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딕 존슨의 가상 죽음 시뮬레이션 [영화]

영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글 입력 2022.11.1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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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품어본 적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는 것일까?’와 같은 생각이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이것에 대해 종일 고민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호기심에서 시작해서 두려움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그러다 무서운 마음이 커져 친구와 하교하다가 뜬금없이 그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나 오늘 하루종일 고민해봤는데, 너무 무서워.”

“뭐가?”

“죽는 거 말이야.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잖아. 너는 안 무서워?”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응? 죽는 거 무섭지. 근데 괜찮아. 어차피 사람은 다 죽어!”

 

 친구는 심각한 나의 말에 코웃음이라도 치듯 신발주머니를 휭휭 돌려가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당황했다. 고민하던 주제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대답을 내놓은 거다. 그 단호한 말은 너무나 명쾌했다.

 

 그 이후로 시간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그런 고민과 상상을 자주 한다. 나이가 들면 노화도, 죽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움과 두려움 사이에 어중간하게 낀 감정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친구에게 이 작품을 추천 받은 지 1년이 넘었는데도 감상을 미루다 두 달 전쯤 보게 되었다. 주말 점심의 편안하고 나른한 시간, 재생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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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Dick Johnson Is Dead, 2020

감독 커스틴 존슨

 

 

딕 존슨은 오랫동안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퇴직한 86세의 남성이다. 건장한 체격에 새하얀 곱슬머리, 다정한 말투에 귀여운 미소를 지녔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자 감독인 커스틴 존슨의 아버지다. 그들은 함께 늙어가고 있었고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외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버지를 카메라에 담기로 결심한다. 


제목처럼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몇 번이나 죽음을 맞이한다. 탄생의 방법은 한정적이지만, 죽음은 다르다. 시간도, 장소도, 방법도 예측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다양한 방식의 죽음을 연출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건에 맞는 사고, 공사장에서 변을 당하는 사고,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이나 개인의 부주의로 인한 사망 등 그들이 상상해 볼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를 시도한다. 끔찍한 사고 장면은 ‘컷’소리와 함께 일상의 순간으로 환기된다. 셔츠를 적시는 차가운 피, 진짜인 것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딕, 그가 계단에서 떨어지자마자 이어지는 천국의 모습 등이 그렇다.


여러 차례 죽어본 덕에 딕 존슨은 사후 세계에도 몇 차례 방문한다. 그는 계단에서 떨어져 천국에 당도한다. 남아있는 자의 현실은 끔찍한데 망자의 현실은 황홀하니 아이러니하다. 카니발의 마지막 날처럼 금색 꽃가루가 휘날리는 천국은 눈이 부시게 빛난다.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사람들, 먼저 와서 그를 맞이하는 아내. 콤플렉스였던 모난 발에는 새 발가락이 돋아있다. 그곳에선 보고 싶던 이를 만날 수 있고, 생전의 아픔도 회복된다. 생명의 탄생만큼 축복받는 분위기를 보니 이런 것이 죽음이라면 기꺼이 맞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딕 존슨의 지인과 가족은 성당에 모여서 그의 가상 장례식을 치른다. 그는 생애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많은 이가 그의 죽음을 기리고, 그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담담하게 자신의 일상을 살아오던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요동친다. 이 모든 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앞으로 다가올 사실이기에 몰입을 멈추지 않는다. 그의 절친한 친구는 메소드 연기를 하는 연극배우처럼 눈물을 흘리고 딕의 이름을 부른다.

 

뒤에서 이 모든 광경을 관조하는 듯한 딕 존슨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좋은 인생이었다고 생각했을까? 그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의 눈빛은 슬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다큐멘터리의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그들은 촬영하다가도 감독과 주인공이라는 역할에서 수시로 벗어나 딸과 아빠로 등장한다. 그들의 사적 대화는 연출이 끝난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촬영 중에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렇게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어른과 아이의 모습을 넘나들며 서로에 대한 진솔한 사랑을 고백한다.

 

딕 존슨의 ‘가상 죽음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면서 그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죽음을 가정한 허구의 작업을 실제처럼 연출하는 것은 그들 모두에게 묘한 기분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한 차례 두 차례 허구와 현실을 넘나들면, 정신적 고단함이 크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죽음을 마주하기 위해 현실감 있는 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내내 반복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선택한 것은 다가올 이별을 피하지 않고 맞이하고 준비하는 작업이었다.

 

*

 

며칠 전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나도 이제 할머니야.”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이 땡그래졌다. 아직 결혼한 자녀도 없고, 손자도 없고, 나이도 50대인데 어떻게 할머니일 수 있냐고 반박했다. 그러자 엄마는 “그래 지금은 아닐 수도 있겠지. 근데 누군가는 나를 할머니로 볼 수도 있어.”라고 담담히 말했다. 장난스럽던 엄마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니 당황스러웠다. 표현이 이상할 수 있지만, 나는 그 선언이 용납하기 어려웠다. 정확히 말하면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영원히 그 모습이어야 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것이다.

 

그런 가정을 마음속으로 품고 살다가 그런 발언을 들으니 충격일 따름이었다.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나와는 달리 엄마는 늙는 것을 마음 속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던 그 말은 나중에 진짜 노화가 느껴지는 순간이 와도 당황하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연습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억지에 가까운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직은 안돼. 나는 용납 못해. 엄마는 할머니가 아니고 OOO이야.”

그러자 엄마는 코웃음을 치며 덧붙였다.

“할머니인 게 뭐 어때서? 난 할머니가 될거야!”라고.

 

나도 할머니가 될 거다. 그런데 왜 엄마가 늙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울까. 할머니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는데 유난히 엄마가 그렇다. 나는 죽음도 두렵지만, 그 전에 가족의 노화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과 사라는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과정이 낯설고 불편한 것이다. 그렇기에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를 통해 다른 가정의 준비 과정을 보는 것은 꽤 도움이 되었다.

 

커스틴과 딕이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겪는 감정과 대화, 갈등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재정비되는 시간에 대한 좋은 예시가 된다. 누구나 겪을 수 있고, 누구나 아플 수 있고, 누구나 어려울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미래 예행연습은 바람직하고, 위로가 된다. 무뚝뚝하게 지내다가 소중한 시간을 놓치는 것보단 허심탄회하게 맨살의 감정을 나누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아버지와 딸은 서로의 입장에서 느끼는 것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리거나 감정을 표현했다.


나 또한 나이가 들수록 더 솔직하고, 스스럼없이 좋은 감정을 표현하는 게 익숙해져 간다. 그들의 예행연습은 거대한 프로젝트로 진행됐지만, 어렵지 않았다. 그보다 작은 우리의 예행 연습은 더 수월할 것이다. 익숙해지고, 자주 마주하고, 자주 표현하고, 시간을 기록하는 것. 그런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고 다짐한다. 딕 존슨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현재를 살아가는 게 중요하고, 커스틴 존슨의 말처럼 우리는 서로의 존재가 영원히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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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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