범주로 묶이기에는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들을 넘어 내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곡들에는 분명한 차별성이 있다. 그들은 모두 싱어송라이터 음악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마치 내 것이라도 된 마냥 소중히 여기는 그 음악들에는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진솔함’이 담겨있다.

 

좋은 음악들은 여러 뮤지션에 의해 꾸준히 리메이크 되지만, 원곡의 감동을 뛰어넘었다는 평을 듣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싱어송라이터의 곡들은 더욱 그렇다. 제 아무리 원곡자보다 테크닉적으로 우수하다고 하더라도 이야기의 주인이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사실상 그 사람 자체를 대변하는 곡의 아우라를 이겨 내기는 힘든 듯하다. 

 

그럼에도 진솔함만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그 모든 음악들이 감동스러울 수 있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쓰는 모든 일기는 전부 감동스러운 가사가 됐어야 마땅할 테니까.

 

어떠한 음악이, 그 안에 담긴 가사가 나만의 이야기를 넘어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서는 특별함 속에 반드시 보편성을 품고 있어야 한다.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인 우리의 삶 속에 담긴 일상의 고민, 생각, 감정 등이 다른 듯 보이지만 비슷한 구석이 있어 공감이 되는 것처럼, 그것이 원천이 되는 싱어송라이터의 가사 역시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듯 보여도 그 안에 삶의 본질을 담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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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는 우리 부모님의 나이에 가까운,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지금의 나와 같은 25세의 나이에 멈춰버린 천재 뮤지션 유재하. 짧은 생에 단 하나만의 앨범을 남겼지만, 지금까지도 세대를 초월하여 사랑받고 있는 그의 유작 <사랑하기 때문에>는 내가 싱어송라이터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유 그 자체이다.

 

수십 년이 지난 요즘 나오는 곡들에 비하면 선명하지 않은 음질이 세월의 무상함을 드러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파격이었던, 지금 들어도 세련된 음악과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지는 문학적이고 진솔한 가사는 현 세대 청년에게도 충분히 감동적인, 청춘을 노래하는 대중음악계의 클래식이다. 

 

세월이 흘러 표지의 색이 바랠지언정 불멸의 감동은 선명한 고전 책처럼.

 

 

 

영원히 늙지 않을 청춘의 목소리, 스물다섯 유재하의 음악들


 

주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의 독특한 이력에 힘입어, 대중음악에 클래식을 접목하는 독자적인 행보를 보인 유재하의 음악들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그의 천재성을 여감없이 보여준다. 

 

여러 악기의 소리가 아주 잠시라도 심심함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풍성하고 다채로운 분위기를 선사하는 한편, 적절한 완급의 조절은 그 어떤 소리 하나 거슬림 없이 편안하고 부드러운 완성도를 자랑한다.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뛰어난 작곡 및 편곡 능력과, 25세 청춘 ‘유재하’ 그 자체를 표현한 곡들로 구성되어 완벽한 통일성을 자랑하는 앨범의 주제의식과는 별개로 그의 보컬 실력은 그리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맑고 꾸밈없는 목소리 역시 풋풋하기는 하나 어떤 측면에서는 조금 촌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다듬어지지 않은 면모 또한 섬세하고 문학적인 가사와 함께 어우러져 진솔하고 호소력 짙은 감동으로 변모한다. 가사를 곱씹을수록 그의 평범한 목소리에 점점 더 집중하게 되는 매력이 있는 것이다. 

 

음악과 함께 나이 들어갔어야 할 목소리를 상상하면 너무 이르게 도중에 끊겨버린 그의 삶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명곡이 되어 사랑받는 그의 음악들은 유재하라는 천재 뮤지션을 청중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늙지 않은 채, 스물다섯 청춘으로 살아있게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무엇 하나 아쉬움 없이 완벽한 곡들로 구성된 명반이다. 앨범명과 동명의 곡인 타이틀 ‘사랑하기 때문에’로 처음 유재하를 알게 되었지만, 전곡을 순서대로 감상하며 각양각색의 분위기와 함께 유재하라는 뮤지션의 감성에 젖어 들 수 있었다.


 

내 곁을 떠나가던 날

가슴에 품었던 분홍빛의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

 

- 사랑하기 때문에 中

 

 

내 취한 두 눈엔

너무 많은 그대의 모습

살며시 피어나는 아지랑이 되어

그대 곁에서 맴돌고 싶어라

어둠이 찾아 들어 

마음 가득 기댈 곳이 필요할 때

그대 내 품에 안겨 눈을 감아요

그대 내 품에 안겨 사랑의 꿈 나눠요

 

- 그대 내 품에 中

 

 

20대 답게 그의 가사에는 사랑, 꿈, 이상 등 청춘의 고뇌들이 한껏 묻어나 있다. 당시에 그가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비화가 유명한 만큼,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 내 품에’ 등의 곡들의 절절한 가사는 마치 연인에 대한 손편지를 연상시킨다. 서툴지만 진심을 다해 부르는 그의 노래는 순수한 사랑의 감동을 극대화 시킨다.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쳇바퀴 돌 듯

끝이 없는 방황에

오늘도 매달려 가네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 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中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싸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네

 

- 가리워진 길 中

 

 

그가 사랑했던 대상은 그저 연인에 국한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또 다시 그 짧은 생이 아쉬워 질만큼 자신의 꿈도 삶도 너무나도 사랑했던 청춘 유재하. 담담한 듯 희망찬 그 목소리가 서글퍼지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선가 자신의 음악이 들리는 그 곳을 주시하고 있다면, 스스로를 향해 내뱉던 그 가사가 수십년을 돌아 청춘이 된 또 다른 청년을 위로했다는 걸, 긴 방황에 지쳐 멈추던 길에 또 다시 힘을 내 나아갈 용기가 되었다는 걸 알아 준다면 좋겠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삶에 지친 그대에게,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의 전 곡을 한 번씩 들어보는 것을 감히 추천해 본다. 진솔함이 묻어 있는 풋풋한 목소리가 전하는 위로에 귀를 기울여 보기를 바란다. 

 

 

 

 

물건도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낡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순리이다. 보다 어렸던 과거에는 어리석게도 낡은 것을 쓸모 없는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공책을 다 써가면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순간만을 기대했던 내가. 도서관에 있는 낡은 책에서 풍기는 퀴퀴한 세월의 향보다는, 서점에 있는 책들에서 나는 새 종이의 신선한 향을 선호했던 내가. 

 

지난 나의 흔적이 가득 묻은 해진 일기가 소중해진 순간, 그 책을 거쳐갔을 또 다른 어떤 삶들이 궁금해진 어느 날, 외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진심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내면에 귀 기울이는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진솔한 면모가 궁금해졌다.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이 좋은 이유 역시 이와 비슷한 결을 함께한다.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그 사람의 솔직한 모습에 주목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친밀감과 인간적 호감이 생기곤 한다. 

 

물론 그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음악을 통해 세상에 스스로를 드러내려 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나에게 매우 소중해진 것처럼.

 

 

[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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