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장르를 넘어 재치 있게 일상을 그려내는 예술가 - 장 줄리앙: 그러면, 거기

그의 작품속에는 우리네 모습이 있다
글 입력 2022.11.1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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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처음 ‘장 줄리앙’이라는 작가를 접했지만 선뜻 그의 작품을 만나러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첫번째 이유는 작가가 직접 전시가 이루어지는 DDP를 방문하여 전시장 조성에 함께 했다는 점에 있었다.

 

해외에서 작품을 들여온 전시의 경우, 어렵사리 작가의 자문을 구하거나 팬사인회 등을 위해 작가가 일회성으로 방문하는 경우는 보았어도 직접 전시장 구성에까지 참여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기 때문에 과연 작가의 손길로 탄생한 전시장의 모습은 어떠할지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 기대에 대한 결과를 우선 말해보자면, 제법 만족스러웠다. 전시장 곳곳에서 직접 드로잉 한 대형 작품들이 마치 벽지처럼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는가 하면, 작품 안내선 마저도 작가의 필체로 제작되어 귀여운 포인트가 되어주고 있었다. 벽면에 빼곡하게 적힌 간단한 만화들과 작가의 이야기들을 읽어 보는 것도 전시의 또 다른 매력이 되어 주었다. 전시를 보는 내내 수다스러운 도슨트와 함께 하는 기분이 들었다.


전시가 기대되는 또다른 이유로는 장줄리앙의 폭 넓은 작품 세계가 있었다. 이번 회고전에서 그의 작품 초기 단계가 되어주는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치 있는 표현력으로 완성된 드로잉, 그것을 기반으로 한 영상 작품, 설치 작품뿐만 아니라 의류, 잡지, 서핑보드 등 다양한 형태의 콜라보 작품과 회화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이러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 속에서 그의 초기 아이디어가 어떤 과정을 통해 채색되고 가공되어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하는지를 찾아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 초반에서 본 날것의 드로잉이 다음 순간 색을 입고 나타나고, 또 다음 순간 포스터가 되어 벽면에 걸리거나 컵과 같은 굿즈 속에 들어가 있기도 하는 마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상 속 아이디어의 원천, 100권의 스케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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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작은 스케치북을 지니고 다니면서 인상적인 장면이나 아이디어를 주는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즉흥적인 드로잉과 스케치로 이를 기록했다고 한다. 얼마나 성실하게 기록을 했는지 그가 지닌 이러한 스케치북은 100권에 달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그 스케치북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작은 스케치북 안에 빼곡하게 그려진 드로잉을 살피다 보면, 장 줄리앙이 얼마나 일상의 작은 순간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사람인지 느껴졌다. 


사실 영감을 얻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부분이 일상에서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혹은 늘 보아왔기에 넘겼던 장면들에서 작가는 약간의 관찰력과 인내심을 투여하여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는다. 일상적인 순간이 특별한 순간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가령, 그는 해변가의 썬텐을 즐기는 이들의 몸에서 일부분만 탄 것을 보고 핸드폰 모양으로 귀 부분만 타지 않은 익살스러운 드로잉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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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조금 올려보면 작가가 전시장에 방문하여 벽에 직접 그린 일화들이 띠처럼 이어지고 있다. 스케치북의 러프한 그림들이 다 설명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이 벽화가 채워주는 듯하다. 영어로 된 글자들을 유심히 읽어보다 보면 그가 얼마나 세상을 비판적이고도 유쾌하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모순되는 듯한 개념이지만, 장 줄리앙의 작품은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유쾌한 표현을 통해 풀어내어 누구든지 거부감 없이 쉽게 향유할 수 있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전시가 개최된 DDP 플라자의 특성 상 입구 쪽에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는지라 텍스트와 작품이 많은 ‘100권의 스케치북’ 공간에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줄을 서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본래 나의 페이스에 맞춰 관람하기가 어려웠다. 작업 초기 단계인 스케치를 보여주는 공간이기에 초입에 배치되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벽화 부분과 스케치북을 조금은 분리하여 배치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것 같다.

 

 


영상을 통해 미리 보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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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북을 통해 아이디어 단계의 작품을 마주했다면, 다음 공간에서는 영상으로 구현된 그의 작품관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이 펼쳐진다. 그의 동생 니코와 함께 작업한 영상물을 감상하다 보면, 두 사람의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는지 느껴볼 수 있다. 공간에 들어가기 전 확인할 수 있는 벽화에 따르면 장 줄리앙의 드로잉에 기반하여 니코가 음악과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작업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영상이 구현되는 이 공간의 특성도 참 재미있었는데, 흰 벽면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공간 4면에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고, 따라서 관객들은 벽면 어디에 서 있더라도 영상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건너편 관객들의 모습 위로 상영되는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것이 영상이 아닌 눈앞에 실제로 펼쳐진 풍경처럼 느껴진다.

