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졸업 이후 3개월 동안 벌어진 일

글 입력 2022.11.1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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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 졸업하고 3달이 지났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만큼, 길기도 하면서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것 같기도 하다. 공부했던 과정을 생각해보면 참 길다. 또 그동안 뭐 했는지 생각해보면 한 단어 '취준'으로 표현할 수 있다.

 

 

 

9월; 나의 가치를 증명할 시간


 

나의 가치를 대학 졸업 이후 '입사'로 증명해야 한다.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은 많지만, 나에게 시급한 것은 이 방식이었다. 입사. 참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럴수록 속 좁은 사람이 되어가고 초조해져 가고 평안하지 않은 하루하루를 사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 하지만 그만큼 절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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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이나 방문한 여의도의 한 중학교 아름다운 풍경

 

 

하반기 취업 준비로, 시험 전 막바지 공부를 하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다. 지금 하반기 취준 어딘가 성공해 초봉 4000으로 잡을 때 취업 내년으로 넘기면, 1년 4,000만 원 날리는 거다. 생각이 드니 번쩍 좀 더 체계적으로 시작했어야 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올해 취업 못하면, 그동안 좌불안석으로 제대로 놀거나 무슨 재밌는 프로그램을 들으려 해도 확실한 상황이 아니니 신청하지 못하고 괜히 앉아서 연습책 앞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아깝게 다가왔다. 어영부영이 딱 질색인데 그렇게 1년을 보내버린 기분이 든다.


미시 역선택 유형에서 노동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교육 수준으로 교육을 수행할 때 드는 비용이 고학력 고임금자는 훨씬 수월하게 해서 낮고, 저임금자는 걸리는 시간이나 노력이 더 많이 들어서 높다. 회사에게 나도 고임금자로 인정받으려면 그에 합당한 노력 수준을 보이고, 시험에 합격하는 게 당연한 건데, 그전부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이런 속상함과 부정을 느끼다니 나도 참 어불성설이다.

 

내년에는 집에서 경제 공부 온종일 하기보다 내 역량을 펼칠 공간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또 어리석은 생각이 들기만 한다. 너무 문제만 풀다 보니 내 생활에 드는 비용과 시간의 가치를 따지게 된 것 같은데 다시 나도 마음 말랑말랑한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10월 중순; 나를 뽐내는 것


 

별 조바심 안 나고 아직 젊다고 생각했는데 뭐라도 시작해서 새롭게 삶을 장식하는 ‘스타트’를 끊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빨리 경험하고 배우고 싶다. 공부하면 멀티로 사람들을 만나거나 다른 강의를 듣거나 제대로 뭘 같이 할 수 없는 내 성격상, 오로지 공부만 하는 것도 좋지만 그뿐만 하기에 나의 20대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중에 여성 리더스 포럼에 다녀와서 깨달은 것 같기도 하다. 뭐든 나와서 열심히 자주 실패하고 빨리 실패하고 싸게 실패하라는 켈리 최 회장님의 말씀과 나를 둘러싼 가면을 벗기기 위해선 더 실패하고 나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시는 리사 손 교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겼기 때문이다.

 

하루 한나절 동안 여러 선생님들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들으니 뭐든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뭐든 해야 한다는 실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계속 준비를 한답시고 공부, 자소서 뭐 이것저것 하는 것도 좋은데, 이젠 나갈 때가 된 것 같다. 회사, 세상, 사회, 공동체가 필요하다.

 

직접 부딪칠 공간과 경험이 나에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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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노랑 단풍

 

 

이런 생각도 내 실상 형편이나 실력에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포럼 중 리사 손 교수님의 말씀이 너무 와닿았다. 사실 가면을 벗기면 아무것도 없이 실수투성이 모자란 흠투성이인 내가 드러날까 봐 두렵다. 그래서 면접을 진짜 정말 너무 무서워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대학교, 대외활동 많은 면접을 보면서 거쳐왔지만, 한번 생긴 면접 공포증은 해결하기 참 어렵네. 자기소개서엔 휘황찬란하게 꾸며놨는데 캐물어 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냥 그런 지나가는 사람 1인 걸 들킬 것 같다.


이럴수록 당당히 내 부족한 점이나 진짜 모습을 알리고 도움을 받고 함께 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긴 들었지만, 그 과정이 막막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잘 헤쳐 나가는 당당한 사람이 되자.

 

 


10월 말; 조금만 더 힘을 내야지


 

10월에 시험 12개 보러 다녔고 전형 결과 발표 계속 나오고, 면접 준비하고 PT 서치하고 바쁘게 보냈다. 바쁘다기보다 예민했다.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긴장의 연속이었던 한 달을 보낸 나머지 면접 끝나고 필기 준비하려니까 몸컨디션이 갑자기 안 좋아졌던 때가 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 호흡이 잘 안됐다.

 

집에 앉아서 오랫동안 있어서 체력이 약해진 것도 있지만 서점 갔다가 돌아오는 길, 너무 힘들었다. 호흡이 가빠지기도 했고, 참 멍청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거 취준 그따위가 뭐라고 내가 이러고 있지? 내가 신경과 몸 갉아 먹으면서 마음에게 하는 자해 행위 마찬가지 아닌가 싶었다.


마음 놓자고 다짐해도 욕심, 안달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생일도 솔직히 오기까지 별 감흥 없었다. 독감 주사를 맞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생일 가깝네요?" 물어봐 주셔서 그제야 체감했다. 내가 뭐 하자고 이렇게 사람들도 못 챙기고 경주마 앞만 보고 애걸복걸하고 있나 싶다.


이런 생각은 모순적이게도 취업 준비가 끝나야 함께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다. 참 못된 생각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덩어리인 듯싶다. 학생일 때는 취준생이 그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 난 힘든 편도 아닐지도 모른다. 졸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문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벌써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걸 보면 아직 나도 멋진 어른이기보다 속 좁은 중딩 정도인 것 같다. 차근차근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11월; 싹 틔울 시간


 

갑작스럽게 짧은 취준이 끝났다. 벌써 실수를 저지른 것 같지만 어쨌든 취준생에서 예비 직장인으로 싹이 조금 틔우어졌다. 마음은 아직도 복잡하고, 어리숙한 나를 왜 뽑은 건지 잘 모를 만큼, 싱숭생숭하고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기쁨보다 불안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렇게 바라온 건데, 약간은 허무맹랑하다는 기분이 들어 웃기기도, 슬프기도 한 감정이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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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나뭇잎에 퍼지는 순간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건 면접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앞으로 착실하게 잘 일해나갈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입사 전까지 소중히 시간을 보내야겠다. 싹이 잘 틔우어져 꽃, 열매 풍성하게 피울 수 있도록 단단한 땅에 좋은 흙을 다지고, 물, 햇빛을 받아놔야겠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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