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결승선 그리고 다시 출발선

다시 런 온
글 입력 2022.11.1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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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이요? 그럼 혹시 러너스 하이도 느껴보셨어요?”


얼마 전 마라톤을 했다는 말에 받은 질문이다. 일정 시간 이상 달리기를 하면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것이 온대요. 느껴보셨어요?


“글쎄요, 저 아무래도 결승선 코앞...?”

“생각보다 너무 늦게 오는데요...”


집에 돌아와서 러너스 하이를 검색해보니, 정확히는 30분 이상 뛰고 나면 갑자기 찾아오는 짜릿한 쾌감이나 도취감을 의미하는 거였다. 선수들이나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러너스 하이를 느끼기가 힘들단다. 그 달성을 위해서 끊이지 않고 뛰는 것이 목표지, 뛰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인 듯하다. 그니까 결승선 코앞이라는 대답은 그냥 완주에 대한 기쁨이었던 것이다. 러너스 하이는...내 마라톤에선 없었던 것 같다. 


그래, 솔직하게는 뛰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생각보다 추운 날씨에 몸이 굳었고, 앞으로 빠르게 달려 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었다. (죽일 놈의 승부욕)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건 내가 마라톤이 처음이라는 사실이었다. 내게 처음은 설렌다기보다는 두렵고 난처한 것이 더 많았다. 마라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3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 완주. 두 번째, 5km까지는 쉬지 않고 달릴 것. 마지막은 1시간 30분 안에 완주. 처음 도전해 보는 것이고, 내 몸이 10km까지 어떻게 버텨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목표를 조금 완만하게 잡았다. 결과적으로 목표는 모두 달성했다. 나는 10km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었고, 덕분에 기록도 1시간 5분 14초로 한참 단축할 수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였다. 

 

몇 가지 변수가 있었다. 출발 후 1km 동안의 오버 페이스라든가, 주변 환경들. 나는 D그룹이었고 밝혀진 참가 인원만 18000명이었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기껏 몸을 풀고 데워놨더니 11월의 찬바람에 금방 몸이 뻣뻣해졌다. 나는 바람막이까지 껴입었으나 나시와 반바지 차림인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래서일까, 출발 신호가 울리자마자 사람들은 우르르 뛰쳐나갔다. 


나는 연습대로 천천히 뛰기 시작했지만, 마음이 급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뛰다 보니 숨이 평소보다 더 빨리 가빠 왔다. 평소라면 2km까지는 평이하게 달릴 수 있었는데. 그 순간 옆에서 뛰던 사람들이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 지금 우리 5분대로 뛰고 있어. 좀 더 느리게 뛰어야 해.”

“근데 저 사람들 왜 저렇게 빨리 뛰어...?”

“어차피 5km 넘으면 힘들어서 다 쳐지게 돼 있어.”


맞는 말이었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현재 페이스 5분 25초. 평소 연습은 7분 대로 했으니 페이스를 완전히 잃어버린 셈이었다. 그럼에도 앞으로 치고 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썰물 때 제대로 물길을 타지 못해 퍼덕거리는 물고기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딱 한 번 뒤돌아봤다. 충동적으로 돌아간 고개가 마주한 것은 앞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물결이었다. 


그때부터는 앞만 보고 뛰었다. 

 

멈출 수도 없었다. 목표했던 5km 구간을 넘으니 6km에서는 반환점이 나왔다. 덩달아 시작된 내리막길에 멈추기는커녕 가속만 붙었다. 8km가 넘으니 정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걸으려 했더니 터널의 울림을 타고 사람들이 파이팅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교통을 통제하는 바람에 황망하게 길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구경하는 것도 제법 재미있었다.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웃음이 나서 더 힘들어졌다. 설상가상 에어팟 배터리까지 나갔다. 들리는 건 내 숨소리와 심장소리 정도. 아, 이젠 정말 쉬어야지 하고 코너를 도는 순간 결승선이 보였다. 


정말 힘들었던 건 결승선이 보이는 순간부터였다. 무슨 오아시스도 아니고 가까워지지도 않는 결승선을 노려보며 뛰었다. 다리는 천근만근. 막판 스퍼트는 개뿔. 다리가 제대로 들어올려지지도 않았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니, 바로 기록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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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님 2022 LIFEPLUS JTBC 서울 마라톤대회 10K코스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완주기록은 01:05:14입니다.]


달리기를 마친 시간은 오전 9시 33분. 평소의 주말이면 겨우 눈을 뜰 시간이다. 

 

아침의 여의도는 이런 분위기구나. 우리가 지나 온 길에 다시 평소처럼 차가 지나다니고 있었다. 향이와 나는 사이좋게 씻고 나와 밥을 먹고 커피까지 마셨다. 당장 누워 쉬는 게 맞았을지도 모르는데, 우리의 러너스 하이는 결승선 이후에 시작된 모양이다. 결국 그날 저녁에는 몸의 비명을 내가 대신 지르며 H의 간호를 받았다. H가 10km나 뛰어 본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숨이 차다’고 답했다. H는 자기가 당연한 걸 물었다고 웃었다. 


“넌 어떻게 늘 바쁘게 지내? 지치지 않아?”


거의 쉬는 날이 없는 살인적인 내 스케줄을 들으면 대부분이 이렇게 물어본다. 당연히 지치지 어떻게 사람이 안 지쳐. 그때 나는 아마 관성이 아닐까, 라고 답했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해왔으니까 계속 하는 거지. 멈출 수가 없으니까 하는 것뿐이지 지치지 않는 것도 늘 즐거운 것도 아니다. 

 

물론 살아가는 방식에 정답은 없지만 가끔 ‘쉬어도 좋다’는 말은 내게 정답만은 아니었다. 쉬면 불안하고, 뒤처지는 것 같고. 무엇을 위해서 계속 달리는지는 모르지만 멈춰서 가라앉는 것보다는 억지로 뛰는 게 낫다. H는 그럼 제자리에서 뛰면 되겠다, 고 맞장구 쳤다.


달려봐서 알잖아 뛰다가 멈추면 다시 뛰는 게 더 힘들지. 안 그래? 

응.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일정 거리를 뛰고 나면 정말 다리가 저절로 움직인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것도 나를 밀어주지 않지만. 내가 스스로 땅을 박차고 달리는 거지만. 왜 마라톤을 인생에 빗대는가, 왜 그런 뻔한 비유를 사용하는가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한테 직접 뛰어보라고 권유할 수 있게 됐다. 정말로 달리기는, 마라톤은 삶이랑 유사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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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또 하자.”


나는 얼마 전 인생 첫 마라톤을 마쳤다. 그리고 결승선을 통과한 후 나는 먼저 도착해있던 향에게 저렇게 말했다. 자그마치 10km를 뛰었다. 살면서 가장 오래, 가장 멀리 내 다리로 이동해 본 경험은 아직까지도 올해 내가 해낸 가장 아름다운 업적이다. 가끔 집에서 일을 할 때 나는 의자에 기대서 메달을 오래오래 바라보곤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년에 ‘또’ 하겠다는 말은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는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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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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