 

 


모든 작품의 시초, 드로잉 공간



바닥부터 천장까지 드로잉으로 채워진 종이가 빼곡하게 붙어있는 이 공간은 전시 공간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곳이었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관람한 곳이기도 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작품이 많았지만 하나같이 눈길을 끄는 통에 허투루 지나칠 수 없어 결국 이 곳에 붙어 있는 대부분의 드로잉에 한번씩은 눈길을 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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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줄리앙이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또 그것을 소소하지만 유쾌한 표현 법으로 풀어내는지 그의 드로잉은 말해주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강아지가 사람에게 목줄을 묶고 끌고 다니는가 하면 정작 필요한 물품 위로 쓸데없지만 사고 싶은 물품들로 카트를 꽉 채운 사람도 있다.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는 비효율적이고 이해할 수 없지만 정작 우리네 일상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장 줄리앙의 드로잉은 작품 속 조금은 과장되어 표현된 인물들을 보며 웃다가도 어딘지 익숙한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 분명 작가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감 없이 내비치고 있는데, 정작 받아들이는 관람객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그의 표현법이 얼마나 재치 있고 유쾌한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드로잉으로 빽빽한 이 공간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볼 수 있었던 데에는 또한 그의 간결한 그림체도 한 몫을 했다. 이 곳의 어떤 그림도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들지 않는다. 한번만 눈길을 던져도 단번에 이해되게 만들어 준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장 줄리앙 작품이 가지는 강력한 힘인지도 모르겠다.

 

 


형형색색의 피드를 닮은 소셜미디어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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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드로잉을 보느라 피로해진 나의 시야를 환기해주는 다음 공간은 무채색의 드로잉과는 반대로 감각적인 색채를 닮은 작품들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정말 똑똑한 공간 배치가 아닐 수 없다. 앞선 드로잉에 색이 입혀진 모습을 보니 이미 본 작품임에도 다른 매력을 지니고 다가왔고, 적절한 색 배치까지 더해진 그의 작품은 더욱 강렬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관람을 하던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글을 쓰는 지금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이 작품들의 배치가 마치 인스타그램 피드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공간은 장 줄리앙이 소셜 미디어 매체를 표현하기 위한 공간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사진 속 작품들 중 이번 전시의 시그니처로 작용하는 주황색 바탕에 표정이 그려진 작품 속 눈이 상하좌우로 움직이는데, SNS속 피드를 내리며 바삐 움직이는 우리들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상, 설치 미술까지…폭넓은 장르를 오가는 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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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공간은 장 줄리앙이라는 작가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곳이었다. 그의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작업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영상 작품과 그 안에 사용된 오브제들이 들어 있는 전시장을 함께 번갈아 보다 보면 짧은 영상 하나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오브제들이 영상 속에서 얼마나 재치 있게 사용되었는지 찾아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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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어지는 그의 설치 미술까지 보다 보면 정말 이 작가는 어디까지 도전할 생각이지? 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는 것을 ‘놀이’라고 여겼던 그의 신념처럼, 관객은 이 공간에서 정말 ‘놀아 볼 수’ 있다.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선풍기 바람 옆에 지친 듯 앉아 있는 설치물과 나란히 앉아 지친 다리를 쉬며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다음 공간에서 이어지는 종이 인간들과 함께 거울 셀카를 찍어 볼 수도 있다.


드로잉과 영상 속에서 보며 친근감을 쌓았지만 다가갈 수는 없었던 그의 작품들은 실제 형체를 가지고 이렇게 나타나며 우리에게 함께 경험하기를 권한다.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거나 옆에 다가가 주의 깊게 관찰하다 보면 ‘일정 거리를 두고 관전하는’ 대상이었던 작품은 ‘함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되어 주는 것이다.

 

 


전시 공간 안의 작은 굿즈 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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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설치 작품들이 함께 경험을 만들어주는 존재라면, 그 다음 공간에서 장 줄리앙의 작품은 직접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나타난다. 이 공간에 처음 발을 들이면 이 곳이 전시 공간인지, 전시를 다 본 후 대개 마주하게 되는 굿즈샵인지 혼동이 올 정도이다. 그의 작품이 프린팅된 티셔츠, 스케이트 보드, 컵과 식기뿐만 아니라 일상의 공간을 이루는 책상, 의자 등의 가구까지 폭넓은 상품화된 그의 작품과 마주할 수 있다.


특히 4개의 의자와 하나의 식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가히 눈길을 끄는데 의자 각각이 사람의 머리, 손, 다리를 구성하고 있고 식탁은 몸통 부분을 이루고 있다.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이 작품은 다른 자세, 모습을 한 사람을 보여주며 오래도록 바라보고 만드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상품화된 그의 작품들 또한 단순한 제품이 아닌 일상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장르 도전의 정점, 회화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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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샵과 같은 공간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전시가 마무리되고 진짜 굿즈 공간이 나올 것이라는 나의 예상을 완벽히 무너뜨리고 가장 큰 충격을 선사한 공간은 회화 공간이었다. 장 줄리앙의 장르를 넘나드는 도전은 끝나지 않는다. 그는 여태까지의 작품들로 보여준 장르들과 가장 멀게 느껴질 법한 회화에까지 도전을 이어갔다. 


장 줄리앙의 회화 작품은 확실히 앞서 보았던 드로잉과 그것에서 확장된 영상, 설치, 굿즈 등의 작품과는 차이점을 보이는데 언뜻 보아서는 같은 작가가 작업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구성하고 있었다. 앞선 작품들이 우리네 일상을 큼직하고 간결한 선으로 그렸다면, 그의 회화 작품은 ‘인간’보다는 ‘자연’에 초점을 맞추어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었다.


회화 작품들의 대상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바다였는데, 바다의 푸른 색감과 넘실거리는 파도의 섬세한 표현은 정말 해변가에 관람객을 데려간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다. 당장에라도 갈매기 소리와 시원하고도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날 것만 같다. 압도될 듯한 스케일의 바다 작품 속에서 조그마하게 그려진 인간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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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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